나의 무대, 종로 그리고……

2011. 2. 23. 17:16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기회만 되면 서울을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서울이 좋다. 밖으로 나갔다가 서울의 경계로만 들어오면 마음이 놓인다. 어머니와 가족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나는 한적한 시골보다 사람과 사람이 북적대는 서울을 더 좋아한다.

충청도 홍성군 장곡면의 산골짜기 오서산 아래서 나서 컸고,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지만 사람 살기는 서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면 다 괜찮겠지만 나는 서울이 더 좋다. 나는 매사에 예민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염된 환경 속에서도 민감하지 못하다. 그러니 사람 북적거리는 서울이 더 좋을 수밖에…….

예전에 대학에 다닐 땐 시골 갔다가 한남대교만 눈앞에 보이면 참 처량해지고 답답했었다. 나를 반겨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넓은 서울에 내가 마음을 놓고 거처할 곳이 없다는 것이 늘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반대가 됐다. 특히 대형 버스를 대절해서 정기 촬영을 나갔을 때는 서울에 들어서야 마음이 놓인다. 오랜 시간 총무 일을 맡다 보니, 서울에 일찍 도착해야 한 시름 놓는 것이 몸에 배인 까닭인가 보다.

집은 서울에서 살림을 시작할 때부터 홍제동에서 뱅뱅 돌았고, 직장은 등촌동에서만 14년째 근무 중이다. 그 이전에 대학과 대학원 다닌 6년간은 회기동에서 헤맸지만, 나의 주무대는 10년 넘게 홍제동도 등촌동도 아닌 종로, 그것도 2가에서 4가 사이이다. 종로 2가에서 4가 사이에 내가 내 집처럼 드나드는 여러 곳이 있다.

우선 나의 근무처 혹은 나의 집처럼 느껴지는 가보카메라가 거기에 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못 들르지만 예전에는 주 평균 3회 이상 드나들었다. 무엇을 사는 것도 아니고, 구하기 위함도 아니지만 들르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다. 내가 일산이나 김포로 이사가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 곳으로 가면 종로, 특히 가보카메라가 멀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보카메라와의 인연은 뒤에서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는데, 종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종로에 가보카메라가 있기 때문이다.

종로에는 단골집들이 많이 있다. 나는 한 번 괜찮게 본 집은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그 집만 찾아다닌다. 대형서점 중엔 주로 종로서적을 이용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사진에 관한 책과 소설, 수필 등이 모두 3층 매장에 있어 거기만 들르면 볼일 다 보기 때문이다. 종로서적 예매처 주임인 임동신 님의 후의도 가끔 입는다. 이선희 콘서트만 있으면 좋은 자리 부탁하는 전화를 드리고, 임 주임님도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에 편의를 봐 달라는 말에 웃으면서 답해준다.

종로서적에 아주 미안한 일이 한 번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 필요한 도서목록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그 목록의 책을 150만원 어치 주문해서 가져왔을 때, 학교에서 돌려보낸 일이다. 내가 담당 실무자는 아니었지만 계통을 밟아서 결재까지 받고 한 일인데도 부서간의 책임문제로 그런 실례를 하게 된 것이다. 그 후론 낯 뜨거워서 한동안 못 다니다가 그래도 한 권이라도 더 책을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요즘은 안면 몰수하고 종로서적에 자주 드나든다.

종로에 내가 다니는 술집이 여러 군데 있다. 드림호프, 동원집, 시골집, 단성관, 종묘갈비, 대동집, 아구 일번지, 서울참치, 그리고 최근에 문을 연 순대 전문점인 코리안 소세지 등이 그곳이다.

돈 많고 여유 있으면 고급 술집에 드나들겠지만 나처럼 늘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에겐 값싸고 푸짐한 집이 적격이다. 아니 나에게는 여유가 있다 해도 허름하고 서민적인 집이 더 어울릴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약속을 종로에서 하고, 학교 행사만 빼고는 종로에서 술을 마신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종로에서 보자고 하면 ‘다 늙은 나이에 웬 종로?’냐고 하지만 종로는 나이 먹은 사람에게도 괜찮은 곳이다. 종로 2가 관철동 골목을 걸어보면 정말 활기 있고 생동감 넘친다. 젊고 어린 선남선녀 사이를 비집고 걸어 보라. 그들과 똑같은 10대, 20대의 낭만과 기분을 느낄 테니까.

한동안 관철동의 코지코너, 엑스(X), 레드옥스, 종로타운 커피숍을 드나들었으나, 이젠 많이 바뀌어서 옛 기분이 안 나 나도 모르게 발길을 종로 3가로 옮기게 되었다. 코지코너는 대학 후배들 만날 때 많이 갔고, 경양식이 먹을 만했으나 맥주집으로 바뀐 뒤로는 몇 번 가다가 발길을 끊었다. 맥주 마실 때 ‘미리 내’여서 술을 시킬 때마다 돈을 줘야 하니 우리 정서에 안 맞는 일이었고 또 불편하여 자연스럽게 발이 멀어졌다. 주머니가 가벼울 때는 ‘미리 내’가 괜찮을 수도 있으나 우리 정서는 역시 ‘뒤에 내’가 더 낫다.

엑스는 둘째 처제 때문에 자주 갔었고 난 여기서 피자 맛을 익혔다. 값은 꽤 비싼 편이지만 피자다운 피자(?)를 만들었다고 기억된다. 미경이나 여자 후배들 만날 때도 자주 갔지만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고 가본 지 오래다. 그 곳에 자주 다닐 때는 공간이 좁은 데서 담배 피우는 여자애들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레드옥스는 정식이 아주 푸짐해서 내가 우리 반 애들 데리고 많이 간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피자집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이 집은 80년대 대학생들에겐 널리 알려진 집이었으나 나는 대학 다닐 때는 종로 나올 일이 별로 없어서 그 때는 몰랐었다. 대학 다닐 때는 회기동의 술집들만 쓸고 다니느라 그 밖의 곳은 30대가 되어서야 드나들었다. 코지코너가 호프로 바뀐 뒤 레드옥스가 나의 주 무대가 되어 한동안 많이 다녔었다. 우리 세근이나 그 동기들 모여 저녁 먹을 때, 이 집 정식을 많이 먹은 기억이 난다. 한때 피자를 먹으면서 맥주도 마실 수 있는 분위기여서 피자를 안주로 맥주 마신 기억도 많다.

관철동엔 4, 5층짜리 건물이 청소년 상대의 오락실, 음식점, 맥주집, 커피숍으로 영업하는 곳이 여러 집인데 연타운, 종로타운 등이 대표적이다. 한동안 종로타운 5층 커피숍에 자주 갔다. 커피 값이 싸고 팥빙수가 푸짐해 영일고 15기가 대학에 입학했던 92년도엔 많이 다녔지만 요즘엔 통 못 가봤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업종을 바꿨다고 하나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어느 한 집을 단골 삼아 자주 갈 땐 뭔가 이유가 있다. 음식이 특히 맛이 좋다든가, 값이 싸다든가, 분위기가 괜찮다든가 등 다른 집과는 다른 특별한 요소가 있어야 가게 된다. 늘 다니는 종로에 갈 만한 순대 곱창집이 없는 것이 술꾼에겐 아쉬운 일이었다. 순대집이 더러 있어도 대부분 청소년을 상대하는 곳이지 어른이 들어앉아 마시기 괜찮은 곳은 없었다. 봉천동의 신풍루와 같은 곱창집, 충무로의 왕순대 같은 순대, 머리고기 전문점이 종로에도 한 집 있기를 기다렸더니, 피카디리극장 옆 작은 골목에 순대집인 코리안소세지가 새로 문을 열었다.

깨끗한 분위기가 순대와는 어울리지 않고, 순대도 다양하지 못해 아직 높은 점수를 주기는 이르지만, 딱 하나 아르바이트생들이 친절하고 상냥한 것은 이 근처의 다른 집보다 낫다. 술집이나 음식점은 주인도 친절해야 되지만 음식 나르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나는 이 집의 아르바이트 학생인 기효나 정신이의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어 가끔 들르곤 한다.

나는 종로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종로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피카디리 옆 골목을 지나가면 서로 자기 집에 들어오라고 손을 이끈다. 다른 지역에서의 이런 모습은 마음에 안 들어도 여기서는 밉지 않다. 애고 어른이고 지나친 언행을 하지 않으며, 그 얼굴들이 삶에 찌든 표정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간만 나면 종로에 간다. 종로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모인다. 아무 약속 없이 나가도 가보에 앉아 있으면 우리 회원이거나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드림호프나 단성관, 동원집, 종묘갈비 등으로 몰려가 지친 하루를 달래본다. 크게 취하는 적은 거의 없지만, 얼큰해서 장미꽃 한 송이 사들고 집에 가면 ‘오늘도 하루가 갔구나. 하고 안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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