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3. 17:08ㆍ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가을로 접어들면서 일요일만 되면 새벽에 춘천 방향으로 나가 본다. 물안개 피어나고 안개가 움직이는 의암호나 중미산 운해, 청평호의 물안개를 찍으러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마음에 드는 장면을 찍지 못했다. 지난 초여름에 보았던 의암호의 안개가 너무 좋아서 그 장면을 다시 만나기 위해 설레며 나가 보지만, 덕이 부족한 탓인지 흡족한 장면을 보지 못했다. 좋은 장면을 보지 못하고 돌아올 때면 함께 간 사람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별로 실망하지 않는다. 오늘 못 만나면 다음에 다시 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밖에 나갈 때 꼭 사진기를 갖고 가야 마음이 놓인다. 출근할 때는 물론이고 누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꼭 메고 나가서, 내가 맨손이면 오히려 만나는 사람들이 의아해 한다.
작은 가방에 필름이 들어있는 롤라이 35S와 라이카 디 룩스4 혹은 좀 더 큰 가방에 라이카 스마론 35/3.5렌즈가 장착된 코니카 헥사 RF와 라이카 엘마 50/2.8, 오리온 28/5.6 렌즈와 디 룩스4를 넣어서 가지고 다닌다.
이 사진기들이 들어 있는 매틴(MATIN) 어드벤처3 가방이나 로우프로(Lowe pro) 오프로드(off road)가방은 나의 일상생활에 꼭 따라 다니는 필수품이다. 촬영을 목적으로 떠날 때는 다른 가방, 다른 사진기로 교체되지만 일상의 만남에는 이 가방 중 하나면 충분하다.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찍고, 특별한 상황을 만나면 그것을 찍기 위해 사진기는 항상 나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
흔히 사진을 기다림의 결과라고 말들 하나, 내 생각에 사진은 만남의 결과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여자를, 황홀한 풍경을 어떻게 찍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된 만남이든 만나야 찍는 거 아닌가. 그러므로 사진은 만남의 결과이다. 그 만남은 특별한 만남이다.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닌대서 아무거나 찍는 사진인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 특별해야만 눈길을 주게 되고, 특별해야만 파인더로 보게 되고, 특별해야만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특별한 만남이다. 이 특별한 만남을 위해 나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길을 떠난다. 여러 시간을 차를 타고 해돋이를 찍으러 가고, 단풍을 찍으러 가고, 사람을 찍으러 간다. 그렇게 길을 떠나 보지만 늘 만족한 만남보다 아쉬운 만남이 많은 것이 사진이다.
만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사진은 관심이 된다. 만남이 우연의 산물일 때가 많다면 관심은 필연이라고 할 것이다. 사진을 찍게 되면 지금까지 무관심했던 모든 것들이 새롭게, 그리고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온다. 계절의 변화에 무심했던 사람도 사진에 열중하다 보면 언제 봄이 오고 가을이 오는지 일일이 계산할 줄 알게 된다. 거기다가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 환경에도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서게 된다. 하동에 매화꽃이 피었는지 백사면의 산수유꽃이 어떠한지 알고 싶어 하며, 설령 그곳에 가지 못한다 해도 늘 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다.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가깝고 늘 보는 사람의 얼굴도 어느 각도로, 어떤 렌즈로 찍는 것이 더 잘 나오는지 생각하게 되고, 사진으로 보면 얼굴 어느 부분이 더 예쁘고 더 보기 싫은 지도 알게 된다.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예뻐 보일 때의 사진을 찍고 싶은 것도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귀여운 가수, 핑클의 사진 앨범을 보면 그들의 초창기 사진이 얼마나 촌스러운지……. 그런데 점점 촌티를 벗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찍는 사람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찍히는 사람도 관심을 둔다는 얘기일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꽃」
이 시는, 존재 의미란 관심에 의해 확인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상기시켜준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그저 피었다 시들어갈 뿐이다. 그러나 별 볼일 없는, 이름 모를 들꽃이라도 사람이 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새롭게 태어난다. 이러한 관계 때문에, 자연이나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시인을 가리켜 새로운 이름을 갖게 해주는 명명자(命名者)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오히려 사진인이 더 큰 명명자가 된다고 본다. 언어로 표현되는 의미보다 사진으로 표현되는 의미가 훨씬 가깝고, 더 뜨겁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자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관계가 어떤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지금까지 무심했던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새로운 눈으로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나는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사진을 찍으며 그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별 볼일 없는 것들이나 찍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내가 사진 찍는 일이 늘 흡족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진가니 사진작가니 하는 거창한 이름보다, 그저 이름 없는 한 사진인으로 만족할 뿐이다. 나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 사진을 찍기보다 사람과, 자연과 관계를 맺기 위해 사진을 찍으려 한다.
거창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이니 솔직히 내게 그런 욕심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며 그것들에 관심 기울이며 사진을 찍고 싶다.
수잔 손탁(Susan Sontak)의 사진론(On Photography)에 보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에 찍히는 사물을 전유물로 만드는 일이다. 요컨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지식과 같은 것을 느끼는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힘과 같은 것이다. 인쇄된 단어가 만연한 오늘날, 다시 말해 추상적인 세계에 익숙해져버린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지나치게 파우스트적인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따라서 영적(靈的)인 면이 파괴되면서 사회가 단절되어가는 현상일 것이다. 한편, 오늘날 인쇄매체는 기능면에서 사진 영상 매체보다는 어쩔 수 없이 취약하다. 사진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망이 가능한 지식을 제공하면서 세계를 정상적인 대상으로 인식시켜주는 데 있어 인쇄매체보다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어떤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관하여 언어로 표현한 내용은 특정 인물이나 상황을 해석하고 있다는 면에서 손으로 제작되는 그림이나 드로잉 작품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진에 담겨진 이미지들은 현실을 누구든지 만들거나 소유할 수 있도록 축소시켰다는 면에서는 다른 예술과 유사할 수 있기는 하나, 사진에 담겨진 내용과 관련된 세계를 해석하지는 않는다.<중략>
사진이 사람들에게 현실이 아닌 과거를 간직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안정된 공간을 보유하지 못했던 바로 그 공간을 사진이 메워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진촬영 작업은 현대 생활에서 가장 개성이 뚜렷한 활동, 특히 관광분야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당시 여행을 하면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도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나 뜻했던 일들을 실천하고 또 즐겁게 보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사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 친구, 이웃의 모습을 담아두기 위한 사진 외에도 기록으로의 수요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여행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체험하는 내용들을 사진기에 의존하여 현실화시키려는 욕망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중략>
사진은 단순히 사건과 사진을 찍는 사람 사이의 만남의 결과라고만 할 수는 없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며 진행되고 있는 모든 상황에 간여하고 침범하며, 혹은 무시할 수도 있는 보다 결정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사진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진기가 보급됨으로써 시간은 흥미있는 사건들 즉 사진으로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일단 진행되고 있는 사건은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인 특성과는 관계없이 다른 그 어떤 것이 이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 모두 사진이라는 형태로 완성되어져야만 한다. 사건이 끝나고 난 후에도, 사진은 그 사건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것(그리고 중요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라도 하는 듯 계속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사진은 즐거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수잔 손탁, 「사진론(on Photography)」
『바르트와 손탁 : 사진론』 p.124 - 132 현대 미학사. 1994
위에서처럼 사진은 사람과 사건, 그리고 시간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갖지 못하는 세계를 사진을 찍어서 소유하고자 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 흔적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하며, 어떤 사람들은 흥미 있는 사건들을 사진으로 찍고자 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관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사진은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관심은 사물에 눈을 뜨는 것이지만 사랑은 사물과 어떤 관계가 맺어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진에서의 사랑을 일방적인 짝사랑이라고 웃어넘길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는 경지까지 이르러야 진정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짝사랑이라도 열심히 해야 된다.
물아일체의 경지가 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깊은 관심으로 대상을 가까이하며 거기서 애정을 가지고 파고든다면 언젠가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대상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비록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공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의 경지가 심화되면 물아일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사람과 만나고 그들에게 늘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고 그 관심이 무엇을 바라서는 아니다. 또 무엇을 얻고자 함도 아니다. 다만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서일 뿐이다. 앨범 속에 들어 있는 얼굴들을 보면 내 눈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반갑게 여겨진다. 이런 내 모습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해를 바랄 일도 아니다.
사진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죽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아직 없었다. 한 장 한 장 바라보면 그 얼굴들이 뭔가 말을 하는 것도 같고 그 사진을 찍을 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사람뿐이 아니다. 찍을 때 가슴을 설레게 했던 사진들은 사진으로 봐도 그 감동을 전해준다. 아마 이런 기분 때문에 사진을 찍을 것이다.
나는 아직 사진에 대해서 눈을 떴다고 말할 단계도 못 되지만, 언젠가는 눈을 뜨고 그 대상과 하나가 되는 그런 경지가 올 거라고 기대하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일은 자연과 사람과의 만남이며, 그것들에 대한 관심이고 사랑이다.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자연과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에 나는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진정한 본질을 밝혀주는 명명자가 되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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