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7. 19:06ㆍ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흔히 시장을 얘기할 때 ‘청계천 시장에 가면 미사일이나 잠수함도 조립해낼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또 남대문 시장에 가면 ‘언제라도 1개 사단 완전 군장 차릴 장비 찾아낼 수 있다’고도 한다. 그만큼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지만 사진기나 그 부속품, 액세서리는 청계천 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최신 제품들은 어떻게든 들어와 유통되지만, 꼭 긴요한 부속품은 서울에서 구하기 힘든 것이 많다.
종로 4가 예지동에 가면 시계 골목이 있다. 세계 최고급품은 여기서 취급할 리 없을지도 모르지만 시계라면 못 구할 것이 없다. 이 시계 골목과 이어져 있는 곳이 예지동 사진기 골목이다. 골목이란 말 대신 전문상가라고 해야겠지만 ‘전문상가’라는 말은 너무 고급스런 얘기 같아 그냥 사진기 골목이라고 부른다. 사진기와 렌즈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집이 24 곳이나 도로 양편으로 몰려 있고, 여기는 웬만한 신형 제품부터 아주 오래된 구형까지 다양하게 갖춰 놓고 있다.
사진기 가격은 백화점 빼고는 대부분 비슷하다. 가장 많이 팔리는 FM2나 EOS5의 값은 커봐야 1~2만원 차이이다. 그것을 싸게 사겠다고 남대문, 예지동, 종로 3가를 서너 명씩 짝지어 돌아다니는 학생들 보면 참 애처롭다. 그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2만원보다 훨씬 클텐데……. 게다가 자기들 딴에는 약은 짓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집, 저 집 값 비교하면서 ‘저 집은 얼마인데 이 집은 왜 더 비싸냐?’고 따지러 든다. 정말 그쪽이 싸다면 그냥 조용히 그쪽 가서 살 일이지 그런 말들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사진기 새 것의 값은 대동소이하지만 중고의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난다. 얼마에 사서 얼마를 붙여야 하느냐의 문제는 점포마다 다르지만, 서울에서 구하기 힘든 중고는 왕창 남겨 먹는다. 비싸게 주고라도 사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처음 나올 때의 일본 카탈로그에 나온 값을 그대로 다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난 가보 외에는 가격을 믿지 않으며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래하지 않는다.
예지동 골목에서 내가 가장 많이 찾는 곳, 가장 좋아하는 곳은 예지상가 건물(주로 시계점포) 3층 320호에 있는 김카메라(전화 2277-9752)다. 사진기점이 3층에 있어도 누가 가느냐고? 간다. 여기는 아는 사람만 간다. 예지동에 있는 ‘김카메라’를 안다면 그 사람이 사진에 대해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진기는 꽤 아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김카메라는 사진기를 사고, 파는 곳이 아니다. 사진기에 필요한 부속을 파는 곳도 아니다. 여기는 필요한 것을 깎아 만드는 곳이다. 사진기에 관한 한 일본보다 발달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일본 부럽지 않게 무엇이든 깎아낼 수 있는 곳이 바로 김카메라이다. 렌즈는 이곳에서 깎지 않지만 렌즈 마운트는 무엇이든 맞게 깎아준다. 사진기를 개조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곳에 문의할 필요 없다. 여기서 가능하다면 되는 것이고, 여기서 안 된다면 그것은 가망이 없다.
김병수 님, 언뜻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40대 초반의 나이로 2급 사진기 수리 기능사 자격을 가진 정통 기술자이다. 정수직업학교를 나왔다고 가보에 계시던 최 선생님을 통해 들었다. 사무실 겸 공장인 320호에 두 대의 선반을 갖춰 놓고 사진기에 관한 모든 것을 손님의 요구대로 만들어준다.
내가 제일 많이 이용하는 것은 펜탁스 67과 645에 맞게 렌즈 마운트를 개조하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러시아제 30mm 렌즈(ARSAT. 30mm. f.3.5 No.941711)를 67마운트로 개조하여 펜탁스 중형 사진기에 쓰고 있다. 이것은 67 사진기에서 어안 렌즈의 효과를 가져 오고, 또 어댑터를 이용해서 645 사진기에도 쓰기 때문에 67 사진기의 45mm 렌즈와 645 사진기의 35mm 렌즈를 가질 필요가 없어졌다. 그밖에도 러시아제 500mm f.5.6, 1,000mm f.10 반사 망원 렌즈를 펜탁스 67 마운트로 개조해서 쓰고 있다. 렌즈 후드를 깎는 일도 간단하다. 괜히 일본에서 주문해서 비싼 값 치르지 말고 김카메라에 가보라.
일본에는 전문 제조업체에서 별의 별 어댑터가 다 나와서, 니콘에 캐논 렌즈를 끼우거나 펜탁스에 미놀타 렌즈를 끼우는 등 렌즈 호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라이카 렌즈를 일본 사진기에 끼울 수 있는 어댑터가 여러 종류 있고, 게다가 핫셀 블라드 마운트의 칼 자이스 렌즈를 펜탁스 67이나 645, 마미야 645 등에 끼우는 어댑터도 시판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형 사진기의 렌즈를 니콘이나 캐논 등에 끼우는 어댑터가 제품으로 나와 유통되고 있다지만, 서울에는 그리 다양하게 들어와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 가격도 만만치 않아 칼 자이스 렌즈를 일제 중형 사진기에 끼우는 어댑터는 100만 원 정도나 된다고 한다.
김카메라에 가서 핫셀 블라드 마운트의 렌즈를 펜탁스 645에 맞도록 하는 일제와 똑같은 어댑터를 만들면 15만 원 정도 든다. 그렇다고 질이 떨어지느냐? 아주 정교하다. 제대로 만들어서 확실하게 맞춰본 다음 내준다. 나는 ‘김카메라’를 아주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만약 여기서 이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일제 어댑터 구하려고 숱한 외화 낭비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욕심 같아서야 렌즈도 가공하고 연마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것까지 바라기는 무리라는 것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최신형의 전자회로 같은 것까지 손보기는 어렵지만 쇠로 깎아 만드는 것은 여기보다 더 잘할 곳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술자들은 손재주가 아주 우수해, 없는 부속은 스스로 깎아 만들어 쓴다. 일본은 사진기 제조업체에서 필요한 수리 부품을 공급해준다지만 우리는 공식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부품 조달에 애를 먹었고, 궁여지책으로 웬만한 것은 스스로 만들어 쓸 정도가 된 것이다. 사진기를 수리하는 곳은 김카메라가 아니라도 잘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그러나 수리가 아닌 개조는 김카메라가 단연 독보적이다.
나는 깎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고마워서 수고비에 한 번도 이의를 단 적이 없다. 어떤 때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나올 때도 있지만, 부족한 돈은 다음에 가져다주는 것으로 해결하곤 했다. 오히려 내가 소개해서 간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팔아서(?) 수고비를 깎아달라고 했다는 얘기를 풍문으로 듣지만, 내가 끼어들기도 뭐해서 그냥 모르는 체한다.
왜 사진기를 개조하느냐? 그냥 한번 해보는 것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제 렌즈를 일제 사진기에 쓰려고 마운트를 바꾸지만 나는 주로 러시아제 렌즈를 사서 개조한다. 러시아제 렌즈는 값이 싸기 때문에 마운트를 개조해도 일제보다 싸게 먹힌다. 펜탁스 67의 어안 렌즈는 100만원이 훨씬 넘어가지만 러시아제 개조하면 60만원이면 충분하다. 67의 1,000mm 반사 망원 렌즈도 펜탁스 제 것보다 1/3 정도의 가격이면 쓸 수 있게 만든다. 사진기와 렌즈 개조하는 것이 취미인 사람들도 있다지만 나는 그런 수준은 못되고 싸게 사서 비싸게 쓰려고 개조해보는 것이다.
35mm 사진기 렌즈는 서독에서 만든 것은 비싸서 못 하지만, 동독에서 나온 자이스 예나(Carl Zeiss Jena)는 일제보다 저렴하여 마운트를 개조해도 일제보다 싸기 때문에 나는 35mm와 135mm 등 프렉티카 렌즈를 2개 개조해서 펜탁스 35mm 사진기에 쓰고 있다.
그리고 그냥 한 번 해보는 것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 위해서 사진기를 사고 만지지만 그 사진기 자체도 만지는 즐거움이 큰일이다. 사진기 만지는 것이 취미인 사람은 예지동 사진기 골목과 김카메라에 들러 보라.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김카메라는 예지동에서 지금은 충무로 중부경찰서 부근으로 이사를 갔다.
'사람과 사진과 사진기 > 사진기와 렌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을 먹고 마시는 곳, 진미통닭 드림호프(2) (0) | 2011.02.27 |
---|---|
꿈을 먹고 마시는 곳 진미통닭 드림호프(1) (0) | 2011.02.27 |
가보카메라(3) (0) | 2011.02.26 |
가보카메라(2) (0) | 2011.02.26 |
가보카메라(1) (0) | 2011.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