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7. 19:11ㆍ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우리가 네 번째 전시회할 때, ‘작품집’ 회원 소개하는 난에 내가 진미에서 먹은 닭이 2,400마리라고 써서 이를 확인하는 전화가 여러 번 진미로 왔고, 또 찾아와서 묻기까지 하더라는 얘기는 더 이상 전설이 아니다. (그 진미가 이제 ‘드림’으로 이름을 바꿨다.)
난 진미의 전기구이 통닭을 좋아한다. 다니며 먹어본 통닭 중 진미처럼 맛있는 것은 아직 없었다. 먼저 전기 구이로 해서 익혀낸 다음 기름에 살짝 튀겨내는 전기구이 통닭은 기름이 다 빠지고 담백하여 다른 통닭집의 것들과는 판이하게 맛이 다르다. 어떻게 2,400마리나 먹었냐고? 아니, 지금은 2,700마리가 더 될 것이다. 지난 8년간 평균 잡아서 주 2회는 진미에 갔으니까, 1년에 백 번 이상 들렀고, 한 번에 평균 세 마리는 더 먹었으니까 연 3백 마리 이상 치웠고 8년이면 가볍게 2,400마리가 넘어간다. 물론 혼자서 먹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제자들과, 때로는 후배들과 친구들, 때로는 사진클럽 회원들과 같이 갔다. 그렇게 계산해서 8년간 먹은 닭이 아마 2,400마리 이상 될 것이고, 작년과 올해는 조금 덜 다녀서 2,700마리로 계산한 것이다.
내게 종로에 꼭 들러야 할 집을 꼽으라면 첫째가 ‘가보’이고, 둘째가 ‘진미 통닭’(現 드림 호프)이다. 진미는 종로 3가 초입 시사영어사 건너편 차가 많이 안 다니는 골목 안에 있다. 처음에 어떻게 진미에 가게 됐는지는 나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골목밖에 즉 종로 대로변 가까이 있었다. 국일관과 시사영어사가 마주 보는 사거리에서 파고다 극장 가는 초입에 위치해 있었고, 2층과 1층을 쓰다가 뒤에는 1층만 썼다. 그러다가 1996년 초에 문을 닫았다가 얼마 후에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 현재 위치에서 지금까지 닭을 튀겼지만, 올 8월 2일에 문을 닫고 근처 어디론가 옮겨서 다시 시작할 모양이다.
처음 다닐 땐 통닭이 지금보다 커서 더 푸짐했던 것 같다. 진미(드림) 통닭은 맛도 좋고 값도 싼 편이어서 나는 대학에 합격한 제자 축하연, 떨어진 제자 위로연, 군대 가는 제자 송별연, 제대한 제자 환영연, 또 제자들 선후배 상견례 시키는 장소로 많이 이용했다. 그때는 맥주도 500cc가 아닌 1,000cc 잔이 유행할 때여서 보통 3~4천씩 마시곤 했다. 내가 제일 공들였던 영일고 15기 애들과 참 많이 드나들었다. 그들뿐이 아니고 내가 조금 좋아하는 제자들은 기수와 관계없이 시도 때도 없이 여기서 만났다.
나를 잘 안다고 하면서 진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간첩이라고 할 만큼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진미에서 만났다. 아주 옛날에 만나고 헤어진 친구라면 몰라도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모두 진미를 잘 안다.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도 3차에는 꼭 진미를 들른다. 먼저 처음 자리에 있을 때는 내부가 너무 허름하고 지저분해서 여자 후배들 같이 가기는 좀 내키질 않았지만, 지금은 화장실도 괜찮고 그런 대로 깨끗하여 누구와 가도 문제가 없었는데…….
서울클럽 회원들도 내가 끄는 바람에 너나없이 드나들고 또 다른 사람과도 같이 다녀 진미에 들르면 언제든 아는 사람 한둘은 볼 수 있었다. 또 나의 제자들이 종로 3가를 지나가다가 내가 있을 줄 알고 들어와 우연히 만나는 일도 흔했다. 졸업생이 아닌 현재 재학생들도 이참 저참에 소문을 듣고 진미에 나타나 내 이름 대면 잘해 준다고 드나든단다. 그들 모두에게 이제 자리를 옮긴다고 알려야겠다.
우리 서울클럽의 품평회가 있는 날은 밤 10시쯤 되어 2차 하러 들렀고, 촬영 갔다가 조금 일찍 오는 날은 20여 명씩 한꺼번에 들러 소란을 떨기도 했다. 나는 혼자서는 절대 술을 안 마시기에 꼭 여러 사람과 몰려 다녀, 진미에 셋 미만의 숫자로 들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보통 10명 안팎으로 다녔다.
진미는 통닭만 맛있는 것이 아니다. 철에 따라 나오는 김치도 정말 감칠맛 있다. 젓갈을 듬뿍 넣고 담은 김치는 맥주 안주로는 아까울 정도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주는 김치는 아니지만 여기에 들러 나 때문에 김치 얻어먹은 여자들은 모두 김치 맛에 감탄하곤 했다. 쫄면 사리 넣어 나오는 골뱅이도 다른 집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양도 많이 주지만 양념과 정성이 꼭 집에서 차린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결정적인 이유, 내가 가면 언제든 이선희 노래를 틀어준다. 나는 가수라고 하면, 남진, 나훈아, 조용필, 이선희, 최유나, 김난영 정도만 인정하지만, 노래가 제일 좋긴 이선희이다. 이선희 테이프는 주로 히트곡 모음이다. 처음 사다 준 것은 너무 틀어서 아주 갔고, 두 번째는 내가 편집한 것을 갖다 놓고 1년 가까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은 이선희 11집을 갖다 주었더니 내가 가면 들려준다. 내가 앉는 자리는 늘 두 곳 중의 하나이다. 보통 몰려다니기를 좋아하므로 8명에서 20명까지 같이 가기에 가장 큰 자리를 트면 18명 정도 앉고, 또 4~5명이 가면 한쪽에 꼭 앉는 자리가 있다. 이것은 진미 아줌마와 우리간의 말없는 약속이다.
진미는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하루에 보통 닭 50마리와 1만cc 맥주 다섯 통은 팔린다니까 이 정도면 썩 잘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다 보니 사장님과 아줌마와 아르바이트생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진미에서 일했던 사람 중 내 기억에 남는 사람이 여럿 있지만 이름은 하나도 모른다. 내가 다닌 초창기부터 있던 아가씨는 참 순박하고 친절했으나 결혼하면서 떠났다. 내가 자주 다녀서만은 아니겠지만 나에게 참 잘해줘서 지금도 가끔 기억나곤 한다.
또 한 사람은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의 아르바이트 겸 주방 보조 아가씨로 살을 빼려고 일했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 아가씨가 선생님인 줄은 그만둘 때까지 까맣게 몰랐었다. 아마 알았다면 언제 맥주 한잔 같이 마셨을 것이다. 어쨌든 선생님이 아르바이트했다는 것은 조금은 충격이었고, 그렇게까지 해서 살을 빼야 되나 하는 회의도 들었다.
연변 아줌마, 흑룡강성에서 왔다고 들었다. 한 번도 얘기 나눠본 적 없지만, 내 인사는 ‘아줌마 안녕!’, 아줌마는 ‘선생님 안녕!’이 인사의 전부다. 가족과 떨어져서 정말 이역만리에 와서 돈 버느라 고생한 연변 아줌마. 이렇게 떠날 줄 알았다면 ‘좀더 관심 가지고 도와 드릴 걸’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늘 시간에 쫓기면서 빨리 마시느라 따뜻한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해 참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와서 만난다면 우리 클럽 회원 모두 반가워 할 것이다.
진미 사장님, 사실 사장님이라는 호칭보다는 ‘아줌마’가 더 친근해서, 사장님이라고 부른 적은 거의 없다. 성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짓궂은 병창이 형님은 내가 아줌마 때문에 진미에 간다고 어지간히도 놀려댄다. 내가 보기엔 형님이 아줌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친절하지만 좀 차가운 인상이고, 불필요한 언행이 절대 없다. 서 장학관님은 이런 부분을 별로 안 좋아하시지만, 이런 자세가 오랜 기간 진미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재산이 아닌가 싶다. 우리 팀뿐이 아니라 다른 단골손님도 많기에 버텨올 수 있었다고. 그렇다, 진미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나만이 아닌 것이다.
이제 진미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간판을 바꿔 달 것인지, 그대로 둘 것인지는 모르지만 진미 아줌마 없는 진미는 진미일 수 없다. 진미는 종로 명소 중의 하나인데 없어질 수야 없지 않은가? 우린 진미가 있기에 종로에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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