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먹고 마시는 곳 진미통닭 드림호프(1)

2011. 2. 27. 19:09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어제(1999. 7. 23) 진미에 갔었다.

약속도 없이 가보에 나갔다가 서 장학관님, 구원이 형님 만나서 단성관으로 가 소주 한 잔 하였다. 단성관보다 동원집으로 가고 싶었으나 어떻게 우물우물 하다가 그리로 간 것이다. 무슨 얘기 끝에 코리안 소세지에서 서빙하는 기효가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서 장학관님이 거기 가보자고 하셨다. 미인에 대한 기준은 다르지만 여자 좋아하는 면에서는 나와 항상 일치하는 장학관님이라, 여자 얘기만 시작하면 척척 돌아간다. 곰바우 소프트 세 병 마신 뒤에 호출해서 뒤에 온 대하까지 합류해 코리안 소세지로 가서 참이슬 두 병을 더 마셨다. 취기에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장님 불러 순대와 곱창에 대해 아는 체하다가 진미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진미가 주인이 바뀔 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진미 호프’, 아니 ‘진미 통닭’. 대한민국 통닭의 대명사 ‘진미’가 주인이 바뀐다니, 이 무슨 아닌 밤의 홍두깨란 말인가. 술이 확 깨어 몇 번을 되물었지만 비밀유지를 부탁하면서도 사실이란다. 나만 흥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넷이 다 흥분해서 진미로 몰려갔더니, 늘 붐비는 진미였지만 그날따라 조금 한산해 보였다.

진미에 10년 가까이 드나들었어도 아줌마, 아니 사장님과 같이 자리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자리로 모셨다. 생맥주 딱 5백 한 잔씩만 하자고 서 장학관님, 구원이 형님과 약속했기에 안주도 주문하지 않고 앉았으나, 연변 아줌마가 마른안주를 하나 서비스로 가져왔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코리안 쏘세지에서 들은 이야기를 내가 물었더니 사실이란다. 8월 2일까지만 영업하고 내 주게 되었단다. 건물 주인이 권리금과 월세를 올려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른 집들은 IMF 이후 세가 20%씩 내려가는 형편인데도 유독 여기만 세가 올라가는 것을 납득할 수 없고, 또 월세를 3백만원 가까이 주면서까지 할 수가 없다고. 그렇지만 이 근처에 자리를 물색중이니 곧 다시 할거라는 얘기였다.

진미는 내가 제일 많이 드나드는 맥주집이다. 종로에 나오면 꼭 들러 봐야하는 집으로 되어 있고 우리가 가면 언제나 잘해 줘, 어디 가서나 진미는 내 단골집으로 얘기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여기에서 마신 맥주를 통으로 담으면 8톤 트럭 한대 분량이 넘을 것이고, 먹은 통닭도 웬만한 양계장 하나 분량은 될 것이다. 그 많은 양을 마시고 먹는 동안 여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가.

내가 진미를 내 집 드나들 듯 하니까 많은 분들이 이상한 농담을 하며 놀리곤 했지만 여기 여 사장님과 같이 앉아 얘기를 나눈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언젠가도 진미가 자리를 옮겼을 때 소식을 못 들어서 종로 3가를 이 잡듯 뒤져서 간신히 찾아냈는데 또 옮겨갈 거라니……. 그래도 이번엔 내 전화번호, 호출번호 다 챙겨두었단다. 옮기면 연락하려고……. 대학을 졸업한 아들과 딸이 집에서 놀다가 최근에 취직이 돼서 기쁘다는 얘기,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단골손님이 많아 장사가 괜찮게 되었다는 이야기, 장소에 대한 걱정 등 처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 듣느라 나는 5백을 두 잔 더 추가했고 구원이 형님과 서 장학관님도 5백씩 더 마셨다.

조금은 마음이 놓여서 인사하고 나오려니까 이번엔 연변 아줌마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인사를 한다. 깜짝 놀랐더니 곧 중국으로 들어간단다. 좋지 않은 일은 겹쳐서 온다더니……. 말이 통 없어서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았으나 후에 들으니 연변서 온 조선족 아줌마였다. 내가 잘해 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단지 그냥 술 마시러 다니는 손님 중의 하나일 뿐인데 서운하다고 눈물까지 흘리다니, 이런 아줌마가 어디 또 있단 말인가. 우린 넷 다 숙연해져 아줌마 손을 잡고 ‘다시 나오면 볼 텐데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의 말을 전하기에 바빴다.

“형님, 우리 모레 일요일에 송별회 합시다.”, “그려, 이 총무가 다 연락해”, “장학관님 오실 수 있죠?”, “그럼 꼭 나와야지.” 우리가 송별회 멋지게 해서 아줌마를 기쁘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