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카메라(3)

2011. 2. 26. 18:06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요즘 서울 시내에도 ‘전국에서 제일 싼 집’이란 표어를 내걸고 사진기나 렌즈, 필름 등을 할인 판매해 사진인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곳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종로 3가에도 있고 회현 지하상가에서도 본 것 같다. 정말 싸냐고? 그것은 내가 일일이 알 수 없지만 사진 재료 싸게 사려거든 종로 3가 가보카메라로 가보시라. 거기에 사진재료 싸게 파는 월드포토가 있으니까.

가보카메라와 월드포토는 같은 집은 아니지만 같은 장소에 있어 같은 집이나 다름없다. 월드포토는 역사가 오래된 집은 아니다. 종로 3가에 오래 있던 ‘익성사’가 충무로로 가면서 ‘일출’이 되었고, 그 자리에 ‘동명사’가 생겼다가 없어지고 자리를 조금 옮겨 다른 주인이 월드포토로 만든 것이다. 월드포토는 가보카메라와 한 곳에 있어 입구로 들어서면 사진기와 렌즈를 취급하는 가보카메라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필름, 현상 재료, 인화 재료, 확대기 등을 취급하는 월드포토이다.

종로 3가에 가면 사진재료를 취급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삼보카메라와 함께 있는 세기 상사, 서울극장 맞은편의 서울상사, 거기서 분리되어 나온 청운, 이런 곳에 가면 필름이나 사진재료 등을 정말 싸게 살 수 있다. 어느 곳이나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도매점으로, ‘전국에서 제일 싼 집’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고를 수 있다.

나는 월드포토를 좋아한다. 내가 거기서 사는 것은 고작 필름뿐이지만, 언제나 식구처럼 대해준다. 월드의 사장님은 나보다 한 살 위인 원숭이띠인데 나보다 훨씬 노숙하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늘 노숙해 보이는 양복을 입은 탓에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보면 몸에 밴 체질인 것 같다.

월드포토에서 제일 재미있는 사람은 내가 ‘메뚜기’라고 별명을 붙여 준 김덕연 과장이다. 30대 초반밖에 안 된 나이에 앞머리는 벗어져 이마가 훤하고 턱이 뾰족한 역삼각형 얼굴이 정말 메뚜기를 닮았다. 많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좋아하여 자주 속 아프다는 메뚜기지만, 틈만 나면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너무 고맙다. 메뚜기는 여기저기 납품하러 뛰느라 늘 바쁜데 납품하러 갈 때 거리가 멀지 않은 웬만한 곳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나는 그것이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메뚜기가 밖으로 바쁠 때 매장을 책임지는 것은 김미경 양이다. 미경 양은 오로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행하려 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월드포토를 벗어나면 교회 일이 전부라고 한다.

필름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싸다. 정말이냐구? 그렇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싼 곳은 종로 3가다. 간혹 원가보다 싸게 파는 곳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하자가 있는 것들이지 정품은 아닐 것이다. 어떤 필름이 하자가 있느냐? 사용 기한이 한정된 날짜에 가까운 것들이다. 필름은 그 종류에 관계없이 어느 필름이든 필름마다 사용 한정기간이 표시되어 있어, 필름 포장지에 표시된 기한보다 적어도 3개월 이전에 빨리 팔아야 한다. 기한이 2개월쯤 다가오면 필름 값은 반값으로 떨어지고, 기한이 차면 그 필름은 폐기 처분된다. 이런 필름을 슬쩍 싸게 팔면 싸다고 좋아들 하지만 꼭 확인해볼 일이다. 필름을 원가에 판다거나 원가이하로 판다면 반드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품은 종로 3가의 사진재료 도매점이 제일 싸다. 그러니까 월드포토에서 필름을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진용 컬러 필름이나 흑백 필름, 슬라이드 필름을 만들지 않는다. 기술이 부족해서 못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내다 팔 시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필름 시장은 미국의 코닥, 일본의 후지․코니카, 독일의 아그파가 장악하고, 특히 코닥과 후지가 꽉 쥐고 있어 다른 팀은 끼어 들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필름 중 코닥은 필름 곽만 우리가 만들고, 후지와 코니카는 필름원단을 일본에서 가져와 구멍만 뚫어서 말아 끼워 파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지도 않는 필름이 어떻게 원산지보다 더 싼 지 궁금해 할 사람이 많겠지만 그것은 코닥과 후지의 전략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필름을 만들지 않고, 공급받은 필름을 다른 나라에 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필름을 싸게 공급해준다는 것이다.

IMF가 오기 전에는 서울의 필름 가격이 정말 쌌다. 1$당 750원의 계산으로 10년 넘게 공급되고 소비자 가격도 거기에 맞게 책정되어 외국 여행 갈 때 필름 100롤만 가지고 가면 웬만큼 용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1998년 외환위기 때 필름 공급 가격이 1$당 1,500원으로 배가 올랐다. 그때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타격을 받은 것이 필름을 많이 소비하는 사진인들이었다는 것을 사진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컬러 네가 필름은 그래도 크게 오르지 않은 편이나, 컬러 슬라이드 필름은 거의 배로 올라서 사진하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그래도 아직은 우리나라가 필름은 제일 싼 것으로 알고 있다.

월드포토에서 필름 한 롤에 남는 이익이 보통 200~300원 정도이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10롤 사면서 깎아달라고 한다. 1천 원을 빼줄 것인가 2천 원을 빼줄 것인가. 이런 사정을 모르면서 무조건 깎기만 하려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욕을 해댄다. ‘마, 필름 값 아까우면 사진 찍지 마.’

내가 월드포토에서 필름을 사면 거의 원가에 준다. 나는 그것이 미안할 때가 많다. 월드포토의 사장님이나 메뚜기 과장이나 미경 양, 다 사람이 좋아서 누구에게나 잘해준다. 요즘은 사진학과가 많이 생겨나서 필름이나 인화지 같은 것보다 비싼 내구재를 설치하는 일이 많고, 또 그것이 괜찮다고 하여 그런 일이 자주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애들은 너무 약아서 여기저기 다니며 값을 비교하고 1원이라도 더 싼 곳으로 간다. 또 와서는 무엇이든 깎으려 드는 깍쟁이 학생들 보면 밉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가보에 앉아서 필름 사러 드나드는 사진과 학생들, 대학사진 동아리 팀들, 예고학생들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가끔은 메뚜기나 그 팀들이 통닭을 시키기도 하고, 탕수육도 시켜서 월드포토에 앉아서 한 잔 하기도 하는 재미도 있다. 월드포토에는 어디에 숨겨둔 것인지 필요할 때 소주 한두 병은 쉽게 나온다. 어떤 때는 미경 양이 커피도 타서 주는데 이런 일들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사진하면서 즐거운 것 중의 하나가 여러 사람을 접할 수 있는 기쁨이다. 또 여기저기서 주워듣는 이야기도 지식을 늘려 나가는 한 방법이 된다. 나는 사진을 찍기만 하고 현상․인화는 전문점에 맡기기 때문에 현상․인화 약품이나 도구, 인화지들은 살 필요가 없지만 남들이 사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많이 배운다. 김 과장도 직접 사진을 찍거나 빼는 일은 않지만 그 방면의 전문가이다. 무엇 때문에 문제가 되고 왜 제대로 안 되는지를 전화만 받으면 다 알아 처방까지 내려준다.

가보 때문에 월드포토와 인연을 갖게 되었지만 지금은 월드포토도 나와 한 식구처럼 가깝게 지낸다. 필름이나 인화지 사진재료 구할 사람은 월드포토로 가보시라. 정말 싸게 사고 후회할 일없을 테니까. 그리고 운 좋으면 기한 지난 필름 한두 롤 거져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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