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진기

2011. 4. 14. 20:49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항상 바라는 것은, 더 좋은 사진기, 남이 가진 것보다 더 나은 사진기를 갖는 것이다. 누가 가진 것보다 더 좋지 않다면 최소한 전문가가 가진 것과 같은 사진기를 갖고자 하며, 또 가진 것을 자랑하고자 한다. 이것은 사진인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 병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진기는 없다고 하나 사진인은 누구나 완벽에 가까운 사진기를 원한다. 『사진기술개론』이란 책을 보면 ‘제1부 제1장 사진기’에

 

내 친구나, 친구의 친구는 거의 매달 전화를 걸어 어떤 종류의 사진기를 사는 게 좋은지 조언을 구하곤 한다. 아무래도 그들의 관심은 35mm 사진기로서 ‘가장 좋은 사진기가 무엇이냐?’로 일관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불가능하다. 거기에 최고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라이카가 까르띠에-브레송(Cartier-Bresson)이란 사진 초년생을 작가로서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적어도 사진 기구에 관한 한 가장 좋은 것이란 필요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라고 본다. (중략)

그리고 회사 제품마다 디자인과 설계 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만약 12명의 사진가에게 어느 것을 가장 좋은 사진기로 보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여섯 가지 이상의 다른 대답을 얻을 것으로 믿어지고, 더욱이 최근에 그가 지닌 사진기를 내세울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캐논 리플렉스(Cannon Reflex)는 웬만큼 타격에도 잘 견디게끔 견고하며, 콘탁스(Contax)는 전자공학의 결정품이고, 라이카(Leica)는 소유자보다도 수명이 더 길고 자동차 롤스로이스(Rolls-Royce)처럼 몇 년이 지나 중고품으로 처분할 때도 손해보지 않는다. 펜탁스(Pentax)는 작동이 단순하고 간단하며, 낡은 니콘(Nikon)은 매력적인 귀금속처럼 멋져 보이고, 올림퍼스(Olympus)는 축소화된 놀라운 작품이며, 미놀타(Minolta)는 위에서 설명한 내용 모두의 복합체이다. 즉 선택은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21~22쪽)

『사진기술개론(The complete Book of 35mm Photography, Jerry Yulsman』(1987. 8, 이복희 번역, 해뜸)

 

 좋은 사진기를 갖고자 하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특정의 사진기가 다른 사진기보다 더 좋다는 것은 막연한 얘기일 때가 많다. 사진을 제법 찍는다는 소위 사진작가들이 ‘니콘이 더 좋다’, ‘캐논이 더 낫다’는 등,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우습다 못해 경멸스럽다. ‘사진이 잘 나온다’고 말하지만, 사진 잘 안 나오는 사진기가 있다면 그것은 고장난 것이거나 사진인의 조작 실수, 현상 과정이나 인화 과정의 문제일 것이다. 적어도 수십 만원이 넘는 사진기나 렌즈로 찍은 사진이 사람의 눈으로 잘 나오고, 안 나오고를 판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딘가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기계는 사람이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임은 그 기계를 다루는 사진인에게 있다고 본다.

 

 국내 사진잡지에 실린 사진기에 대한 질의․응답 내용을 보면 좋은 사진기에 대한 바람과 그것의 선택이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

 

Q :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심심찮게 나누는 이야기가 좋은 카메라에 대한 구구 각각의 예찬론이 나오는데, 얼떨떨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로 좋은 카메라란 어떤 기준을 두고 좋은 카메라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궁금합니다.

 

A :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좋은 카메라라고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진인들이 좋은 카메라라고 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또는 어떠한 피사체를 주로 촬영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경험한 정도가 각기 다르다 보니 좋은 카메라에 대한 기준 또한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값이 비싼 고가의 카메라가 좋다고 하는가 하면 어느 특정한 제조업체의 어떤 카메라가 가장 좋고 어느 기종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때 여러 가지 각기 다른 기준이 있겠으나 좋은 카메라란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조건에 기준을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카메라가 좋은 카메라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여 본다면, 첫째가 초점이 잘 맞고 샤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카메라는 물론 1965년 이후에 나온 카메라는 반드시 독일의 유명한 렌즈가 아니더라도 대형 사진으로 확대를 하면 샤프니스가 나빠서 사용할 수 없는 렌즈는 없습니다.

35mm 카메라로 찍은 필름으로 롤 지 작업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렌즈가 불량이라서가 아니라 필름 현상을 잘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사진은 어디까지나 렌즈에 의해 결정되고 렌즈의 특성에 따라 사진의 기본적인 질이 좌우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제조업체나 카메라의 브랜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마도 우리 나라 사진인 만의 특유한 아집이라고나 할까 어떤 특유의 고집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특유의 절대적인 카메라에 대한 가치관 때문인지 다른 나라에서는 프로 사진가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의 기종들을 우리 나라에서는 프로 사진가는 말할 것도 없고 사진을 새로 시작하는 아마추어 사진인조차도 사용하는 것을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기왕에 큰마음을 먹고 장만하는 것이니 비싸면서도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카메라를 사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좋은 카메라라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카메라에 대한 상식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진을 오래 했다고 하여 카메라의 성능 모두를 완전히 알 수는 없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단순한 경험으로 카메라에 대하여 그 성능을 주관적으로 평가하고 권유까지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카메라가 가장 좋다고 강력하게 권하는 사람일수록 카메라 렌즈의 성능을 면밀히 검사하여 보았다던가 렌즈의 성능을 검사하는 측정검사 기기 들을 공개적으로 접해볼 기회가 전혀 없는 우리 나라의 사정이다 보니 더욱 강력한 권고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로 인해 우리 나라만의 특정한 카메라의 시장이 형성되었을 정도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좋은 카메라의 성능은 어느 특정한 제조업체의 제품이냐 또는 샤프니스를 논할 것이 아니라 계조 재현에 따르는 입체감을 중요시할 때 보다 좋은 카메라의 선택이 가능해지며 사진의 질 또한 더욱 향상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좋은 카메라를 선택할 수 있는 좋은 테스트 방법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흑백 필름을 넣은 여러 종류의 카메라로 촬영한 필름을 릴에 감아서 같은 현상액에 동시 처리하여 샤프하게 보이거나 맑고 깨끗하게 보이는 필름이 아니라 콘트라스트가 없는 가장 멍청하게 보이는 필름이 나온 카메라가 가장 좋은 카메라라고 판정함이 바람직합니다.

멍청하게 보이는 것은 계조의 재현이 풍부하다는 이야기이며 초점이 맞지 않아 멍청하게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제조업체 또는 브랜드에 구애받지 않는 카메라의 선택이 되시길 바라며 그런 멍청하게 보이는 카메라를 좋은 카메라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상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사진, 1999. 4. 조일남 사진 교실 -

 

 

 어떠한 내용이든 받아들이는 것은 사진기를 사는 당사자의 일이니까, 이것저것 왈가왈부할 것은 못되지만, 잘 알지 못하고 떠드는 비전문가들의 말보다, 이 분야에 전문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전문가의 조언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유명 제조업체의 렌즈라고 해서 다 좋을 수는 없으며, 특정한 분야에 더 전문적인 사진기와 렌즈도 있다. 한 예로, 동굴 속이나 습지, 버섯 등을 찍을 때는 올림프스 OM 4Ti 사진기와 올림프스 주이고(Zueko) 28mm, 35mm 등, 광각 마크로(Macro) 렌즈가 최적이라고 한다. 이 사진기의 생활 방수 기능과 광각 마크로 렌즈는 넓은 부분을 근접 촬영할 수 있어, 비오는 날이나 수분이 많은 동굴 속 등에서 무리 없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올림프스 사진기가 삼류 취급을 받기 때문에 쓰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그 성능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스스로를 ‘사진작가’라고 자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능과 성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진기 하면 무조건 자기가 쓰고있는 니콘이나 캐논이라고 열을 올린다. 자기가 가진 것이 최고로 좋다고 우겨대지만, 무엇이 어떻게 좋은 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어떤 자칭 사진작가는 ‘자기가 가진 기종으로 찍은 사진들이 일본 공모전에 입선된 것들이 많다’며 그러니 자기 사진기가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자랑스레 하고 다닌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경멸하는 사람은, 자기 사진기 좋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자기 사진기 사진 잘 나온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아예 얼치기로 치부한다.

 

 사진기와 렌즈는 화가에게는 붓과 같은 것이고, 조각가에게는 칼과 같은 것이며, 작가에게는 필기도구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화가나 조각가, 작가가 사용하는 도구가 좋은 것이어서,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자랑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작가의 창의력이 아니라, 기계의 힘으로 찍어낸다고 생각하여 사진기가 가진 기능을 강조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사진 찍는 작가의 태도가 아니며, 사진을 좋아하는 사진인의 태도도 아니다.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제대로 잘된 사진을 보면서, 이것은 사진을 찍은 사진인의 능력이 아니라 기계의 힘이라고 말한다면, 사진인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 아닌가? 설령 자신이 가진 사진기가 정말 좋은 것이어서, 남보다 못 찍어도 더 잘나온다면, 그것은 부끄러워서라도 숨길 일이지 자랑하고 다닐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사성어 중에 목식이시(目食耳視)란 말이 있다. ‘눈으로 먹고 귀로 본다’는 얘기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너무 많다. 특히 대부분의 사진인들이 입으로 먹지 않고 눈으로 먹는다. 입으로 먹고 씹어 소화시켜봐야 알 수 있는 것을, 많은 사진인들이 눈으로 먹으며 제대로 먹은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니 내용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더 좋은 사진이 아니라 더 좋은 사진기가 목적이다. 게다가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본다. 누가 뭐가 더 좋다고 하면 그것을 갖지 못해 안달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 누구’도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다. 어디서 귀동냥으로 남의 말을 듣고 부화뇌동하며, 귀로 본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처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떠드는 사진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풍조가 만연하다보니 실제로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사진을 더 잘 찍으려는 노력보다, 사진기나 렌즈 등 도구에 더 연연하는 것이 사진 찍는 사람들의 가장 큰 병폐이고, 이것을 지적하는 나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년필도 여러 질이 있고, 볼펜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 자기 좋아하는 취향이 다르므로, 누가 무엇을 택하든 내가 ‘감 놔라, 대추 놔라’ 얘기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진을 잘 찍기보다 더 좋은 사진기를 사는 것이 목적이고, 그것이 자랑인 사진인들이 많다보니, 그런 사람들 때문에 사진은 작가의 능력이 아니라 기계의 역할이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사진작가’라고 널리 알려진 이름높은 사람들이 자기 사진기나 렌즈를 자랑하는 것을 보고들을 때마다, 그것을 듣는 나는 참으로 씁쓸할 때가 많다.

 

'사람과 사진과 사진기 > 사진기와 렌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사 렌즈  (0) 2011.05.12
나의 첫 사진기와 렌즈  (0) 2011.04.14
사진기  (0) 2011.03.07
사진기 렌즈(2)  (0) 2011.03.07
사진기 렌즈(1)  (0) 2011.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