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0. 20:52ㆍ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피천득 선생의 수필은 중학교 다닐 때 처음 읽었다. 그게 「수필」이다. ‘수필은 청자(靑瓷)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로 이어지는 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국어책에서 읽었다.
그 뒤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국어책에서 보았고, 중학교 3학년 때 드디어 「인연」을 읽었다. 「인연」에서 얘기한 한 편의 소설 같은 아사코와의 이야기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나 다 피천득 선생을 생각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은 내가 집에서 즐겨 읽는 책이다. 집에 책이 여러 권 있지만 한가할 때는 『인연』을 자주 읽는다. 짤막짤막한 글들이지만 읽을 때마다 흐뭇하다. 그 중에「전화」를 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해 못할 이야기가 나와 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서울에서 전화를 놓기가 쉽지 않아 전화는 대단한 프리미엄을 줘야 놓을 수 있었다. 나는 ‘백색전화’니 ‘청색전화’니 하는 것들을 잘 알지 못하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는 보통 사람이 전화를 쉽게 놓기 어려웠다.
이런 현실적 문제보다 내가 더 공감하는 것은 《불쾌한 상대가 아니라면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그다지 짜증나는 일은 아니다. 한번은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참으로 명랑한 목소리였다. 그러고 “미안합니다.” 하는 신선한 웃음소리는 갑자기 젊음을 느끼게 하였다. 나는 이 이름 모르는 여성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싶다.》는 말씀이시다.
내가 그랬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서 삐삐 호출이 왔길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친구 휴대폰의 신호음은 컬러링이 아니라 일반 전화의 신호음과 같은 것인데 이날은 아주 경쾌한 사랑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신호음으로 노래가 나오니 내 마음도 경쾌해져서 ‘아니 이 자식이 무슨 좋은 일이 있나?’하고 전화 받기를 기다렸다. 노래가 한 바퀴 돌고서 두 번 시작할 때에 친구 목소리가 아닌 어떤 아가씨의 상냥하면서도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보세요?” 하고 말을 했더니, 그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은 “어 오빠! 웬일이야?”였다. 아니 어떻게 알고 오빠라니……, 나는 당황해서 우물쭈물 “응 삐삐가 왔길래 전화했지” 했다. 그랬더니 “아 오빠가 잘못 눌렀구나. 그럼 또 연락해” 하고 끊는 거였다.
기분이야 전혀 나쁠 것이 없는 통화였고, 내가 어떻게 실수를 했나 확인을 했다. 친구 전화번호 하나를 잘못 누른 것 같은데 그게 엉뚱한 사람과 연결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게 오빠라고 부를 사람이 누가 있던가를 찾아보고 혹 비슷한 전화번호가 있나 수첩을 이 잡듯 뒤졌지만 그런 번호는 없었다.
피 선생님은 윤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은 분이다. 윤 선생님이 한학에 조예가 깊다면 피 선생님은 영문학을 전공하신 분이다. 수필에 대한 접근도 두 분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윤 선생님이 한문 고전에서 수필의 정신을 찾으려고 하실 때에 피 선생님은 영문학에서 현대 수필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피 선생님은 찰스 램(Charles Lamb)의 수필 얘기를 자주 인용했다. 찰스 램의 『엘리아의 수필』은 영국 수필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피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두 번 만난 적이 있다는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를 나도 좋아한다. 나는 영문학은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중학교 때 국어책에서 읽고 오랫동안 좋아한 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윤오영 선생 같은 수필을 쓰고 싶지만 내가 쓰는 글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생각으로는 현실 비판적인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날카로운 직선이 아니라 늘 어중간한 곡선을 그리기 일쑤이다. 물론 제대로 된 곡선이라면 그것도 문제될 것이 없으나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으로 삐뚤 빼뚤이 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이지만…….
피 선생님이 윤 선생님을 말씀 하실 때에 정이 녹아 있다고 하셨지만 정을 얘기한다면 피 선생님이 더 정에 약한 분이다. 잠에서 깨면 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사가지고 가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고 겨우 한 송이만 가지고 가신 「장미」나, 청양의 어느 한약국에 가서 당신 돈으로 당신 드실 약재를 사고, 그 약국이 약국을 해 먹으려면 꼭 있어야 한다는 약재를 사도록 돈을 주고 왔다는 「시골 한약방」얘기는 선생님의 정에 여린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다 멀리하고자 하는 춘원(春園) 선생이나 여심(餘心) 선생에 대해서도 따뜻한 마음으로 글을 쓴 것을 보면 피 선생님이 어떤 분인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나는 이런 피 선생님을 존경한다. 남이 다 욕하는 사람을 같이 욕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욕을 먹는 사람이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일 때는 사람에 따라 난처해질 수 있다. 세상 사람이 다 욕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혼자서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베드로도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다지 않던가? 그 사람이 아무리 욕을 먹어야 할 사람이라 해도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나도 남들과 같이 돌을 던지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그런 면에서도 피 선생님을 존경한다.
윤 선생님의 글 중에 「수금아회갑서(壽琴兒回甲序)」가 있다.
《오늘이 금아의 회갑이다. 구용산(舊龍山)에서 모여서 놀던 소년 시절이 어제와 같다.〈중략〉금아, 이제 해로하는 부인과 탁락한 자녀와 같이 있고, 학계에 쌓은 업적 길이 후진에 거듭 빛나니 이는 실로 축하할 것이다. 그러나 내 이제 진정으로 권하는 잔은 변함없이 맑고 깨끗하게 육십 년을 고요히 걸어 온 인간 금아에 대한 위로의 잔이다. 〈중략〉금아의 글은 안개 한 겹 가림 없는 금아 그대로의 진솔한 자기다. 그러므로 그를 말할 때 그의 글을 말하게 된다.… 그의 글이 곱다하여, 화문석같이 수월한 무늬가 아니요, 한산 세모시같이 곱게 다듬은 글이다. 그의 글이 평온하다 하여 안일한 데서 온 글이 아니다.… 그는 정의 사람이다. 그는 “녹슨 약저울이 걸려 있는 가난한 약방”을 자기 집 서재에서 그리워하고 있다. 그는 청빈한 사람이다. 그는 “자다가 깨서 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그는 관종의 사람이다. 그는 도산(島山) 장례에 참례 못한 것을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보다 부끄럽다”고 했다. 〈중략〉금아여, 이것이 그대로 그대의 걸어 온 길이 아닌가. 내 잔을 들어 그 길을 위로하며 다시 한 잔 들어 그대의 건강을 빈다. 늙지 말고, 그 맑은 바람, 그 향기를 멈추지 말라.》
지면 관계상 다 옮기지 못했지만 피 선생님에 대한 따뜻한 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글이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지기가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두 분이 어떻게 친구사이인지가 무척 궁금하다. 언제고 피 선생님을 뵈올 기회가 닿는다면 두 분의 인연을 꼭 한 번 묻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피천득 선생하면 떠올릴 수필이 「인연」일 게다. 「인연」은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만큼이나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비록 일본사람이지만 ‘아사코’와의 인연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련한 그리움에 빠지게 한다. 나는 아사코의 어렸을 적 모습을 늘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사코는 「인연」의 독자 모두의 연인일지도 모른다.
피 선생님은 백세를 넘기신 뒤에도 건강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평생에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지 않으셨고 욕심 없는 동심으로 사시니 스스로 원하시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이다. 선생님은 「수필」에서“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게 바로 선생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세로 일관된 삶이셨을 것이니 백 년을 넘겨도 바로 그 모습, 그 색깔일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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