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0. 20:55ㆍ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오랜 시간 동안 윤오영 선생이 쓴 『고독의 반추』라는 책을 구하려고 여러 곳에 알아보았으나 끝내 구하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1974년에 관동출판사에서 출간이 된 것으로 나와 있고, 뒤에 출판사에 화재가 나서 절판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가까운 도서관들에 그 책이 없어서 혜경이가 다니는 이화여대 도서관에 있을까 하고 대출을 부탁했다. 그 책은 거기에도 없었다. 다만 윤오영 선생의 저서로 『곶감과 수필』이란 책이 있다 길래 그 책을 빌려다 읽었다.
내가 윤오영 선생의 글을 읽은 것은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마고자」가 처음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하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게 전달하는 그 글을 고등학교 때 읽으면서 나도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다음에 읽은 수필이 「방망이 깎던 노인」이다. 그 글에도 윤오영 선생의 채취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 뒤로, 「달밤」, 「부끄러움(소녀)」등 겨우 몇 편만 읽고는 더 찾을 수가 없어 안타까워 하다가 이번에 『곶감과 수필』을 다 읽고는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에 며칠을 웃음 지으며 보냈다.
선생님은 수필의 성격을 얘기할 때, 소설은 밤(栗)에, 시를 복숭아에 비유하면서 수필을 곶감에 비유했다. 소설이나 시는 썩 좋은 글이 아니어도 그 형태로 보아 그냥 소설이고 시가 되지만 문학 수필은 비슷해 보이는 잡문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씀했다. 즉 잘 되면 문학이고 안 되면 잡문이라는 말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했다. 문학적 정서에서 출발하지 아니한 것은 글이 아무리 유창하고 재미있어도 잡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나눈다면 내가 쓰는 것은 다 잡문이다.
잘 익은 감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해서 그 감이 곧 곶감은 아니다. 그 고운 껍질을 벗겨서 시득시득하게 말려야 한다. 그리고 말리는 동안에 여러 번 손질을 해야 한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하얀 시설(柹雪)이 앉는다. 만일에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이것을 곶감을 접는다고 한다. 감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곶감은 오래 간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든 곶감이라고 했다. 곶감의 시설은 수필의 생명과도 같은 수필 특유의 것이다. 수필을 접는다는 것은 수필에 있어서 스타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즉 그 수필, 그 수필마다의 고유의 형태이다. 그러면 곶감의 시설은 무엇인가? 이른바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라고 했다. 수필의 묘는 문제를 제기하되 소설의 테마가 아니요, 가정을 나타내되 시적 이미지가 아니요, (저녁)놀과도 같이 아련한 무드에 쌓인 신비로운 정서에 있다고 했다.
과연 선생님의 수필은 이런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선생님은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으시고 중국의 저명한 학자들의 글을 두루 섭렵하시어 문장 자체가 군더더기가 전혀 없지만 요즘 사람들이 그런 경지에 이르기는 요원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니 남들이 다 우러러 보는 석가탑이 되고도 남는다.
피천득 선생이 윤 선생님에 대해서 쓴 「치옹(痴翁)」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상략〉해방 후 그는 교원이 되었다.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얻기 쉽던 대학 졸업장 하나 왜 못 구했겠는가. 그 흔한 교수 자리 하나 왜 못 얻었겠는가. 아깝기도 하다. 긴 세월을 두고 축적하여 온 그 해박하고 정확한 지식. 그 예리한 분석력. 높은 안목. 그리고 그 달변으로 정말 누구보다 못지않은 명강의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만족하였다.……. 그는 일생을 밑지고만 살아왔다.
〈중략〉그는 정(情)으로 사는 사람이다. 서리같이 찬 그의 이성(理性)이 정에 용해되면서 살아왔다. 세속과의 타협이 아니라 정에 용해되면서 살아왔다. 때로는 격류 같다가도 대개로 그의 심경(心境)은 호수 같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자기를 ‘치졸’하다고도 하고, ‘비겁’하다고도 한다. 그것은 위선도 아니요, 허위도 아니다.〈중략〉그는 고희가 다 된 노학자이지만 때에 있어서는 젊은이보다 오히려 더 현대적이다. ‘늙어서 젊은이와 거리가 생김은 세태의 차가 아니라 늙기 전의 나를 잃음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 선비는 언제나 젊다. 문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이다.〈하략〉》
선생님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내가 겪어보지 않고서 윤 선생님의 성격이 어떠하다고 짐작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선생님의 글을 보면 피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들어맞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꼬장꼬장한 성격이면서도 정(情)으로 사신 분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도 선생님의 작품 중에 나오는 「마고자」나 「방망이 깎던 노인」같은 글을 쓰고 싶다. 생각은 그렇지만 내가 더 좋아하기는 피 선생님의 「인연」같은 글이다. 어려서 만났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면서 그 다하지 못함에 아쉬워하는 그런 마음이 더 내 마음과 같기 때문이다.
윤 선생님의 글 중에 「소녀(부끄러움)」는 「인연」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내 마음’을 나타내지 않고 ‘소녀의 부끄러움’만 얘기한 것이지만 시대가 바뀐 요즘 같으면 충분히 가슴이 울렁거릴 내용이다. 소녀의 부끄러움만 얘기하면서 자신의 속내는 전혀 드러내지 않은 윤 선생님의 태도는 바로 선비 정신이라고 본다. 적어도 내가 그런 글을 쓰는 입장이라면 나는 그 소녀의 태도에서 그리움이나 사랑스런 감정을 갖기에 충분했을 거라고 본다.
선생님의「행화(杏花)」에서 보면, 친구들을 따라 술집에 갔다가 거기서 아주 유쾌하게 놀아주던 행화라는 여자를 만난다. 행화가 유쾌하게 놀아주던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다음날 다시 친구들과 그 집을 찾았더니 술집이 문을 닫아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헛걸음을 하고 다시 며칠 뒤에 갔더니 행화가 보이지 않아 찾았더니, 그 아이가 선생님이 다녀갔던 날 저녁에 약을 먹고 죽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때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나도 어디 가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꼭 다시 간다. 그 여자를 어떻게 해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서, 다시 보고 싶어서 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정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손에 넣고 싶어서도 아니요, 즐기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기 때문에 다시 보고 싶을 뿐이다.
나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찰밥」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친구들 모임에 찰밥을 싸가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의 추억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사는 동심을 읽을 수가 있고, 「미제 껌」에서 무섭게 변해가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선생님이 사시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천양지차로 좋아졌지만 좋아진 세상에도 여전히 과거에 대한 추억이 생각나고 그리움이 그치질 않는다. 선생님께서 어려운 시대에 교직에 몸담고 계셨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 생활은 너무 호화판인 것 같아서 청빈하게 사셨던 선생님께는 죄스런 마음뿐이다.
선생님은 「글을 쓰는 마음」에서 ‘나는 누구에게 읽히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글은 소용없는 글인 것을 안다. 어느 소설가나 문필가가 소용없는 글을 쓰려 들 것인가. 그러나 나는 문학가가 아닌 것을 스스로 안다. 그런 까닭에 애당초에 그런 야망을 버린 지 오래다.’ 라고 하셨다.
그럼 나도 소용없는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글을 쓰면 돈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돈이 되는 글은 따로 있었다. 나도 문학가가 아닌 것을 스스로 안다. 책을 팔겠다는 야망도 없고 좋은 글을 남겨서 후세에 이름을 얻겠다는 생각도 없다.
다만 나를 아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일일이 전할 수가 없어 이렇게 글로나마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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