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6. 18:59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사는 일에 힘이 부쳐 / 내 몸 하나 세우기 버거울 때마다 / 너를 만나러 간다
별 문제없이 잘 끝나나보다 했던 학회장 자리가 엉뚱한 일로 회오리바람에 휩쓸렸던 것이 1984년 가을이다. 어디서 나온 얘기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경희대학교가 의대, 한의대, 법대만 서울에 남고 다른 단과대학들은 전부 수원으로 이전을 할 계획이라는 학교 내부 문건이 나왔다고 했다.
학교 측에서는 계속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이 사실이 인쇄된 문건이 학생들에게 발견이 되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총학생회 및 단과대 학생회, 그리고 각 학과 회장단이 합의하여 수업을 거부하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날마다 학회장 회의가 있었지만 학회장들이 나서서 사태를 진정시키기는 역부족이었고, 이때는 이미 운동권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결국 학교 측에서 모든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를 하였지만 이미 학생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나 있었다. 학생들이 학교를 믿지 않는 상황이 된 거였다. 그렇다고 무한정 수업을 거부할 수도 없었고, 명확한 답변도 없이 다시 수업에 임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문리과대 학장이던 원병오 박사께서 우리 문리과대 학회장들을 불러놓고,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은 어떻게든 책임을 질 것이니 우선 수업을 재개하자는 간곡한 호소를 하였다.
문리과대학 학회장 중에서는 내가 제일 연장자여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내 얘기가 웬만큼 먹힐 때라 내가 나서서 학회장들을 설득했다. 다시 수업 거부를 하더라도 일단 학장님 말씀에 따라 수업을 재개하자고 얘기가 되기는 했으나 학생들이 다 흩어져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수업을 재개한다고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집집마다 전화를 해서 학생들에게 학교에 나오라고 해야 했다. 내가 저녁 여덟 시부터 열한 시 가까이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된 것은 반도 안 되었다. 시골집에 내려간 학생, 놀러간 학생, 행방을 알 수 없는 학생 등 어떻게 연락할 수 없는 학생들이 그리 많았던지…….
통화가 된 학생들 중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아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우선 학교에 나와서 상의를 하자고 얘기한 것인데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학교를 못 믿는데 아무 힘도 없는 학회장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를 바란 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 중에 1학년이던 여학생 하나가 아주 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깍듯이 인사를 하며, 잘 알았다면서 내일 꼭 나오겠다고 대답을 해서 큰 위로가 되었다. 내가 교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더니, 그 학생은 우리가 교수님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학교에 다니겠냐며 학교에 나와 선배님이 얘기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그 학생이 84학번 지연이다.
다음 날, 내가 정해진 강의실로 나갔더니 회의 정족수인 과반수가 채 안되게 나와 회의를 진행해야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그대로 진행했다. 학교 측과 학장님, 교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이젠 수업을 재개해야 하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여기저기서 반대 의견이 나왔다.
그 와중에 어제 밤에 통화하면서 위안을 주었던 지연이가 손을 들고 일어나 딱 부러지게 얘기를 해서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지연이는 학생의 본분은 공부에 있고, 학생이 교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냐면서 어떤 이유로도 수업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몇몇 이의가 있었지만 나는 그 여세를 이용하여 학회장 직권으로 수업을 재개한다고 선언했다. 나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은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얘기했고, 오늘 당장은 어렵겠지만 내일부터 수업을 재개하니 서로 연락하여 수업에 임하라고 얘기하고 폐회를 선언했다. 그게 다였다.
나를 따르는 학생도 많았고, 학회장 직속대원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후배도 여럿 있었지만 누구하나 그 자리에서 얘기하지 못할 때에 1학년 여학생이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나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지연이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지연이를 늘 잊지 않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어쩌다가 풍문으로만 지연이 소식을 듣다가 어느 날 우연히 집에 가는 버스에서 지연이를 만났다. 지연이는 목동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전화번호를 받았고 두어 번 만났다. 만날 때마다 많은 것을 사 주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서 나중으로 미루다가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 같이 근무하는 홍금보가 지연이 얘기를 들었냐고 해서 무슨 얘기냐고 물었더니, 지연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거였다. 너무나 충격이었다. 한 번이라도 더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지연이가 세상을 떴을 때 알았더라면 내가 가서 한바탕 울어주기라도 했을 텐데 모르고 지나간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지연이를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었는지 지연이가 모르고 세상을 떴을 것 같아 더 아련하다. 지연이는 내 수첩 전화번호에 영원히 1000국-1004번 홍지연으로 남아 있을 거라 확신한다.
산의 품에 안기어 / 이미 / 마음이 고요로운데 종소리로 다가오는 하얀 웃음이 가슴 속을 후려치는구나
-김승기. 「은방울 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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