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6. 18:53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이별가, 錦峰 高敬植 교수와 나
뭐라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라카노, 바람에 불어서
이승 아니믄 저승에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라카노, 뭐라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은 말자, 하직은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라카노 뭐라카노 뭐라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박목월. 「이별가」에서
가장 후회가 남는 날
2007년 5월의 어느 날이다. 오후 세 시경 금봉과 그의 제자 한 사람이 광화문 나의 사무실(일제강점기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 들렀다. 스승의 날 전후라 제자가 금봉에게 약주를 한 잔 대접한 것 같았다. 보아하니 취기가 돌아 얼큰한 상태였다.
금봉은 나랑 한 잔 더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직 낮이고 또 상당한 취기가 있어서 그냥 돌려보냈다.
그 후 경희대학교 10회 동기 모임에서 강릉으로 여행을 갔는데 금봉은 여기에 함께 가고, 나는 공무로 가지 못했다. 그 때 금봉으로부터 지금 등산을 하고 있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내가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이것이 금봉과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 나는 6월 5일부터 13일까지 진상규명위원회의 공무로 미국과 일본에 출장을 다녀왔다. 너무 피곤해서 14일에는 집에서 쉬고 15일 아침에 막 출근을 하려고 하는데 친구인 김진도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고경식이 갔어.”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번연히 알면서도 너무 놀라서 다시 물었다.
“가긴 어딜 갔어?”
“고경식이 죽었어.”
라는 허망한 대답만 돌아왔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믿기지 않으면서도 온 몸에서 기운이 빠져 나갔다.
특별히 앓아서 누워 있지도 않았고 멀쩡하던 친구가 이렇게 갑자기 떠날 수 있는가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그날 저녁 문상을 하고 다음 날 지방 출장 때문에 장지까지 가보지도 못했다. 그 죄송스러움이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다. 아울러 사무실에 왔을 때 약주를 같이 한 잔 나누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 날은 나에게 가장 후회가 남는 날이 되었다.
일년 후 기일에 그의 무덤을 찾았을 때 비로소 금봉이 이 세상에 없다는 실감이 났다. 슬픔이 전신을 휘감는다.
그의 가족, 제자, 친구 등 수십 명이 모여서 그를 추모하는 모습을 보고, 금봉은 저승에서도 외롭지는 않겠구나 하면서 자위를 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막걸리, 소주, 약주, 양주 등 갖가지 술을 무덤에 붓는다. 금봉이 너무 많이 취하겠구나 하는 공연한 걱정을 해 본다.
소위 삼총사
금봉과 아곡(峨谷) 박기서가 경희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나와 셋이 자주 만나게 되었다. 세 사람은 전공은 다르지만 경희대학교 입학 동기인데다 나이도 같았다. 다들 애주가여서 술자리도 함께 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우정도 깊어졌다. 사람들은 우리를 삼총사라고 불렀고 우리도 그 호칭을 싫어하기는커녕 즐기고 있었다.
금봉은 정이 많고 감성이 풍부한 편이다. 아곡은 조직적이면서 세밀하고 시시비비를 잘 따지는 편이어서 실무나 행정가로서의 소질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이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생활면에서는 좀 어리석고 고지식한 편이다. 나는 그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의 지혜 같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세 사람이 술을 마실 때에는 항상 값싼 대폿집을 찾는다. 값도 싸지만 우리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삼총사가 모인 자리는 항상 자유스럽고 거리낌이 없다. 유머와 웃음이 넘쳐흐르고 즐겁다. 어쩌다가 아곡과 내가 경희대학교 부근에서 술을 마시다가 금봉이 보고 싶어 전화를 걸면 밤늦은 시간에도 강변역 근처에 있는 집에서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오곤 한다.
다정다감한 금봉
금봉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정이 많았다. 감성이 매우 풍부했다. 어쩌다가 제자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을 때에는 제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안부를 전부 돌아가면서 묻는다. 제자들이 그렇게도 금봉을 좋아하고 따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제자들이 길에서 인사를 하면 그렇게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한참동안 나눈다. 고개만 끄떡하고 답례를 하는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나는 1990년 초에 정경대학 학장 임명을 받았다. 학장 보직을 맡아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서 경영학과 학생들이 경영대학 분리를 주장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아무리 타이르고 달래도 듣지 않는다. 나는 매일 농성장에 출근하면서 고민이 깊어갔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허리가 아파서 서 있기가 어려웠다. 열흘 정도 침을 맞고 조금 나아졌다.
이 때 금봉이 나를 위로해 준다면서 남한산성에 가자고 한다. 남한산성에 가서 하루 잘 먹고 쉬어서 다시 기운을 차렸다.
나는 한때 개인적인 일로 허탈한 기분에 휩싸인 때가 있었다. 금봉에게 전화해서 내일 당장 여행을 가자고 했다. 정이 많은 금봉은 바로 찬성했다. 내가 여행경비를 대려고 했으나 똑같이 분담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우리는 부곡, 밀양, 표충사를 들러 동해안 쪽으로 갔다. 포항에서 동해안 길을 따라 몇 곳에 머물면서 북상했다. 술을 마시고 둘이서 발가벗고 모래사장에서 몇 시간 잔 적도 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기억력이 뛰어난 금봉
금봉은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 갔다 온 이야기를 가끔 하는데 기억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어느 곳에 가면 어떤 음식점이 있고 거기서는 무엇을 팔고 값이 얼마라는 여행담은 끝이 없다. 같이 여행을 할 때에는 어느 건물을 가리키면서 저것은 언제 세웠다는 것까지 다 말한다. 듣는 사람은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조사할 필요는 없다. 그저 믿고 즐기면 된다. 또 여행을 하면서 유명한 사찰이나 유적지가 있으면 가이드처럼 곧 잘 설명을 한다.
우리 삼총사가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일본 지명을 하나하나 거명하면서 회고하는데 그 정확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봉의 제자 사랑
금봉은 제자들은 무척 사랑한다. 그만큼 다정다감하기도 하다. 금봉의 사제지간의 사랑은 자주 만나고, 함께 여행을 하고 음식을 먹으면서 구체적인 생활을 통한 사랑이다. 이를 통해서 끈끈한 정이 드는 것이다. 제자들도 물론 금봉을 매우 사랑한다.
그의 제자들은 해마다 스승의 날 전후로 금봉을 초청해서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정담을 나눈다. 나도 몇 번 초대를 받아서 자리를 함께 했다. 입학연도가 다른 선후배들이 보통 20명 가까이 모인다. 동기생이 아닌 졸업생 선후배가 해마다 스승을 초대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스승의 친구까지 함께 초대하는 일은 더욱 흔하지 않을 것이다. 금봉이 그만큼 정성을 들여 제자를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금봉의 축시
내가 경희대학교 교수직을 정년퇴직 할 때 停年(정년)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정해 놓은 定年(정년)이라고 주장하는 금봉에게 축시를 부탁하고 그 글씨를 서예가인 신상덕 동기에게 부탁하였다.
금봉의 축시는 다음과 같다.
槐木洞裏眞巨人 괴목동리진거인
世間壽福非定年 세간수복비정년
浩汗學海功德然 호한학해공덕연
豪俊傑丈集萬山 호준걸장집만산
내가 이 시를 평가할 만큼 한시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하지만 친구를 사랑하고 칭찬해 주고 싶은 뜻은 느낄 수 있었다.
축시를 읽고 해설까지 해 주던 금봉의 낭랑한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
역사에서는 ‘죽은 자가 산 자를 잡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말이 있다. 나는 아직 금봉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내 마음 속에는 금봉이 살아 있다. 어떤 때는 금봉을 만나 한 잔하고 싶어서 연락을 하려면 연락할 곳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친한 친구의 죽음인가
가끔 전철을 타고 강변역을 지날 때면 항상 금봉이 떠오른다. 몇 년 전에 이사를 했지만 금봉의 집이 강변역과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 근처 포장마차에서 삼총사가 가끔 술잔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강변역을 지나면서 금봉을 만났다. 나는 금봉에게 물었다.
“그래, 저승에 가니까 편안하더냐?”
금봉이 대답했다.
“야, 편안한지 안 편안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잘 지내고 있다.”
'시우 수필집 > 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방울 꽃 (0) | 2012.03.26 |
---|---|
「찔레꽃」, 『찔레꽃 고운 당신』 (0) | 2012.03.26 |
낙타, 서정범 선생님 영면 (0) | 2012.03.26 |
꽃나무, 서정범 선생님 (0) | 2012.03.26 |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0) | 2012.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