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6. 18:44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대천바다 한 가운데 중침 세침 빠지거다
여나믄 놈의 사공들이 상앗대로 귀 꿰어 내단 말이 있셔이다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소서
조선후기에 나온 걸로 알려진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이다. 중침(中針), 세침(細針)은 중간크기의 바늘과 가는 바늘인데 바다에 빠진 중침과 세침을 사공들이 배를 밀어낼 때 쓰는 상앗대로 바늘귀를 꿰어 들어낸단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있으니 백 사람이 백 마디의 말을 하더라도 님이 짐작해달라는 얘기다. 즉 말도 안 되는 얘기에 귀 기울이지 말고 님이 제대로 판단하라는 당부이다.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우리 국문과 선생님을 둘러쌌던 일이 있어 내가 여기에 그 전말을 옮겨 놓는다.
<서정범 성폭행 루머 사건>
서정범 성폭행 루머 사건 또는 경희대 성추문 루머 사건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 서정범이 무속인을 성폭행했다는 루머가 확산된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는 폭행당했다는 무속인의 말을 신뢰하여 서정범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사건은 8개월간 지속되었으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 대학은 해당 교수를 직위해제 했다. 그러나 이 추문은 ‘루머’로 밝혀졌으며 총여학생회의 사과는 없었다. 경희대학교는 혐의를 벗은 서정범에게 복귀 요청을 했으나 서정범은 학교에 복귀하지 않았다.
2006년 3월, 무속인 권모(38)씨가 한 국문과 명예교수한테 성폭행 당했다고 고소하였다. 그는 서정범이 한국의 무속과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을 연구하면서 만난 사람이었다. 3월 30일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서정범 교수는 자신이 성추행을 할 이유가 없다며 부인하였다. 인터넷에는 성폭행한 교수가 누구냐며 항의여론이 나타났고 서정범 교수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서정범 교수는 자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서정범 교수를 비판하는 여론이 강했다. 수사는 그해 4월 검찰로 넘어가 소송과 논란은 8개월간 진행되었다.
2007년 1월 16일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는 보도자료 배포와 함께 기자회견까지 열어 “교수가 한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했으나 학교 측은 성폭력특별위원회를 구성해놓고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학교를 비판하였다. 당시 총여학생회는 “이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며 혐의를 입증할 만한 중요한 증거가 있음에도 학교 측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며 시간을 끌면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신중히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고, 논란이 가열되자 곧 서정범 교수를 명예교수직에서 직위해제했다.
그러나 2007년 2월 16일 검찰 조사결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30대 여성의 주장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이 여성이 성폭행 당시 녹음했다는 테이프가 편집기술을 이용해 교묘히 '짜깁기'된 사실이 밝혀져 검찰은 해당 여성을 무고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결국, 검찰은 그 무속인의 고소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해 서정범을 무혐의로 처리했다. 무속인의 녹취록은 철저히 짜깁기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많은 관련 사고가 있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조작된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고, 검찰은 오히려 무고죄로 그 무속인을 고발했다. 그 무속인은 서정범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정범의 무죄가 밝혀지면서 이에 대한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한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성추문 사건은 루머로 결론이 났으나, 당시 서정범을 강도 높게 비판하던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는 그에 대한 사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총여학생회는 해체까지 될 뻔했다.
이후 경희대학교는 서정범에게 학교로 복귀할 것을 요청했으나 서정범은 이 요청을 거절하고, 약 2년 뒤인 2009년 7월 14일 세상을 떠났다.<위키백과>
이렇게 자세한 얘기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 것은 불과 2년 전이다(2019년). 내가 이 얘기를 잠깐 들은 것은 우리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2007년이었다.
2007년 1월 1일 오후 좀 늦은 시간에 집사람과 둘이 선생님댁으로 세배를 갔다. 낮에는 우리 집에도 졸업생들이 인사를 와서 같이 얘기 나누다가 좀 늦게 간 거였다. 내가 선생님댁에 세배를 일찍 간 적은 별로 없지만 낮에 가면 대학원생들이나 강사들이 팀으로 세배를 올 때가 많은데 나는 그들과 만나는 것이 싫어서 좀 늦게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미 많은 제자들이 세배를 왔다가 간 뒤라 선생님이 취해 계실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가야 마무리가 될 정도로 술을 더 드셨기 때문에 나는 해가 저물 무렵에 가는 편이었다. 그래서 늦게 도착해서 선생님께 절을 올리고 둘이 술상을 놓고 마주 앉아서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선생님께서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내게 “서정범 선생님이 성폭행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냐?”고 물으셔서 나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얘기가 있었나요?”하고 대답을 했더니 선생님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떠돌고 내가 증인으로 재판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서정범 선생님을 절대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런 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우리 선생님께 “혹 선생님이 그랬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그럴 리가 없지만 술을 많이 드시고 실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의문은 가질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서정범 선생님이 그랬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도 전적으로 동의하신 얘기고 그 뒤로는 그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고 그냥 끝난 얘기인 줄로 알았다.
내가 다른 얘기 같았으면 경희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혹 전화라도 했을지 모르는데 ‘서정범 선생님 성추행’은 정말 내 생각에선 상상도 가능하지 않은 얘기라 관심도 없었고 호사가들이 만든 얘기로 치부하고 잊었던 것이다.
나는 국문과에서 대학 4년을, 그리고 교육대학원에서 다섯 학기를 수강했는데 강의시간이나 혹은 선생님들과 자리를 같이 한 사석에서 음담패설을 한 마디도 들은 적이 없었다. 국문과의 무슨 행사가 있을 때면 선생님들이 담소를 나누시는 자리나 식사를 하는 자리에도 끝자리에 앉아서 선생님들 말씀에 귀를 기울였지만 어느 자리에서든 음담패설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평소에 성적인 얘기나 음담패설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전부 우리 선생님들께 배웠기 때문이라고 감사하고 있다. 우리는 문학을 다루는 공부를 하는 곳이니 요즘 사람들이 볼 때는 다른 쪽보다 좀 심하지 않을까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아니었다.
내가 4학년 때에 경희문인회 행사에도 나가서 심부름을 했는데 그때 놀란 것이 후배 여자가 선배 남자에게 ‘○○ 형’이라고 불렀다고 된통 혼이 나는 모습을 본 일이다. 나이 차이가 10년 정도는 좀 넘지 않았을까 싶은데 후배도 당시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였고 선배는 아주 잘 나가는 극작가셨는데 ‘형’이라고 불렀다고 불같은 화를 내서 분위기가 쏴- 해졌던 것이다.
우리 국문과는 그런 분위기였고 그런 분들의 회장을 맡고 계신 서정범 선생님은 평소에도 대꼬챙이 같은 이미지였다. 선생님은 바람이 크게 불면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왜소하셨고 드시는 음식도 언제나 ‘몇 숟갈’이셨다. 위가 안 좋다고 아무리 맛이 좋은 음식도 두세 번이면 손을 놓으시는 분인데 80세가 넘으신 몸으로 여자를 폭행했다는 말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얘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이 얘기가 이렇게 커지고 서정범 선생님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에 혹 누군가가 뒤에서 사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금도 갖고 있다. 평소에 선생님께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그 무속인을 시켜 무고하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영화, 「폭로」에서 직장 상사인 데미 무어는 마이클 더글라스를 성희롱하고, 그것을 약점 잡아서 자신의 뜻대로 요리해 버린다. 데미 무어는 자신을 성희롱했다며, 마이클 더글라스를 고소하는데 이 때문에 마이클 더글라스는 회사에서 쫓겨난다. 이렇게 성희롱 사건을 만들어내 쫓아낸 이유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이때 성은 단순히 성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혹은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조작된다. 이 영화의 공헌점은 따로 있었다. 성희롱과 폭행 문제에서 남자가 항상 가해자인가라는 화두의 제시였다.
얼마 전 한 무속인이 자신을 서정범 경희대 교수가 성폭행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자 총여학생회는 정액의 DNA가 일치하고 녹취록과 상해진단서등 명확한 증거가 있다며 학교 측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학교 측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서정범 교수를 직위해제 했다. 평생 동안 한국말과 문화, 특히 천대받았던 무속을 학문의 경지로 올린 노학자의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최근 검찰은 무속인의 고소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해 서교수를 무혐의 처리했다. 무속인의 녹취록은 철저히 짜집기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많은 관련 사고가 있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조작된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오히려 무고죄로 무속인을 고발했다. 그 무속인은 서 교수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희롱과 성폭행에서 가해자는 대개 남성으로 인식된다.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도식이 편견 수준으로 각인되어 있다. 특히,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남성은 강자가 되고, 이에 당하는 여자는 약자가 된다. 여론은 사건의 본질에 관계없이 당했다는 여성에게 동정적으로 쏠리게 된다. 많은 사회단체들은 약자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때 가해자로 몰린 남성은 치명적인 명예훼손을 당하거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남성이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일수록 사태는 치명적이 된다. 사실에 관계없이 이를 두려워하는 남성은 고소나 고소 위협을 하는 여성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정말 남성이 가해자라면 자신의 행동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셈이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무죄로 확정된 개그맨 주병진 씨나 권영찬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공인인 남성에게 성폭행범이라는 딱지는 치명적이고 삶 자체의 궤멸이다. 이 때문에 무죄가 확정되었어도 그들의 명예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주병진 씨는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흔히 부도덕한 인물에 대해서는 어떠한 형태의 가혹한 행위도 할 수 있다는 편견이 작동한다. 도덕적 강자의 독선 현상이다. 이때 옳은 일을 하겠다는 도적적 윤리적 동기에 따라 행동하다가 오히려 범죄인이 되는 확신범의 오류에 빠져버린다. 실제로는 약자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마는 것이다. 이번에 서정범 교수의 사례에 대응한 여학생회의 대응이 그러했다.
서정범 교수에 대한 무죄가 밝혀지면서 경희대 총여학생회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비판의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김원 씨의 지적대로 총여학생회는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여학생회는 물론 학교 당국도 신중하지 못했다. 다만, 선한 사람들의 동기를 이용하는 행태에 대해서 더 비판해야 한다. 요컨대, 약자에 대한 보호 심리를 역이용하는 행태가 그렇다.”<데일리안, 김헌식 문화평론가(2007년 3월 28일 기사, 2013년 5월 22일 수정)>
학자로서 수십 년 쌓아 온 업적, 그리고 스승으로서 수십 년 가르친 제자들 앞에서 서정범 선생님이 얼마나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웠을 지를 생각하면 내가 더 부끄럽다. 제자가 되어 선생님의 누명에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 나는 사실 이 얘기가 이렇게 커졌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우연히 어느 날 선생님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다가 인터넷에 나온 얘기들을 보고 너무 놀랐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생님께 씌운 누명이 벗겨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추호도 선생님에 대해 의심을 가진 적이 없다. 설령 아직 누명이 벗겨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 사건을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제자가 감히 선생님의 허물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오랜 시간 서정범 선생님께 너무 무심했다는 반성을 지금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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