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6. 18:38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유리창(琉璃窓)Ⅰ, 은덕이 영면하다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琉璃)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정지용.「유리창(琉璃廠)Ⅰ」에서,
2013년 4월 17일
곧 중간고사 기간이라 시험문제 출제와 원격연수로 종일 정신이 없었다. 미리미리 해 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늘 일을 뒤로 미루다가 시한이 촉박해서 일을 하려니 더 힘들고 꼭 일이 겹쳐서 문제가 된다. 새로운 교과 과정에 대한 원격연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해서 마지못해 신청했는데 깜빡 잊고 있다가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계속 문자가 와서 밀린 것을 기한 내에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가지 일을 하느라 헤매다가 대충 마무리를 했다는 생각에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을 했고, 마포구청 앞에서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씻고 저녁을 먹으려 하는데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80학번 후배인 익성 선생이었다. 오래 연락 없이 지냈는데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나더러 놀라지 말라고 하면서 83학번 은덕이가 오늘 세상을 떴고 가장 친한 친구인 은경이가 장례식장에 혼자 있으며 은경이가 나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참 어이없는 부음이었다.
익성이가 내게 은경이 폰 번호를 알려주면서 은경이가 지금 혼자서 무척 경황이 없는 상태이니 나더러 전화를 해주고 찾아가서 위로를 했으면 하는 말을 넌지시 해서 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제가 해도 될 일을 나더라 하라는 것 같아서였다.
갑자기 밥맛이 떨어져 저녁을 먹지 못하고 은경이게 전화를 했더니, 은덕이가 오늘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 강북삼성병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무섭다고 해서 내가 지금 바로 갈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출발했다.
내가 삼성병원으로 갔더니 은경이는 병원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내가 은경이와 함께 삼성병원 맞은편 커피숍으로 가서 은경이를 진정시킨 뒤에 은덕이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은덕이가 『여성중앙』의 교정부에서 일을 했는데 며칠 전에 출근하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고 MRI촬영만 남겨둔 채 집에서 지냈다고 했다. 은덕이 직장동료가 은경이에게 은덕이가 월요일에 쓰러졌다고 연락을 해서 그 얘기를 들은 은경이가 거기에 바로 갈 형편이 안 되어 은덕이를 택시를 태워 자기네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들은 은덕이가 한사코 거절하고는 혼자서 자기 집으로 갔다고 한다. 은경이가 화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은덕이에게 가고 있다고 전화를 했더니 은덕이가 괜찮다고 오지 말라고 해서 서로 옥신각신했는데 나중에는 은덕이가 화를 내면서 정말 오지 말라고 해 은경이가 그냥 돌아갔다고 했다. 은경이가 경황이 없어 얘기가 중언부언인데 대략 이렇게 전개가 된 것 같았다.
그러고는 오늘 이상하게 느낌이 안 좋아서 은덕이에게 전화를 몇 번 했는데 안 받아 은덕이가 살고 있다는 주소를 가지고 찾아갔더니 문이 잠긴 채로 쓰러져 있어 경찰에 연락하여 경찰이 와서 사고사인지 병사인지 검사해야 한다고 시신을 모셔 갔고, 은덕이 오빠와 언니에게 연락을 해 놓았는데 거기도 별로 내왕이 없던 터라 황당하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고 한다.
은덕이는 근 10년 동안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고 은경이하고만 통화하고 1년에 두세 번 만나는 정도였다고 한다. 은경이는 현 상황에서 가족들이 빈소를 차리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화를 내길래 내가 그것은 가족의 의견에 따르라고 얘기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은덕이 오빠가 은경이에게 전화를 해서 같이 삼성병원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다. 나는 거기 낄 형편도 아니어서 밖에서 기다렸는데 잠시 뒤에 은경이가 나와서 가족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니 자기는 평택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해서 내가 종로 2가까지 같이 가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많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경희대 국문과 83학번은 남자 18명에 여자가 60명이라고 했다. 남녀공학인 학과라고 하지만 여자가 이렇게 많았던 곳도, 많았던 적도 없을 것이다. 혹 간호학과나 여성 위주의 학과에 남자 몇이 섞이는 경우는 있겠지만 문과대학인 국문과에 이런 여초 현상은 절대 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은덕이는 1학년 신입생 78명 중에 차석인가로 들어왔다. 그 덕인지 1학년 여자대표로 선출이 되어 나와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2학년 대표로 학과사무실에 자주 드나들었고 대학원생인 조교 선생들과 친해서 학과사무실을 내 사무실 드나들 듯 했었다.
은덕이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했는데 얼굴이 순박해 보였고 눈이 무척 커서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애니메이션 『개구리 왕눈이』에 나오는 왕눈이 친구 아롬이가 눈이 커서 은덕이 별명이 ‘왕눈이 친구 아롬’이었다. 은덕이는 국문과 여학생 중에 고향이 안성인 은경이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사실 나는 은덕이보다 은경이와 더 가까웠던 사이다. 내가 2학년일 때 1학년이던 은경이와 울릉도답사를 갔다가 가까워진 거였다. 울릉도에 가기 전에는 그저 선후배 정도였는데 울릉도에 가서 보니 은경이가 어른들 챙길 줄도 알고 팀 별로 나눠서 하는 취사도 잘 해서 내가 아주 좋게 보았던 것이다. 울릉도에 답사를 다녀 온 후로 나는 은경이를 많이 좋아했다. 그러면서 은경이와 친하게 지내는 은덕이와도 가깝게 지내게 된 거였다.
은덕이와 가깝게 지내면서 내가 제일 아쉬워했던 것이 은덕이가 교직을 이수하지 않은 거였다. 2학년 때까지의 성적순으로 순위 안에 들어야 교직이수가 가능한데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인지 본인이 그걸 싫다고 안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은덕이가 교직을 이수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은덕이는 아버지가 아파서 돌아가셨던 이야기, 집안 형편 이야기 등을 내게 상세하게 얘기했고 나도 은덕이를 친동생처럼 챙겼다. 혹 누가 보면 사귀는 사이로 오해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가깝게 지냈다.
은덕이가 81학번의 복학생과 사귄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많이 놀란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엔 그 복학생이 전혀 아니었는데 왜 은덕이가 좋아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성실하다는 얘기도 없었고 외모도 별로였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 같지 않은 그 친구가 3학년 과대표를 하면서 국문과 일로 자리를 몇 번 같이 한 것이 두 사람을 가깝게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얼 만큼이나 진전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멀어진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만남이 은덕이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면서 은경이와도 거리감이 생겼고 은덕이는 은경이 통해서 얘기를 조금씩 듣다가 그마저도 끊기어 은덕이 얘기는 더 이상 없었다.
그 뒤 6, 7년 정도 지난 뒤에 우연히 은덕이 전화번호를 알게 되어 내가 몇 번을 전화한 뒤에 통화가 되었고 다시 얼굴을 보았다. 그날은 내가 어느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가 늦게 합류한 은덕이를 만났는데 반가운 마음에 너무 많이 마시고 취해 만났다는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은덕이는 40이 넘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고 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고 오래 만나지 않아서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은덕이와 몇 번을 더 만났다. 한번은 학수와 셋이 만나 광릉수목원 근처에 같이 갔었고 또 두물머리에 같이 간 적도 있었다. 은덕이가 교회에 나간다는 말은 그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번 만나고는 다시 연락이 끊겼다.
은경이와 결혼할 것처럼 보였던 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니 은경이와 가까웠던 은덕이에게는 내가 배신한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혼한 나를 만나는 것이 은덕이에게는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기는 내가 은덕이에게 도움을 줄만한 형편도 아니고 과거의 추억은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나도 은덕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다.
은덕이가 좀 더 나은 환경이었더라면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더 행복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은덕이는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을 나왔으니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그런 무게가 은덕이를 항상 짓눌렀고 그러다 보니 남들처럼 삶을 즐기지 못하고 지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뒤에 은경이가 전화해서 은덕이에 대한 장례 얘기를 전했다. 경찰에서 부검을 했고 화장했다고 한다.
은덕이가 영면했을 때에 은덕이가 조금은 마음에 두었던 것 같은 83학번 기윤이가 폐암으로 투병 중에 있었다. 언젠가 내가 은덕이에게 국문과에 괜찮은 남자가 있었냐고 물었더니 기윤이가 착해서 좋았다는 말을 해서 내가 기윤이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내가 기윤이에게 은덕이와 사귀면 어떻겠냐고 직설적으로 얘기를 했는데 기윤이가 웃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아서 기윤이에게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짐작했었다. 그 기윤이도 몇 년 뒤에 세상을 하직했다. 두 사람 다 내게는 가깝고 소중했는데 나이가 더 많은 나보다 먼저 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시우 수필집 > 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0) | 2012.03.26 |
---|---|
결혼, 고우리 결혼식 (0) | 2012.03.26 |
역(驛), 글쟁이 시만이 (0) | 2012.03.26 |
저문 날의 생각, 박지연 선생님 (0) | 2012.03.26 |
인동(忍冬) 잎, 언제나 중기 (0) | 2012.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