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6. 18:32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저문 날의 생각, 박지연 선생님
저문 날 물가에 앉아
추억을 찾아낸다.
생각도 하나하나
낚아서 챙겨놓고
구름도 바람도 듬뿍
한 망태기에 담아야지.
늦도록 잊고 산 사람
바람처럼 찾아오면
그 무슨 그리움 하나
등불처럼 걸어놓고
강물은 추억으로 넘치거라
바람으로 울거라.
노래가 되고
한 편의 그림이 되는
만경강의 황금빛 들녘은
오늘도 추억으로 흐르고 있다.
저무는 강가에 노을이 섧듯이.
-박지연, 「저문 날의 생각」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이었다.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올 가을 들어 제일 춥다는 날이었다. 하필 월요일에 자습감독이라 다른 요일의 자습감독보다 부담이 훨씬 더 컸다. 거기다가 날도 춥다고 해서 아침부터 하루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이 11월 11일이니 예년 같으면 빼빼로데이라고 해서 애들이 빼빼로를 많이 먹었을 것인데 이젠 좀 시들해졌는지 빼빼로를 먹는 애들도 가져온 아이도 보기 힘들었다.
어제 서울클럽 사람들하고 좀 많이 마신 탓에 오전 내내 힘들었지만 간신히 견뎌내고 오후에는 좀 괜찮아져서 감독 준비를 하는데 박건형 선생이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고 바꿔주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나이가 좀 드신 여성이어서 처음엔 학부형인 줄로 생각했었다. 내게 오후에 전화를 할 학부모가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좀 어리둥절했다. 아이들이 결석을 하면 아침에 엄마들이 전화를 하지만 오후에는 전화를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영주입니다’고 전화를 받았더니 나더러 경희대를 나왔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답을 했더니 당신께서도 경희대 65학번이라고 하셨다. 처음엔 그게 무슨 말씀인지 잘 못 알아들었고, 혹 책이나 보험 등 판촉을 하시는 분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 정신을 차리고 대화를 하다 보니 경희대 국문과 선배이신 박지연 선생님이셨다.
인터넷에서 내 블로그를 보시고 거기 나온 우리 선생님 이야기를 확인하고는 전화를 주신 거였다. 돌아가신 선생님이 조교로 계실 때에 국문과를 다니셨고, 전주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이 학생처장을 하실 적에 그쪽으로 농활을 가셨는데 그때도 잠깐 뵈었다고 하시며, 선생님 생각에 목이 메여 감정을 억제하면서 조용조용 말씀을 주셨다.
우리 선생님에 대해 이런 통화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는데 나도 목이 메이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 뒤에 내게 책을 보내 달라고 말씀하시어 주소를 받았다. 정말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그 시간 이후 자습 내내 다시 우리 선생님에 대한 여러 일들이 떠올랐다.
다음날 나는 『마지막 휴머니스트』를 우체국에 가서 등기우편으로 보내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에 전주에서 박지연 선생님이, 박지연의 시와 산문 『촌스러움에 대한 보고서』를 우편으로 보내 주셔서 받았다.
책에 박지연 선생님의 약력이 나와 있는데
“시인 박지연은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잡지사 기자 및 교직생활을 하였고, 우석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문예창작 과정을 오랫동안 전담 강의하였다. 전북여류문학회장 및 전북문인협회부지부장을 역임하였고 전주시 풍남문학상, 전북여류문학상, 전라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시집 『사랑은 어디쯤 가고 있는가』, 『그 이름을 부르노니』가 있으며, 현재 YWCA에서 아름다운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고 소개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책을 주고받으면서 지연 선생님과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선생님께서 65학번이고 내가 79학번이니(내 말로는 ‘76학번 대우’이지만) 꽤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선생님은 늘 존칭으로 대해 주셔서 품격을 알 수가 있었다. 지연 선생님이 돌아가신 선생님과 그저 그런 선후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지연 선생님 얘기를 집사람과 주변에 가깝게 지내는 후배들에게 들려주었다.
선생님이 나더러 전주에 꼭 놀러 오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주셔서 계속 벼르다가 2014년 7월 30일 수요일에 순희와 둘이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에 갔다. 선생님을 처음 뵙는 자리여서 혼자 가기는 많이 어색할 것 같았고 평소에 순희가 전주에 여행을 가고 싶다는 얘기를 몇 차례 한 적이 있어서 같이 가자고 내가 부탁을 했고 시간이 맞아서 둘이 간 거였다.
지연 선생님이 터미널로 마중을 나와 주셔서 쉽게 뵐 수 있었다. 전주에 도착하면서부터 계속 폰으로 시간과 위치를 주고받아 버스에서 내리면서 바로 뵈었다. 만나서 인사를 드리고 전주 경기전과 한옥마을을 둘러보았다. 전주에 왔으니 최소한의 장소는 보아야 되지 않느냐고 하셔서 그 두 곳을 둘러보고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전주에는 널리 알려진 집들이 많지만 전주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다닌다는 ‘성미당’인가 비빔밥집에 가서 나는 육회비빔밥을 먹었고 순희는 그냥 비빔밥을 먹었다. 길을 걸을 때도 돌아가신 선생님 얘기를 조금 했지만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며 요즘 생활과 우리 선생님에 관한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지연 선생님은 경희대학교 65학번으로 입학을 하시어 졸업하고 전주에 내려와서 교편을 잡으셨다가 학교에서 만난 분과 결혼을 하셨다고 했다. 지연 선생님은 중간에 교직을 그만두셨지만 바깥 선생님은 교장으로 정년을 하셨다고 했다.
두 따님 중 큰 따님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둘째 따님은 나이가 꽤 들었는데도 결혼 생각이 없어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영어와 외국어 실력이 출중해서 지금 외국계 자동차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틈이 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자유여행으로 해외에 많이 나간다고 하셨다. 지연 선생님은 전주 YWCA에서 글쓰기 강좌를 오래 하셨고 지금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우리말 강습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지연 선생님은 국문과에 다니던 시절 우리 선생님과의 여러 얘기를 들려주셨다.
지연 선생님이 국문과에 다닐 적에 돌아가신 선생님이 학과 조교였었다는 말씀은 이미 들었었다. 그런데 가만히 얘기를 듣다보니 그냥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연 선생님이 대학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는 분으로, 예전에 서울여대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김준 교수님을 말씀하셔서 조금 놀랐다. 김준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나도 여러 차례 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연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에 대한 여러 말씀을 하시면서 그 이야기 속에 김준 선생님과 얽힌 얘기도 간간히 하셨다. 그리고 근래에도 가끔 뵙고 있다고 하셨다.
얘기를 듣다보니 돌아가신 선생님이 지연 선생님을 좋아하셨던 것은 분명한데 지연 선생님도 우리 선생님께 마음이 있었던 것도 확실한 것 같았다. 여러 얘기를 들으면서 혹 김준 선생님이 중간에서 우리 선생님과 지연 선생님 사이를 훼방을 놓으신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는 선생님께서 계실 적에 김준 선생님을 여러 차례 뵈었기 때문에 두 분이 무척 가깝게 지내시는 것을 보아왔다. 하지만 두 분 사이에 지연 선생님 얘기가 숨어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두 분이 마주하셨을 적에는 분명 오랜 시간 지연 선생님 얘기가 나왔을 것 같다.
김준 선생님은 전주가 고향이시면서 지역 후배들을 아주 잘 챙기셨다고 하는데 당시 가난하고 직업도 변변치 않다고 우리 선생님과 지연 선생님이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신 것 같은 뉘앙스가 분명히 있었다.
이미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라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지만 우리 선생님께서 생전에 내게 여자 말씀은 하신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전혀 몰랐고 지연 선생님 얘기를 들으면서 여러 정황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내가 크게 놀랐던 것은 우리 선생님이 학생처장을 맡고 계실 적에 고창으로 농활을 오셨다가 지연 선생님을 찾아와서 두 분이 만난 일이다. 잠깐 만나서 차를 마시고 선생님이 가셨다고 하는데, 우리 선생님께서 내게 농활에서 있었던 여러 일을 말씀해 주셨지만 지연 선생님과의 일은 한 번도 꺼내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연 선생님은 말씀을 하시면서 돌아가신 선생님의 여러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았고 나도 지연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 정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마 순희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세 시간 거리가 되기 때문에 나와 순이는 지연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지연 선생님은 또 놀러 오라고 여러 번 말씀을 하셨고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드렸지만 그 뒤로는 뵙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메일로, 전화로 소식을 전하고 지낸다.
위에 있는 시는 만경강 들판 군산시 대야면 ‘옴서 감서 쉼터’에 세워진 박지연 선생님의 시비(詩碑)에 새겨진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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