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진을 보는 눈

2012. 7. 6. 13:59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고등학교 아이들 수능문제집에 나온 지문인데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라 옮겨 왔습니다. 한정식 선생님의 '현대 사진을 보는 눈'이라는 글입니다.

 

 

사진이란 사물의 형태 속에 숨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 어떤 의미를 구체적인 형태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문학에서 작가의 내면적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을‘형상화 작업’이라고 한다면, 사진에서는 이 같은 작업을‘영상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영상화 작업’이란‘의미의 가시화 작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진이란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나 사물 자체의 존재 이유, 즉 사물의 의미를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사물의 관계나 존재 의미는 사진가에 의해 규정된다. 사진가란 카메라를 통해서 그 관계나 존재의 의미를 파악해 영상화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 존재 의미가 파악되었을 때 작가는 셔터를 누른다. 이렇게 셔터를 누를 때 비로소‘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것이다.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사물의 움직임은 고정되고, 고정된 사물은 하나의 의미로 형태화된다.

 

사진을 보는 것은 작가에 의해 통제된 사물을 통하여 작가의 의식을 만나는 과정이다. 사진에 드러난 작가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같을 때 공감하는 것이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 줄 때 감동하는 것이며,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새삼스럽게 의식시켜 줄 때 실망을 하는 것이고, 본 것을 또 보여 줄 때 지루해지는 것이다.

 

사진은 자기표현이요, 자기 발언이며, 사물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요, 세상에 대한 자기 반응이다. 관객이 사진을 본다는 것은 결국 자연이나 인생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듣는’일이다. 사진이 이렇게 사물에 대한 주관적 발언이라고 한다면 사물의 복사·재현에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사진을 찍을 때 반드시 초점을 정확히 맞춰야 할 필요가 없다. 사진에 초점이 맞아야 한다면 그것은 사진이 복사·재현을 목적으로 할 때이다. 그러나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추상적 관념이나 개념의 세계이다. 추상적 관념이나 개념은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곳이 따로 없다.

 

초점이 맞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추상적 개념이나 관념은 구체적 사물을 거치지 않고서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런데 구체적 사물을 거칠 경우, 그 사물의 존재감 때문에 추상적 개념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기가 어렵다. 구체적 사물의 외형이 그 외형을 통해 표현하려 한 작가의 의식을 본의 아니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체적 사물에 초점이 선명하게 맞음으로써 개념에 앞서 사물 자체가 선명한 형태로 앞을 가로막는다. 형태만 보일 뿐, 형태 너머에 숨어 있는 의미를 읽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사진은 창조 작업이기 때문에 구체적 사물을 재현하는 단계에 머물 수만은 없다. 사진가가 찍고자 하는 것은 추상적 개념이지 구체적 사물이 아니다. 모사 또는 묘사가 사진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보니 초점이 안 맞은 것도, 일부러 흔들어 찍은 것도, 그리고 소위 구도를 무시한 사진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현대 사진의 난해성은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구체적 사물을 정확히 재현한 과거의 사진에만 익숙해진 감상자들의 눈에 흔들리고 떨린 사진이 이해될 리 없다. 과거의 문법으로는 도저히 읽어 낼 수 없는 새로운 구문 형태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사진은 과거의 순진한 관람객들에게는 불친절하게 비칠 수도 있다. 이렇게 난해한 현대 사진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겉에 드러난 구체적 형태만을 보지 말고, 속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의도를 읽어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대 사진 작가들의 외침은 과거의 문법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감각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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