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과 제자

2013. 5. 12. 21:56세렌디피티(serendipity)/올드스쿨입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은사님은 많이 계시지만 지금 연락을 취하고 있는 분은 몇 분 안 되십니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이셨던 장석민 선생님, 3학년 담임이셨던 최흥진 선생님, 그리고 고등학교 2, 3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오규한 선생님이 연락이 되시는 분들입니다. 담임을 하시지 않았어도 기억이 나는 선생님이 많으시지만 제가 제대로 모실 수가 없어 찾아뵙지 못해 늘 죄송합니다.

 

 

 어제 대전에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갔다가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거나 찾아뵙곤 하는데 작년에 못 찾아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뵙고 오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대전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가 연락을 취해서 만날 수 있는 동기들이 다섯입니다. 다섯 명에게 다 연락을 했는데 저와 그 친구만 시간이 난다고 해서 둘이 뵙기로 했습니다.

 

 

우리 은사님은 올 해에  춘추가 일흔 넷이십니다. 홍성에서 계시다가 대전으로 오시어 남대전고등학교에서 정년을 하시고 지금은 사모님과 단촐한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사모님 건강이 안 좋으셔서 걱정이긴 하지만 아는 병환이라 조심스레 관리하시면서 지내고 계십니다. 학교에 계실 때는 술과 담배를 일체 안 하시고 남들이 보면 심심해서 어떻게 지내실까? 하고 궁금할 정도로 좋아하시는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낚시를 즐기셨다고 하십니다.

 

대전에서 선생님을 모실 때는, 대전에 살고 있는 제 제자도 불러서 자리를 같이 하곤 합니다. 제가 담임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혼할 때에 주례를 섰기 때문에 많이 가까운 제자입니다. 어제도 그 제자를 불러서 네 명이 함께 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학부와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지금은 박사가 되어 원자력발전소 점검을 하는 자리에 있는 건실한 청년입니다. 결혼식이 열두 시 반이고 선생님 뵐 시간이 여섯 시여서 그 긴 시간을 혼자 보내기가 너무 무료할 것 같아 제자에게 연락을 해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2년 만에 만났기에 그간 밀린 이야기 많이 나누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늘 어려운 분이셨는데 어제 뵈니 많이 바뀌셔서 놀랐습니다.

퇴임하신 뒤에 소일거리가 낚시이셨는데 이젠 낚시를 접으시고 대전 중구청에 나가시면서 봉사활동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날마다 나가시는데 하시는 일이 재미도 있으시고 또 조금씩 수당도 나와서 즐겁다고 하시는데 2년 전에 뵈올 때보다 피부도 더 좋아지시고 유머도 늘으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그리고 약주도 세 잔까지는 받으셔서 더욱 놀랐습니다.

 

 

선셍님께서는 저희더러 퇴직한 이후를 지금부터 준비하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추억에 젖어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선생님과 자리를 같이 한 제 제자도 여러 얘기를 듣고 무척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을 배웅해드리고 우리 셋은 다시 자리를 옮겨 한 잔 더 했습니다. 마침 선생님을 모신 자리가 유성온천지역이었는데 거기서 어제 온천축제가 있어 축제 마당으로 가서 기분 좋게 마셨습니다.

 

 

축제 마당에서 골라 들어 간 집은 제 친구의 제자 아버지가 장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알고 간 것은 아닌데 가서 보니 그랬고, 거기 제자는 여학생이어서 나와 부모님을 돕고 있었습니다. 교직에 있다는 게 참 얼마나 고맙고 좋은 일인지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아서 거나하게 취했는데 우리 제자가 저를 대전역에까지 함께 해주고 KTX를 타고 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을 뵈러 가서 제자를 만나 더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니 정말 저는 행복했습니다.

항상 은사님께는 자랑스런 제자가 되고 싶고, 제자에게는 존경받는 스승으로 남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사로 있는 게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