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粥)'이 한자어인 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쉽게 발음이 되고 그 앞에 어느 말이 붙어도 어색하지 않아서 다들 우리말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죽은 한자어에서 온 말입니다.
죽(粥)의 한자를 보면 가운데에 쌀 미(米)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래는 쌀로 끓이는 것에서 왔을 것입니다. 호박죽이든, 깨죽이든, 팥죽이든, 전복죽이든 모든 죽에는 쌀이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죽은 쌀에서 온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우리말 사전에서 죽을 찾아보니 '곡식을 물에 오래 끓여 알갱이를 무르게 만든 음식'이라고 간단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그렇게 간단한 음식이 아닙니다. 며느리 죽 끓이는 솜씨를 보면 친정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죽을 끓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쌀이나 곡식을 그냥 통으로 끓이는 것이 아니라 갈아서 끓이는데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 요즘은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다들 죽전문음식점에서 사다가 먹을 것입니다. 저는 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씹는 맛이 아무래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거기 뭐가 들어간 죽이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는데 제가 비싸서 못 먹어 본 죽이 있는가 하면 사실 어려서 보리죽도 못 먹어봤습니다. 보리죽은 보리를 대껴 갈아서 쑨 죽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양식이 부족할 때에 이 보리죽을 먹었다고 합니다. 힘을 못 쓰면 죽도 못 먹었냐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죽은 보리죽이었을 것 같습니다. 보리죽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얘기가 스며든 것 같아 그 말이 참 씁쓸합니다....
오늘 낮에 죽을 먹으러 나갈 생각입니다.
위와 장 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했는데 하루 전엔 죽을 먹으라고 해서 점심엔 죽을 사서 먹기로 했습니다. 죽 중에 제일 맛이 없는 게 흰죽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먹어야 될 것 같아서 입맛이 씁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팥죽도 호박죽도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네요,,,,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죽을 쑤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느 죽도 밥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진 않지만 이맘 때면 늙은 호박으로 쑨 호박죽과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다가올 동지에 팥죽도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