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천심?

2024. 4. 24. 05:56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 2주일이 돼 가지만 총선 3연속 패배에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지킨 국민의힘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이 많습니다.

 

하다못해 학기말고사의 성적이 떨어져도 학생들은 무엇이, , 어떻게 잘못됐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해 다음에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국힘당은 관리형과 혁신형 비대위를 두고 아직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위기의식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반성은커녕 당선자들끼리 모여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축하했고, 초선 간담회에는 절반 이상이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니, 백서는 고사하고 반성조차 없는 집권 여당을 바라보는 지지자들은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175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후 가정 먼저 나온 얘기가, 그동안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입법화하지 못한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등 다수의 법안을 제21대 국회에서 완결짓겠다며 단독으로 상임위를 통과시켰습니다.

 

그것이 나라를 위해 필요한 법률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자신들이 여당일 때는 국회의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입법 시도조차 하지 않다가 대선에서 패배해 행정 권력을 잃자 갑자기 나서서 추진한 법안들입니다.

 

이제 총선에 이겨 제22대 국회에서도 마음대로 국회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자 다시 입법을 시도해 지지도가 떨어진 대통령이 또 거부권을 행사하게 하겠다는 속셈인가 봅니다. 안하무인격으로 힘자랑 좀 해보겠다는 심보인데, 동네 아이들끼리 싸움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민주당 압승이 확정되자 차기 국회의장 세평이 나오더니 급기야 법사위원장도 민주당이 맡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나 봅니다.

 

21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은 야당이 맡아 오던 관례를 깨고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위원장을 내놓으라고 몽니를 부리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결국 압도적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여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했던 민주당인데, 이제 22대 국회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모양입니다.

 

게다가 6선으로 최다선인 추미애 전 의원은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라면서 확실하게 민주당 편을 들겠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나섰는데, 다수 의석이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국회는 다수결보다 합의를 우선하는 게 원칙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얻은 압도적 다수 의석은 야당에 힘자랑하라고 주어진 게 아닙니다. 국민은 윤석열 정부를 심판한 것이지, 민주당이 좋아서 찍은 게 아닐 것인데 힘자랑 계속하면 다음번 심판은 민주당을 향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지금 국제정세는 날로 가파르게 변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표류하고 있으니 이 책임도 국민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10일 치러진 총선 패배로 사퇴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민심은 언제나 옳다는 말이 곱씹힌다.

 

선거 결과에 승복했으니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민심이 언제나 옳다고는 볼 수 없다. 민심이 언제나 옳다면, 민주국가는 올바른 정치로 영원히 번영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실패한 민심이 수두룩하다.

 

민주주의의 고향인 고대 아테네만 하더라도, 짧은 전성기를 빼고는 늘 흔들리는 민심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진흙탕을 헤맸다. 마지막에는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지휘관들을 헛소문에 홀려 사형시켜 버렸다. 곧바로 치명적인 실수를 깨닫고 가슴 쳤지만, 이미 떠나버린 버스에 손 흔드는 격이었다.

 

현대에는 잘못된 민심으로 민주정치가 무너진 경우가 무척 많다. 지난 세기에 독일의 나치 히틀러는 국민의 대대적인 지지를 얻고 집권해 민주제도 자체를 깨 버렸다. 낙농 선진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국민의 잘못된 판단으로 허름한 나라가 됐고, 석유 수출로 풍요를 누렸던 베네수엘라는 빈곤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선거 민심이 옳다고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딸을 개인사업자로 탈바꿈시켜 사기 대출을 받은 경기 안산갑의 양문석 후보나, ‘이화여자대학생 미군에 성()상납 주장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비하하는 망언을 한 경기 수원정의 김준혁 후보가 반듯한 상대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됐다. 지역구의 선택은 존중돼야 하지만 안타깝다.

 

서울 종로구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후보가 부인의 명의로 산 미국 아파트 매매대금의 명세를 밝히라는 유권자에게 모욕죄에 해당한다며 위협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상대 후보에게 감옥에 갈 수 있다고 협박했다.

 

그는 애국심과 청백리로 소문난 최재형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물론 인천 계양을에선 수많은 범죄 혐의로 법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민심이 천심이라든가 국민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정치 잠언(箴言)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해진다. 이것은 고대 군주 시대에 최고 권력자인 왕의 오만과 변덕을 견제하기 위한 말이었다. 최고의 권력자에게는 거리낄 바가 없어서 도덕 준칙조차도 구속력이 없는 법이다. 그러기에 최고의 권력자를 견제하고자 민심이나 국민의 목소리를 동원했던 것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민심이나 국민의 목소리로 최고 권력자를 견제할 수 없다. 최고의 권력자가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민심은 천심을 닮아야 한다거나 국민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를 닮아야 한다며 도덕성의 최후 보루인 하늘이나 신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천심이나 신의 목소리도 변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고대 중국의 은나라에서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하늘의 뜻을 알아보고자 갑골로 점을 쳤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하늘이 변덕스러웠기 때문이다. 고대 서양에서도 신들은 변덕쟁이였다. 늘 서로 시기·질투해 싸우고, 최고의 신인 제우스가 나서야 잠잠해졌다. 인간사에도 간섭했는데, 사람들은 신의 약속을 믿고 나섰다가 낭패하기 일쑤였다.

 

만일,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가들이 변덕스러운 민심의 바다를 헤쳐 나가려면, ‘민심이 천심이라며 언제나 옳다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의 충고처럼 천심의 변덕스러운 포르투나(Fortuna·행운)보다는 자신들의 꿋꿋한 비르투스(Virtus·덕성)를 믿고, 용감하게 자유주의 정치 문법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

 

선거 때에 당일치기하듯 변덕스러운 민심을 좇지 말고, 미리부터 자유주의 정치 상징들을 드높이고 자유 이념에 맞는 정책들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왕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된 5·18 묘역에 가려면, 먼저 자유 세력의 상징 자산인 전남 영광의 염산교회나 충남 논산의 병촌성결교회를 들러야 한다. 6·25 때 인민군이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던 곳이다. 상대 세력의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도 상식과 정의에 맞는 자유주의 정책으로 적극 맞서야 한다.>문화일보. 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출처 : 문화일보. 오피니언 칼럼 시평, 민심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한 선비가 세상을 굽어보며 통탄합니다.

 

“'망국(亡國)' '망천하(亡天下)는 어떻게 다른가?

임금의 성()이 바뀌고 나라 이름이 바뀌는 것을 '망국'이고, 인륜과 양심이 사라지고 사회질서가 무너져 세상의 근간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망천하'라 한다.”

 

선비는 통탄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보전할 줄 알아야 나라를 보전하게 된다. 나라를 보전하는 일은 왕후장상들이 생각할 일이지만 천하를 보전하는 일은 미천한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保國者, 其君其臣肉食者謀之. 保天下者, 匹夫之賤與有責焉耳矣.)”

 

세상의 일어남과 무너짐은 필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명언을 남긴 이 선비의 이름은 중국 명말청초(明末淸初) 3대유(三大儒)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고염무(1613~1682)입니다.

 

세상의 흥망은 다른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개개인의 책임입니다. 나라를 흥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보통 사람들이라는 말,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저도 솔직히 별로 믿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은 권모술수를 지닌 자들의 농간에 놀아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