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시대'

2024. 4. 26. 05:36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의장의 중립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나 봅니다.

 

6선에 성공한 조정식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립적 국회 운영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당심이 민심이고 국민의 뜻이라면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고, 추미애 당선인은 의장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했고, 5선의 정성호 의원도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 등에 대해 보이지 않게 깔아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다는 것입니다.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선출되는 국회의장은 다수당 내에서 선수(選數) 등을 고려해 합의나 경선을 거쳐 내정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의장에 당선된 뒤에는 국회법에 따라 당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회였습니다.

 

여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국회를 운영하라는 취지인데, 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 출신이 의장을 맡았지만, 이른바 검수완박법이나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여야가 첨예하게 맞선 사안에 대해선 중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의장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중립 의무를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22대 의장 후보가 되겠다는 민주당 인사들은 입법부의 수장이 될 경우 여야 간, 정부-국회 간에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점은 안중에 없는 듯합니다.

 

민주당 출신 의장이 현안 중재에 나섰던 것을 놓고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우를 범했다고 비난하는 후보도 있고, 원 구성과 관련해선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은 다수당이 맡는 게 맞지 않나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통상 원내 제2, 그리고 여당이 맡는 게 관례인 자리까지 야당이 독식하겠다는 얘기인데, “이재명 대표와, 당과 호흡을 잘 맞추는 사람이 의장이 돼야 한다는 후보도 있습니다. 이 대표의 뜻대로 국회를 운영하겠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나 다름없는 소리입니다.

 

22대 국회도 여소야대 구도 속에 다수의 힘으로 입법을 밀어붙이려는 야당과 이를 막으려는 여당 간에 충돌이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의장이 중심에 서서 끊임없이 여야를 설득하고 협상을 주선해야 그나마 파열음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의장이 일방적으로 출신 정당의 당리당략에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회에서 타협과 양보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동아일보 사설에서)

 

   <대파 값이 민심인 시대다.

 

사람들은 민심이란 표현에 쉽게 주술(呪術)에 걸린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하면 다들 경배한다. 그렇다고 표심이 민심을 온전히 반영하는가. 어쨌든 이번 총선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참패했다.

 

4년 전에는 야당으로서 참패하더니, 이번에는 집권 여당으로서 참패했다. 보수의 초토화 위기에서 겨우 불씨를 살리고도 집권당의 이점을 활용 못 하고, 세 번 연속 다수당 자리를 놓치면서 정치적 소수 세력이 됐다. 이 점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듯싶다.

 

정치 전문가들이 보수 세력의 몰락 원인을 잘 짚어주겠지만, 나는 인문학자로서 이번 총선에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살펴보고 싶다. 이번 총선은 요컨대 명품 백 대장동을 이긴 총선으로 볼 수 있겠다.

 

애초부터 이번 총선은 리스크와 리스크의 대결이었다. 명품백 리스크가 가라앉나 싶었지만 이를 다시 상기시킨 것은 이종섭 호주 대사 사태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총선을 통해 사람들은 천문학적 집단 비리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대장동 사건에 놀라울 정도로 관대했고, 반면 명품 백 전달 동영상에는 더 분노했다.

 

몇 년 전에 아파트값이 수억 원 폭등한 것은 그러려니 하면서 지금 대파 몇 천 원이 오른 것에는 분노했다. 이런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선거 막판에 민주당 김준혁 후보의 검증되지 않은 일련의 역사 해석, 양문석 후보의 거액 편법 대출 및 강남 아파트 매입 의혹 등 초대형 악재가 터져도 보란 듯이 대장동 변호사 다섯 명 전원이 당선했다.

 

지금 우리는 분노 정치의 시대에 들어섰다. 말하자면 정치가 도덕에 감응하지 못하는, 울울한 잿빛 시대에 들어서고 만 것이다.

 

정치의 정()자는 바를 정()였다. 공자가 그랬다. “그대가 올바르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는가.” 정치인이 반듯하면 국민도 반듯해진다. 정치는 반듯함을 실현하는 행위다. 공자 같은 선현의 시대에는 지도자가 분노를 표출하고 백성이 이에 따르는 게 정치 행위라는 생각일랑 전혀 하지 않았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정치 이전에 주술이 있었다. 정치는 제정(祭政)일치의 주술을 극복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런데 정치가 주술을 걸면 사람들은 주술에 걸리고, 주술에 걸린 사람들이 다시 누군가에게 주술을 걸면 정치는 반듯함을 잃고 악순환에 빠진다.

 

나는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한국사회의 젠더 감수성이 아직 흐릿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깊이 들여다볼 문제다. 하늘도 놀랄 이대생 성 상납을 주장한 김준혁 후보는 물론, 미투(me too) 성범죄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몬 민주당 여성 후보도 당선했다.

 

야당 대표가 ····(이태원·채상병·양평도로·명품백·주가조작)’라는 주문을 줄기차게 외자 여론이 술렁거렸다. 이러니까 정치인들이 무슨 망언인들 못 하랴.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결과적으로 압승했지만, 완승은 아니다. 선거 과정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면서 낮은 도덕 감수성을 자명하게 보여줘서다. 국회의원 의석 몇 석을 포기하더라도 여전히 절반을 훌쩍 넘긴 거대 야당인데, 서울 강북을에서 특정 후보를 내치기 위해 잇따라 문제 있는 후보를 버젓이 공천하고, 김준혁·양문석 후보 등을 굳이 끝까지 비호해야 했을까.

 

선거에서 의석에 따라 여의도의 갑과 을 위치가 수시로 뒤바뀐다 해도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퇴행을 우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

 

나는 22대 국회에 입성할 보수적인 소수 정치 세력이 급격히 빛바래가는 보수의 품격을 그래도 지키라고 주문하고 싶다. 또한 나쁜 정객처럼 대파 한 단에 정치적 주술을 걸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정치적 심판과 도덕적 심판이 별개가 아니라는 가능성의 실마리를 보여준 2030 세대에게 나라의 미래를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을 두고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이야말로 비리 종합세트라는 대장동의 기억을 애써 지운 선거다.

 

비리가 있어도, 막말을 쏟아내도 부적격자를 제대로 여과하지 못하는 선거 시스템의 기능 부전을 재확인한 선거로 기억한다.>중앙일보. 송희복 문학평론가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시론, 정치가 도덕에 감응하지 못하는 잿빛 시대

 

   ‘잿빛 시대라는 말이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떨어지고도 반성할 줄 모르며 남 탓만 하는 여당 후보들이나, 당선되었다고 기고만장해서 자기가 무슨 하늘의 명을 받고 국회의원에 당선이 된 줄로 아는 야당 국회의원이나 제가 보기에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물은 흐르면서 자정(自淨)’ 능력이 있다는데 사람은 갈수록 탐욕만 늘어가니 백년하청(百年河淸(백년하청)일 뿐입니다.

 

이런 현상이 앞으로 개선되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질 것이니, 언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광야에서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정말 암담한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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