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박정희,,,

2024. 10. 7. 05:48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지난 
10 1 국군의 날 행사를 준비하다가 장병 2명이 골절상 등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윤석열 정부 들어 국군의날 행사비용이 급증하고 있다"며 공개한 내용입니다.

 

천 의원은 29 "시가행진을 위해 집단강하 등 예행연습 중 장병 2명이 발목 및 아래턱 골절 중상을 입었다" "정부는 왜 병사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군사정권 시절을 연상케 하는 시가행진을 추진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천 의원에 따르면, 국방부의 국군의날 행사 비용은 2020 121000만원, 2021년엔 135000만원이었다가,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2022 376000만원, 지난해 99 4000만원, 올해 799000만원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천 의원은 생활관 개선 예산 집행률이 2021 74.4%에서 2023 65.3%로 내린 것을 짚으며 "장병 복지는 뒷전이고 대통령의 병정놀음에만 심취했다" "국군의날 행사를 축소하고 장병 복지를 챙겨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작자가 지금 대한민국의 정세가 어떤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궁금합니다.

 

 <조선일보 1970 6 6일 자 1면 톱 제목은 하루 전 발생한 해군 방송선 피랍이었다.

 

이름이 방송선이지 어선단 보호 임무를 맡은 현역 해군 함정이었다. 그런데도 단 15분 교전만에 우리 승무원 20명 대부분이 사상된 상태에서 납치당했다. 120톤급 우리 함정은 최대 속력 12노트, 40mm 기관포인 반면, 250톤급 북한 함정은 최대 속력 25노트, 75mm 기관포였다. 애초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여론은 들끓었다. “고기잡이 배도 아니고 어떻게 해군 함정이 끌려가느냐.” 해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육군의 주력 탱크 M-4 76mm, 북한군의 T-54, T-55 100mm포였다. 미국이 2급 동맹국에 주는 F-5는 북한의 최신예 미그 21의 적수가 아니었다. 6·25 이후 북한은 소련 현역군 수준으로 장비를 제공받은 반면,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에 질린 미국은 2차 대전 때 쓰던 퇴역 장비로 한국군을 무장시켰다.

 

두 달여 뒤 애그뉴 미 부통령이 주한 미군 감군 협의차 방한했다. 김정렴 비서실장 회고록은 박정희 대통령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2주일 동안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회담 준비에 온 힘을 쏟았다. 사색하고 메모하고, 다시 사색하고 메모를 수정했다.” 8 25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회담은 예정된 2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4시에 끝났다.

 

점심은 커피와 케이크로 대신했고 아무도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다음 날도 청와대 조찬 형식으로 1시간 30분 동안 추가 회담이 열렸다. 그래서 “7사단 2만 명 이상의 감군은 없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애그뉴는 한국을 출발한 기내에서 “5년 내 완전 철수가 기본 방침이라고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충격 속에 침묵했다.

 

적은 버거웠고, 동맹은 못 미더웠다. 박 정권은 자주국방을 위한 전시체제로 재편됐다. 방위산업을 총괄하는 오원철 제2 경제수석이 1971년 임명되고,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총포, 탄약, 로켓 등 군사 장비별로 개발을 맡는 기구 개편을 했다. 오 전 수석 회고록 5권과 7권에는 ADD 연구원들이 기름 범벅 옷도 못 갈아입고 밤샘 작업으로 병기를 개발해 나간 기록들이 담겨 있다. 과로와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기도 했다. 1973년부터 국군의 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데는 이런 시대 상황이 작용했다.

 

1977 6 23일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의 화력 시범 대회가 열렸다. 2000여 명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보병·전차·포병·공병 합동 공격이 선보였다. 71 11 80mm 박격포부터 77 5월 한국형 장갑차까지 시기별로 개발된 20여 개 국산 무기가 전시됐다. “이제 미군이 떠나도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박 대통령 발언이 신문에 담겼다.

 

1978 9 26일 세계에서 7번째로 유도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북한보다 10년 늦게 방위산업에 착수한 한국이 북한을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소련 국방부 기관지 붉은 별 한국의 유도탄 생산은 핵무기 생산의 예고라는 제목으로 관련 보도를 했다. 70년대 말 극장 영화 상영 직전 대한뉴스에서 군사 장비 화력 시범이 나올 때마다,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는 맨날 똑같은 타령이라고 투덜댔다. 당시 실제 상황을 알고 나니 선배 세대들의 분투에 새삼 숙연해진다.

 

박 대통령은 1979 10 1일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국군의 날, 여의도 행사장에 동원된 장비 중 80% 이상이 국산이었다. 우리 역사상 이렇게 막강한 국군을 가져본 것은 처음이리라. 공산 침략 도배들과 혈투를 거듭하며 막강한 대군으로 성장했다.” 국가적 소명을 이뤄냈다는 뿌듯한 감회가 느껴진다. 비극적 최후를 맞기 25일 전이다.

 

10·26 대통령 시해에 이어 12·12 군사반란을 거치며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2 경제수석실은 폐지됐다. ADD엔 숙청 바람이 불면서 미사일 개발 요원들이 대거 잘려 나갔다.

 

전두환 대통령이 한국형 미사일은 엉터리다. 담당 팀을 해체시키라고 지시했다(오원철 회고록)고 한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정통성 확보를 위해 미국 지지에 몸이 달았던 신군부와 한국의 핵·미사일 개발에 신경이 곤두섰던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짐작할 뿐이다.

 

70년대 초 31로 열세(영국 전략연구소)였던 남북 간 재래식 군사력은 완전히 역전됐지만, 대한민국 안보는 이제 북의 핵·미사일 도박이라는 새로운 위협을 맞고 있다. 박정희라면 이 사태를 어떻게 돌파하려 했을지 궁금해진다.>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주간

 

  출처 : 조선일보 오피니언 [김창균 칼럼], 박정희의 마지막 국군의 날, 그날의 일기장엔

 

  공영방송인 MBC’는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직접 중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일 뉴스데스크에서 국군의날 기념식 관련 기사를 보도하면서 “5000명 동원 병정놀음” “군사정권 방불 등의 자막을 내보냈습니다.

 

우리의 군사적 자긍심을 드높이는 행사를 병정놀음으로 폄훼하는가 하면 79억 원짜리 세금 낭비라며 비판했하면서, 또 윤석열정부를 두고 군사정권을 연상하도록 유도하는 자료를 편집·방송했습니다.

 

MBC는 국군의날 기념식과 시가행진을 모두 중계하지 않고 이미 방송했던 오락프로그램의 편집본을 내보냈습니다.

 

지난해 728일 북한의 전승절 기념 열병식 녹화영상을 KBS·MBC 등 국내 주요 방송사들이 각사 유튜브 계정으로 실시간 송출했다는데 6·25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로 기념하는 전승절 행사를 고스란히 방영하면서, 그것도 북한 조선중앙TV에 저작권료를 지불했다고 지금 대한민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주국방을 위해서 그렇게 애 쓰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정말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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