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4. 5. 07:48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요즘 이라크전쟁에 대한 얘기가 많은 가운데 거기에 우리 군을 파병하는 문제를 가지고 나라가 양분이 될 정도로 서로 상대를 비방하고 헐뜯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제가 한가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파병에 대해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다 자기의견인데 왜 그것을 상대에게 자기 주장을 따르지 않는다고 공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인지 파병을 반대하는 것인지, 미국을 거부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도 않으면서 길을 막고 시위를 하고 경찰에게 대어드는지... 말로는 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상대를 짓이기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도 전쟁을 반대합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평화롭게, 이틀,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교보빌딩의 광고가 아니더라도 남의 공격을 받지 않고 남을 공격하지 않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 남을 공격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그것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규모라도 사회가 구성되면, 즉 집단이 되면 서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본능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외부의 공격이 있으면 서로 단결하여 대항하지만 외부의 공격이 없어지면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을 해서 판을 깨는 것이 사람이 가진 본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사진동호회에 가입한 지가 15년이 되었는데 그간 제가 몸담고 있는 동호회를 거쳐나간 숫자는 기 백명이 휠씬 넘습니다. 그냥 조용히 왔다가 말없이 간 사람도 많지만 집단으로 동반 탈퇴를 하여 새 팀을 만든 사람들도 서넛 됩니다. 하기야 다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까 마음에 안 맞으면 옮겨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꼭 무엇인가 트집을 잡아서 남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는 떠나갑니다.
그냥 자기 집에 침 뱉고 떠나가는 사람들로 끝이면 좋은데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을 끌고 떠나려하는데 제가 더 실망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을 이끌고 다른 팀에 합류하면 스스로 대접받는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돈을 벌 일도 없고, 명예를 얻을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권력을 잡을 일도 저는 아닙니다. 그냥 좋아서, 사람이 좋고 사진이 좋고 사진기가 좋아서 여기 매달려 재미를 얻고 있는데 그런 철새들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이 많아 우울한 때도 많았습니다. 차라리 팀을 만들지 말고 그저 좋아하는 사람 서넛이 움직이는 것도 썩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 서넛도 언제가는 서로 물어뜯게 될까봐 겁이 납니다.
다른 짐승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결코 죽이지 않는다는데 사람들은 배가 부를수록 재미로 남을 죽이고자 하니 정말 무서운 것이 사람의 본능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오늘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도림리 산수유꽃 축제장에 다녀 왔습니다. 우리 회원 아홉명이 같이 갔는데 아침에 출발할 때는 비가 올까봐 걱정했으나 다행이 날이 걷히어 기분 좋게 다녀왔습니다.
축제가 있는 곳에는 당연히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지만 꽃 축제이다보니 사진인들이 무척 많이 왔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진인들이 모이면 왜 남의 사진기에 그리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보다 비싼 것을 가지고 찍으면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자기가 가진 것보다 저렴한 것이면 멸시하는 눈 빛... 이것은 사진인의 본능일까요?
저는 오늘 펜탁스 35mm K2DMD에 비비타 시리즈원 70-210mm f/3.5와 일제 잡표 SUN 24-40mm f/3.5, 탐론 SP 350mm f/5.6 반사렌즈를 가지고 갔었습니다. 짐을 꾸릴 때는 Z-1P에 200mm f/2.8, 100mm f/2.8macro, 300mm f/4.5, 20-35mm f/4.0으로 했는데 전지가 다 되었다고 경고등이 들어와 그냥 간편하게 줌 렌즈로 꾸민 것입니다. 다들 사진을 찍다가도 다른 사진인이 오면 그 사람의 사진기와 렌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어쩌면 사진인의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단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것이 사진인의 본능이라면 저도 똑 같을 것입니다. 저는 남이 가진 사진기를 별로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구형 고물이긴 하지만 라이카를 그런대로 가지고 있고, 핫셀은 애초부터 정이 안 가서 사지를 않았으니 미련이 없고, 롤라이는 갖고는 싶었지만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기 때문에 크게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찍는가 보면서 사진기에 눈이 가는 것은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의 본능과 사진인의 본능, 그것을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하는데 저는 아직도 길이 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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