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 사진기와 신형 사진기

2003. 3. 28. 14:47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요즘은 모든 것이 자동화시대이다.
아무리 복잡한 기계라 할지라도 작동 스위치만 누르면 기계 스스로 알아서 한다. 사진기도 마찬가지이다. 전자 회로가 내장되어 있어 노출, 초점이 자동으로 맞춰지며, 컴퓨터로 조작되는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어, 찍는 사람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모드만 선택하여 스위치를 설정하면 사진기가 알아서 사진을 결정한다. 어떤 신형 렌즈들은 떨림제어 기능을 가지고 있어 사진인의 실수로 사진기가 흔들릴 때 스스로 제어를 한다고 한다. 또 어떤 사진기들은 파인더를 보면서 시선을 움직이면 렌즈의 초점이 사진인의 시선을 따라 조절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자동화가 되어 편리해지다보니 일일이 손으로 조작해야하는 사진기들은 구닥다리가 되어 가정에서나 점포에서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그 성가를 자랑하는 니콘의 FM2와 같은 수동 사진기도 있지만 예전에 나온 레인지 파인더 형식은 정말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렌즈 교환이 가능한 일안반사 형식은 이미 구비된 교환 렌즈 때문에 쉽게 처분하지 못하지만 일제 레인지 파인더 사진기들은 아예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 사진기 점포에 가보면 먼지을 뒤집어 쓴 채 한쪽 구석에 폼 없이 뒹굴고 있다. 캐논 G3나 야시카 일렉트론 같은 사진기들은 예전에 명성을 날리던 것들인데 지금은 싯가 5만윈도 안나가는 싸구려 사진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런 사진기를 알 나이가 아니지만 얼마 전에 딸 아이를 주려고 야시카 일렉트론을 하나 샀다. 아이가 자동 초점 형식보다 더 멋이 있다고 아주 좋아하고, 사진도 잘 나온다고 자랑이다. 며칠 전에 종로 3가를 지나다 보니까 캐논 G3가 있어 사려고 했더니 고장나서 못 쓰는 것이란다. 아들 녀석에게 주려고 사려했던 것이다.


예전에 쓰던 구형 사진기 중에 오림프스 펜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프사이즈라고 해서 필름 1컷으로 두 장을 찍는 것인데 이것을 하나 구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지금 누가 하프사이즈를 쓰랴마는 구할 수 있다면 하나 가지고 싶다. 사진 현상소에서 소풍갈 때 빌려주던 그 사진기가 오림프스 펜이다. 오림프스에서는 일안반사 형식의 하프사이즈도 나왔는데 그것들은 교환 렌즈를 구비한 세트로 거래되는데 그 가격이 지금도 무시못할 만큼 고가라고 한다.


요즘 한동안 오갈데 없던 구형 사진기들이 사진기 점포에서 하나 둘씩 사라져서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그것들은 거의 일본으로 간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5만윈 하는 G3가 일본에서 4만엔에 거래되어 서울의 사진기 점포마다 그런 구형 사진기를 사러 오는 중개상들이 많다고 한다.


사진기에서 자동을 개발한 것이 일본이고 자동 사진기의 덕을 톡톡이 본 것도 일본인데 별로 값이 나가지 않던 구형 사진기가 일본으로 간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내막을 들어보니 요즘은 제작비가 너무 올라 예전 같이 튼튼하고 쓸만한 사진기를 일본에서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 유명 사진기업체의 상표로 나오는 것의 70%가 주로 동남아나 중국에서 만들고 일본서 나오는 것은 30%도 채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만든 것은 가격이 너무 비싸 가격 경쟁력을 이미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구형 사진기가 다시 일본으로 갈 수 밖에...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늘 신형을 좋아하다보니 대부분 구형을 헐 값에 내어놓고 신형을 산다. 어차피 일제이니 우리가 그것을 자랑삼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겠지만 고작 4-5만윈을 쳐서 내어놓기보다는 그냥 집에 가지고 있는 것이 어떨까 싶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쓰시던 것을 오랜 된 구형이라고 서슴없이 내어놓는데 참 아까운 일이다. 어른이 애용하던 것이라면 자식이나 손자가 써도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우리 나라에서 사진기를 수집하시는 분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분들은 대부분 독일제만 모은다. 그런데 독일제는 워낙 값이 나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림 속의 떡이지만 만약 일제 구형을 모은다면 그렇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꼭 비싼 유명제품만 모으는 것이 수집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예전에 독일의 싱거 미싱사가 고장이 나지 않는 제품만 만들다가 회사가 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요즘 신형 사진기보다는 구형이 훨씬 더 튼튼하고 조작하는 재미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으로 다 건너가기 전에 구형 사진기 하나쯤 장만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굳이 장만할 필요까지 없겠지만 집에서 쓰던 사진기를 헐 값에 내어놓는 일은 말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