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 거짓말을 합니다

2003. 4. 21. 12:17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사진은 진짜를 그대로 베끼는 것이어서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진은 기계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조작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순진한 생각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에 조작되지 않는 것은 절대적으로 없다고 봅니다. 사진은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요즘에 와서는 어떤 사건의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사진이 보편화 되면서 사진에 찍힌 것을 빼는 일은 별로 힘들지 않는 작업이랍니다. 실제로 눈에 거슬리는 전기줄이 필름에는 보이나 인화된 사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진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사진일 뿐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조작하여 사진을 욕되게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5월에 있을 축제 때 사진전을 합니다.
늘 5월에 하다보니 사진반 아이들이 사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와서 속 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학교에 준비된 액자는 120개가 넘는데 아이들은 자신있게 내어 놓을 사진이 한 점도 없어 이 문제로 전전긍긍했던 일이 매 년 연례행사였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부장이라고 핑계대고 제가 사진반을 맡지 않았더니 사진전이 이상하게 변모했고 제가 미운정 고운정 들여서 키운 사진반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올 해도 맡기를 꺼려했는데 졸업한 아이들과 주변에서 내가 맡아야한다고 자꾸 권해서 할 수 없이 다시 사진반을 맡았습니다.


사진반을 맡는 것 까지는 좋지만 당장 눈 앞에 다가온 전시회가 아주 부담스러웠는데 지난 4월 초에 아주 우연한 기회로 가서 본 김한용선생님 전시회에서 영감을 얻어 지금 준비중입니다.
아이들에게 사진전을 보여주고 팜플렛을 보게 한 다음 각자 한가지 주제를 설정하여 100장씩의 사진을 제출한 다음 거기서 고르기로 한 것입니다. 사진반 아이들이 22명이어서 22작품을 만들고 제가 몇 점을 보태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이 되서 요즘 애들에게도 사진찍기를 독려하고 있고 저도 제가 내어 놓을 사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 108분과 행정실 등 해서 모든 어른들 사진을 6*8크기로 인화하여 붙여나갈 생각으로 4일에 걸쳐 모든 사람들 사진을 찍었습니다. 전체 직원이 118명인데 한 분은 절대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하여 제외하고 115명을 한 사람당 2장씩 찍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한장씩만 찍을 생각이었으나 수동사진기로 찍을 경우 간혹 초점이 안 맞거나, 실내에서 찍으니 노출이 부족되는 사진이 있을까봐 두 장씩 찍었습니다.


처음 하루는 라이카 SL2 사진기에 앙제뉴 180mm f/2.3아포 렌즈로 찍었고 다음 날은 라이카 135mm f/2.8렌즈로 찍었습니다. 주로 교무실에서 찍었기 때문에 플래시를 썼는데 싱가포르에서 나온 롤라이35S에 쓰는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 찍었습니다. 세 째와 네 째 날은 펜탁스 K2DMD 사진기에 자이스 제나 135mm f/3.5렌즈로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기로 바꾸니까 롤라이 플래시가 터지질 않아 무척 당황하였습니다. 사진기가 고장인 난 것으로 판단을 하고는 생각을 해보니 얼마 전에 결혼식사진을 찍을 때도 이 사진기를 썼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엑스접점을 이용한 것이어서 핫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사진을 찍다보니 플래시가 터졌다가 안 터졌다가 해서 사진기 자체 고장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집에 와 내셔날플래시를 장착하고 찍어보니 아무 이상없이 잘 터집니다...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은 그저 찍나보다 하였겠지만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경우 이제껏 제가 누려 온 이름에 누가 될 것이 뻔해서 무척 조심스럽게 찍었고 가슴 조이며 기다렸는데 인화를 해서 보니 초점이 안 맞은 것은 289장 중에서 단 한장, 그리고 학교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술 마시고 노래방에서 찍은 것 20 컷 중에 3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두 장 중에 확대할 것들을 필름에 표시하고 인화된 사진을 나누어 드렸더니 다시 찍어달라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다 자기 마음에 안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진도 조작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혹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진을 찍을 때나 인화할 때 어떤 조작을 한다는 것은 생각지 않습니다. 사진을 조금 아는 분들은 렌즈의 초점거리에 따라 얼굴 모습이 달리 나올 수 있다고도 생각하겠지만 초점거리가 180mm인 렌즈나 135mm렌즈로 찍은 사진은 얼굴을 거의 왜곡시키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진이 자기 맘에 안 드는 것은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특정인의 얼굴을 못나오게 찍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찍어주기를 강력히 요청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못 들은체 할 수도 없어서 내일 다시 찍기로 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사진기를 믿습니다. 제가 가진 렌즈들도 다 믿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진실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절대 조작하는 사진을 찍거나 만들지 않습니다. 사진을 조작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어떤 사진기도 스스로 사진을 조작하지 못합니다. 사진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말하지 않는 사진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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