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놓고 기역자 모르기

2003. 4. 26. 19:44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제가 여기 저기 얼굴을 디밀고 사진이나 사진기에 대해서 아는 체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제가 사진이나 좀 찍는 줄로 알고 제 사진에 대해서 궁금해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저도 말로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번 쯤은 보여주고 싶은데 인터넷에 사진을 올릴 줄을 몰라 늘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것이 있었습니다.


스캐너를 사자니 돈도 돈이지만 어디에 놓을까 하는 문제가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스캐너를 살 돈이 있으면 차라리 디지털사진기를 사서 그것으로 필름을 접사해서 올리는 것이 더 낫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뒤로 미루게 되고 한동안 사진을 올려야지하는 생각을 잊고 지냈습니다.


올 신학기에 교무실을 옮겼는데 거기는 자료를 준비하는 곳이라 교사가 저 포함해서 셋 밖에 없고 아주 조용한 곳입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스캐너를 사주겠다고 하여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지난 3월 말에 엡손 스캐너2450이 들어왔습니다. 스캐너가 들어왔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고 또 지레짐작으로 사진을 올리는 것이지 필름을 올리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책상위에 있었지만 쓰지를 않다가 며칠 전에 어떤 선생님이 오셔서 과학실에 있는 것은 필름도 스캔이 되는 기종이라고 하면서 우리 것도 되느냐고 묻기에 잘 모른다고 했더니, 우리 교무실 것이 더 신형이라고 하시며 메뉴얼을 찾아서 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메뉴얼을 찾느라 부산을 떨고나서 해보니 슬라이드필름뿐만 아니라 컬러네가 필름도 칼라로 인화가 되어 보입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기가 책상위에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매번 스캐너탓만 했다는 것이 무척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아직 어떻게 하는 줄을 몰라 지금은 그냥 구경만하는 실정입니다. 이제 다음 주말이면 애들 중간고사가 끝나니 그 때 가서 잘아는 아이를 불러 배울 생각입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것이 바로 이런 저를 두고 한 말 같습니다.

가끔 야후에 들어가서 중고사진기를 검색하면 서울시내에 있는 여러 사진기점포가 나옵니다. 거기에 다시 들어가서 추천상품이나 중고상품을 찾아보는 것도 심심할 때 소일하는 한 방법입니다. 어느 점포에서나 추천하는 저렴한 것들은 조금씩 문제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 점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어떤 물건들이 나오나 하고 눈여겨 봅니다.


어떤 물건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살 때 까지는 마음 졸여도 한 번 사고 나면 후회하는 일이 다반사라 그냥 보는 재미로만 둘러봅니다. 그러다가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몇 번을 망설이고 다시 마음을 접고, 다시 망설이고 하게 됩니다. 물론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이 저렴할 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엊그제 대승카메라에 탐론 SP24-48mm f/3.5-3.8 렌즈가 13만 5천원에 나왔길래 전화를 했습니다. 마운트가 니콘것이던데 혹 펜탁스로 교체하여 팔 수는 없느냐고... 그랬더니 다른 마운트는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펜탁스 마운트를 사다가 교체하여 줄 수는없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렇게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렌즈가격도 많이 저렴한데 다른 마운트를 구해서 끼워 팔면 자기네는 남는 마운트를 처리할 수가 없다고... 제가 언젠가 가보카메라에서 그 렌즈를 다른 사람에게 구해준 적이 있는데 구형이긴 하지만 탐론 SP렌즈는 성능이 썩 괜찮은 것으로 알려져 어디 추천해도 욕은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보에 나갔다가 대승에 들러서 렌즈를 보았더니 안에 먼지가 둥그렇게 있어 마치 곰팡이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를 대어 가격을 내려 보려 하였으나 내어 놓은 자체가 저렴해서 더 이상은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카드로 산다고 하니까 수수료를 7%나 더 내라고 하더군요. 아니 마운트만 펜탁스라면 제가 그 정도 가격에 얼른 가져올 텐데 니콘 마운트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탐론 렌즈들은 마운트를 교체하여 쓸 수 있기 때문에 두 기종 이상을 쓰는 분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이 있는 렌즈입니다. 특히 미국시장에서는 비비타시리즈원과 함께 가장 많이 팔리는 렌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격이 일정하지가 않다는 점이 때로는 장점으로 때로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세운상가에 있는 신흥사라는 점포에 탐론 SP 80-200mm f/2.8과 역시 탐론 SP 500mm f/8.0 반사 렌즈가 있는데 둘 다 니콘마운트가 장착되어 있고 가격은 40만원, 30만만원을 달라고 합니다. 둘 다 펜탁스마운트라면 제가 욕심을 낼 만도 하지만 제게는 그보다 못한 것이 둘 다 있어 크게 당기지는 않습니다.


제게 이미 탐론 SP 70-210mm f/3.5-4.0렌즈가 있습니다. 이 렌즈는 가보에서 10만원에 구입한 것인데 마크로 성능도 탁월하고 가볍고 아주 좋습니다. 다만 길이가 조금 긴 것이 단점이지만 10만원을 주고 이런 렌즈를 산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라고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f/2.8보다야 어둡고 조금 성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고 단정지어 말합니다.
밝은 렌즈는 무겁습니다. 그 무겁다는 것이 불과 몇 백 그램 차이라고 웃지만 장거리 여행에서 어깨에 메고 다니면 반드시 후유증이 옵니다. 등에 지는 배낭형이 아닌 어깨에 메는 가방은 무거운 것을 넣고 다니면 훗날 확실하게 후유증이 옵니다. 그런 면에서 가벼운 렌즈를 쓰는 것도 장기적인 안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하는 재미 중에 하나가 새로운 사진기나 렌즈를 장만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늘 주머니에 먼지만 가득하지요... 낫 놓고 기역자를 몰라보는 것이 저만 하는 짓은 아닐 겁니다. 주변에 좋은 것이 있어도 못 알아 본다면 다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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