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5. 5. 21:19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지난 5월 1일에 남양주시에 있는 석화촌으로 사진 찍으러 갔다왔습니다. 미리 거기로 간다고 이미 계획을 세워 놓고도 천천히 준비한다고 미룬 것이 그 전날 술을 많이 마시어 그냥 가지고 다니던 가방을 들고 나갔습니다. 펜탁스LX사진기와 24-40mm f/3.5, 70-210mm f/3.5, 500mm 반사 렌즈 f/8.0, 16mm f/2.8 등 4개의 렌즈를 가지고 갔습니다. 사실 500mm 반사 렌즈는 꼭 써야할 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늘 가방에 같이 들어 있고 어안렌즈도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렌즈를 두 개로 갖춘다면 24-50mm와 70-210mm 렌즈가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쉬운대로 28-70mm와 80-200mm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근접 좔영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비타시리즈원 렌즈를 무척 좋아하는데 제가 가진 70-210mm f/3.5렌즈는 근접 촬영에서 조금 떨어집니다. 그래서 탐론 SP70-210mm f/3.5-4.0렌즈로 바꿔가지고 나갔어야 하는데 준비를 못한 것입니다. 이 두 렌즈를 비교해보면 비비타시리즈원 렌즈가 휠씬 좋아보이는데 조금 허술해보이는 탐론 렌즈가 근접 촬영에서는 거의 1;2 정도가 될만큼 가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더 유용합니다.
석화촌은 해마다 가는 곳이라 특별한 것이 있다기 보다는 연례행사로 생각하는데 그래도 가서 보면 마크로렌즈를 안 가져 간 것에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작년에도 탐론 렌즈와 캐논 T90사진기만 가져가서 아쉬워하고 왔는데 올 해는 더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다시 한번 미리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5월 4일에는 경북 청송에 있는 주산지를 다녀왔습니다. 청송하면 주왕산이 유명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는 주왕산보다 주산지가 더 각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주왕산에서 약 8km정도 떨어진 산속 깊고 높은 곳에 있는 주산지는 봄과 가을에 아주 많은 사진인들이 찾는 곳입니다.
저는 주산지에 세 번 째 갔습니다.
갈 때마다 어안렌즈 안 가져간 것을 후회했는데 이번에 또 그런 아쉬움을 반복하고 왔습니다...
지난 4월 27일에 석화촌에 간다고 사진기를 준비할 때 춘천 방향으로 나갔다가 오려고 펜탁스67로 가방을 꾸렸습니다. 55mm, 80mm, 135mm, 180mm, 300mm, 500mm반사 렌즈로 짐을 싸면서 그 쪽에 가면 어안렌즈는 쓸 일이 없을거라 생각하여 빼놓고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나가지 못하여 그대로 배낭에 넣어두고 있다가 이번에 메고 나갔는데 어안렌즈와 300mm 렌즈를 교체하여 가져가야된다고 생각만 하고는 귀찮아서 그냥 들어있는 대로 메고 나간 것입니다. 그 둘을 교체하는 시간은 2분도 채 안되는 것을 그것이 귀찮아서 그냥 나갔더니 거기 가서 후회막급이었습니다.
세운상가앞에서 다섯시에 사람들을 만나 떠났는데 영동고속도로에 들어가니 벌써 길이 막히어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호법부근이 막힌다는 얘기를 다섯시 뉴스에서 들었지만 거기야 늘 그런 곳이니 하고 갔는데 문제는 거기가 아니라 여주에서 문막사이가 많이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30분 정도는 지체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연휴기간이라 하지만 서울서 다섯시에 나가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은 처음 경험한 일입니다.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잘 갔는데 어느 톨게이트로 빠져나갈지 망설이다가 남안동을 지나쳤습니다. 예전에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 다닐 때는 오히려 단순했는데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안동이니 남안동이니 하는 것들이 혼란스럽게 한 것입니다. 이미 안동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다음 관문인 의성으로 나갔는데 여기서 또 40분 이상을 지체하여 생각보다 많이 늦게 주산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의성톨게이트를 나가며 주왕산가는 길을 물었더니 돈 받는 창구에서 메모지를 내주었습니다. 간략한 주왕산 이정표와 걸리는 시간, 잘 모를 시에 문의 전화번호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이거야 말로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아닌게 아니라 길을 잘못들어 전화로 물어 고쳐갔습니다.
주산지는 정말 좋았지만 어안렌즈 안 가져온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였습니다. 제가 예전에 갔을 때도 5월초였는데 그 때는 산에 진달래가 만발한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진달래꽃은 다 지고 연록색 나무잎들의 빛깔로 더 아름다웠습니다. 수면 위로 원앙이 한쌍이 정답게 노닐고 있고, 역사를 자랑하는 왕버드나무들은 아주 고운 자태로 뽐내고 있었습니다.
67사진기로 120롤 필름을 네롤이나 찍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이 왔지만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은 우리 여섯 뿐인 것 같았습니다. 서로 눈치를 볼 것도 없었고 자리가지고 싸울 일도 없어 좋았습니다. 예전에 두 번 왔을 때는 사진인들이 몰려와 서로 자리싸움을 하고 고함을 지르고 난리였는데 이번엔 아주 쾌적한 환경이라 마음 편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기분 좋게 찍고 나왔는데 시간에 쫒기어 다른 곳은 더 들를 수가 없었습니다. 안동 부근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서울로 쉬지 않고 올라왔습니다.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누가 내게 묻는 말이 사진은 무엇으로 찍느냐고 하길래,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렌즈?'냐고 물었더니 가슴으로 찍는다는 대답을 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질문인지 몰랐습니다. 늘 저보다 후배라고 생각하여 제가 한 수 위에서 답변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렌즈라고 얘기하면 한마디 해주려고 한 것인데 이런 고차원적이 말을 하니 제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은 사진기가 아니라 발이 찍는 것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또 사진은 사진기가 아니라 렌즈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 가슴으로 찍는다는 얘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산지에서 나오며 들은 얘기 '사진은 가슴으로 찍는다'는 말은 제가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눈으로 찍었지 가슴으로 찍는 단계까지는 못 이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늘 좋은 사진기, 좋은 렌즈를 가지려고만 애썼지 가슴으로 찍으려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시는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다고 애들에게 얘기하먼서도 사진을 가슴으로 찍으려하지 않고 눈으로만 찍으려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가슴으로 찍을 경지가 된다면 무슨 좋은 렌즈나 구색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겠습니까?
앞으로 가슴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교 사진반 전시회 (0) | 2003.05.18 |
---|---|
닭 갈비 (0) | 2003.05.11 |
낫 놓고 기역자 모르기 (0) | 2003.04.26 |
사진도 거짓말을 합니다 (0) | 2003.04.21 |
어설픈 거래 (0) | 2003.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