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5. 18. 17:44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학교에서 사진을 조금 찍는 것으로 알려져있다보니 학교의 사진반을 맡게 됩니다. 처음에 사진반을 만든 것은 제가 아닌데 그 때는 솔직히 조금 엉터리였습니다. 사진반 담당 선생님도 사진을 전혀 모르는 분이셨고, 아이들도 사진기를 다룰 줄을 모르는데 학교 행사 등을 위해 사진기가 있는 아이들 몇을 모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반을 제가 맡게 된 것은 사진을 찍는다고 늘 사진기를 메고 다니다보니 학교에서 제가 사진을 잘 하는 줄 알고 저더러 맡으라고 했고, 제 욕심도 애들에게 사진을 가르친다면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시작을 했습니다.
사진반이 만들어진 15년 전에는 학교 행사라고 하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고작 문예반이 하는 시화전과 미술반이 하는 미전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제가 사진반을 맡으면서 사진전도 같이 하게 된 것입니다. 15년여 세월을 저 혼자서 계속한 것은 아닙니다. 아마 제가 반 가까이 했고 다른 두 분이 나머지 반을 했습니다. 다 국어선생님들이고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별 무리없이 해왔는데 전시회가 가을에서 5월로 옮겨오다보니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사진반 구성이 매년 3월 하순이나 되는데 3학년은 시험준비 때문에 바빠 적극적인 참여가 어렵고 2학년이 주가 되어 준비를 해야하는데 제대로 하질 못해서 해마다 전시회 준비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학교 행사가 축제로 바뀌면서 규모가 엄청 커졌고 현재는 웬만한 대학 축제를 능가한다는 평을 들을 만큼 자리가 잡혔습니다. 이 축제에 전시부서는 사진반, 문에반, 미술반, 애니메이션반, 모형제작반, 교지편집반 도서반 등이 있고 공연부서는 댄스반, 밴드반, 힙합반, 중창반, 풍물반, 방송반, 연극반, 마술반 등이 있으며, 실험부서로는 물리반, 화학반, 로봇반, 컴퓨터분해조립반, 해커반 등이 있어 참여부서가 30개가 넘고 인근 학교 학생들이 다 몰려와서 지역사회의 명물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학교 사진반도 어지간한 사진을 내어놓아서는 망신만 당하기가 좋아서 이 문제로 늘 고심을 해야했습니다. 그레서 전에는 제가 찍은 사진이 반 이상 학교 애들 이름으로 나가기도 했는데 이는 애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뻔한 거짓말이라 누구 물으면 참 낯이 뜨거웠습니다. 솔직히 애들이 기교를 부릴 만큼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동 줌렌즈가 달린 사진기나 혹 오래된 수동사진기가 있다해도 표준렌즈 하나 달랑 장착된 것이고 작동도 제대로 못하는데 무슨 기대할 만한 사진이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사진반 아이들에게 자기들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찾아 찍으라고 누차 강조하지만 그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사진을 찍으러 나간다고 하면 어느 부모님이 좋아하겠습니까? 이런 문제가 늘 사진반을 맡은 담당교사의 고민이었습니다.
제가 작년에는 학교에서 부장을 맡고 있어 특활부서를 맡지 않게 되자 젊은 선생님께 사진반을 넘겼는데 애들이 잘 따라주지 않아서 작년 전시회에 무리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 해 다시 제가 맡게 된 것입니다.
사진반 예산이 고작 40만원인데 그 돈으로 번듯한 전시회를 할 수도 없지만 어느 부서나 예산이 다 적다고 아우성이니 우리만 더 달랄 수도 없는 일이고 처음부터 난감했습니다. 아주 예전엔 70만원 정도로 편성이 되었는데 참여부서가 많아지다보니 줄어든 것입니다.
사진반을 모아놓고 여러 번 설명하고 찍으러 나갔지만 사진을 보면 참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초점이 안 맞거나 흔들린 사진이 반은 되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보고 찍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점점 머리가 아플 수밖에요...
그런데 지난 3월 말에 조선일보사 미술관에서 전시한 김한용선생님 전시회를 보고 퍼득 영감을 얻었습니다. 사실 그 전시회도 제가 가려고 한 것은 아닌데 우리 서울클럽의 회장이셨던 가보카메라 최운철 사장님이 현장에서 제게 호출을 한 것입니다. 내일이 마감일이니 지금 빨리 오라고... 여섯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제가 여섯시 5분 정도에 도착을 하여 잠깐 둘러봤는데 한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8000여 장이 넘는 사진을 8*10의 크기로 인화하여 주제 별로 모자이크처럼 붙여 만든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진 때문에 감동을 하고는 저도 모므게 무릅을 탁 쳤습니다. 바로 저거야, 학교사진반 전시회는 저렇게 하는거야. 하고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날 1학년 사진반 전원을 데리고 조선일보사로 갔습니다.아이들에게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보고 느끼게하자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리고는 짧은 기간이지만 자신있게 준비를 시켰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생각한 것이라 생각보다 더 잘 찍어서 준비를 했습니다. 한 사람 당 같은 주제로 100장을 찍어서 20장을 골라 조사진으로 엮을 생각을 하고 그렇게 설명했더니 조금은 착오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다 만들어 왔습니다. 저도 지난 월드컵 때 찍은 사진을 5*7로 인화하여 40장을 둘로 묶었고 학교 선생님과 교직원 전원을 찍어서 20장씩 여섯 묶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슬라이드로 찍은 것들은 인화료가 비싸서 많이 인화하지 못했지만 애들이 만든 작품이 20여 점이 되어 충분했습니다. 주로 6*8로 인화해서 만들었는데 이런 사진이 580장 정도가 됩니다. 제가 6*8로 인화를 한 것은 이 크기가 다른 현상소에서는 수동이지만 코스트코((COSTCO : 예전의 프라이스클럽)에서는 자동인화로 한 장 인화료가 250원이어서 여기에 맞춘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 중에 한 분이 애기봉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망원렌즈로 찍은 파노라마사진을 찬조해 주셨는데 광각렌즈로 찍은 파노라마보다 훨씬 다 나아보였습니다. 멀리 있는 것은 역시 망원으로 당겨야 조금 살아납니다.
앞으로는 좀더 정교한 사진을 찍어서 더 좋은 작품을 내도록 만들어야하겠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학교사진반의 전시방향을 잡게 된 것 같아 무척 흐뭇합니다. 전시회가 오늘 끝나는데 앞으로 자주 데리고 나가서 좋은 사진을 찍도록 할 생각입니다. 애들은 단순하지만 빨리 적응하기 때문에 내년 전시회가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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