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5. 31. 20:07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딱 1년만 되돌려 봤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5월 31일은 저에게 큰 의미 없이 다가왔지만 이어진 6월은 축구를 모르는 저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을 맡고 있었음에도 한국의 경기가 있던 날은 단축수업을 하고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애들과 함께 시청앞 광장으로, 광화문 거리로, 종로로 뛰어다녔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감동의 날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시간을 1년만 되돌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 주에 창경궁에서 모델을 찍을 일이 있다고 해서 70-150렌즈를 다시 구하려고 예지동에 갔습니다. 제자들과 맥주를 마시다가 자리를 파한 것이 여섯시 반 경이었는데 그 시간에 예지동에 걸어갔더니 이미 대부분 셔터를 내린 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70-150mm f/3.5 탐론 렌즈를 보았던 집은 불은 켜 있는데 주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0분 정도를 기다리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게 70-150mm 렌즈를 가졌던 기억이 세 번이나 있습니다. 아주 예전 10년 전 쯤에 펜탁스 SMC-M 75-150mm f/4.0을 사서 3년 정도 쓰다가 다시 가보에 내어 준 것이 첫 번째이고, 그 다음에는 야후 경매에서 리코, 리키논 70-150mm f/3.5를 10만원에 구입하여 멸 개월 가지고 있다가 가보에 내어 준 적이 있습니다. 이 렌즈는 아주 묵직하고 구경도 58mm나 되는 큼직한 렌즈로 신뢰감을 주었지만 가지고 다니며 찍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70-210mm f/3.5가 있다보니 어디 나갈 때는 이 렌즈가 더 유용하고 70-150mm는 중복되어 늘 가방에 있게 됬던 것입니다.
그래서 펜탁스 장터에 8만원인가에 내어 놓아도 보았지만 팔리지 않아 그냥 가보에 내어 주었습니다. 그 얼마 뒤에 가보에 보니까 아주 후줄한 70-150mm f/3.5 탐론 렌즈가 있길래 가격을 물었더니 그냥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와 결혼식 사진을 찍을 때 몇 번 쓰다가 다시 내어 주었습니다.
그랬는데 포토레이트를 찍으려니 아무래도 70-150mm 렌즈가 가장 이상적일 것 같아 다시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행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사지 않고 왔는데 일요일에 비가 내려 촬영 자체가 취소되었습니다. 제가 가보에서 가져왔던 렌즈는 탐론에서 나온 아주 구형인데 예지동에서 본 것은 그 렌즈보다는 신형이었습니다. 마운트가 니콘으로 되어 있어 몇 번을 망설였는데 가격은 10만원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펜탁스 마운트였다면 망설이지 않고 가져왔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좀 웃기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탐론 렌즈가 몇 있는데 펜탁스 마운트는 하나 밖에 없고 캐논이 둘, 니콘이 하나 있어, 펜탁스 마운트를 구하기 위해 35-70mm f/3.5와 28-80mm f/3.5-4.2 렌즈를 구입하였다가 28-80에 니콘 마운트를 끼워 다시 팔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4만원을 손해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운트를 따로 사려면 서울서는 구하기도 힘들고, 그 가격이 6만 5천원이나 한다고 해서 이런 궁여지책을 쓴 것입니다....
우린 내일 춘천 의암호와 그 근처에 있는 신숭겸 사당으로 정기 촬영을 갑니다.
의암호는 자주 가는 곳이라 특별할 것이 없지만 언제든 날씨만 도와준다면 찍을 것이 많습니다. 낛시 좌대가 큰 몫을 하고 아침 안개만 도와준다면 생각보다 휠씬 좋은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사진을 찍고 조금 더 올라가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의 사당이 있읍니다. 견휜과의 전쟁에서 패해 달아나던 왕건이 위기에 처했을 때, 대신 왕건의 옷을 바꿔 입고 죽었다는 신숭겸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담한 곳이고 그 마당 아래에 연못이 있는데 여기에 수련이 아름답게 핍니다.
연못이 작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달려 들면 찍기가 좀 그렇지만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 사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저는 예전에 갔을 때 너무 비좁아서 여기서는 별로 찍지를 않았는데 나중에 품평회를 할 때 보니 좋은 사진이 많이 나와 놀란 적이 있습니다.
내일은 펜탁스 Z-1P사진기에 20-35mm f/4.0, 35-135mm f/3.5-4.5, 200mm f/2.8, 300mm f/4.5등의 렌즈와 50mm f/2.8, 100mm f/2.8의 마크로 렌즈를 가져가려고 합니다. 35-135mm f/3.5-4.5렌즈는 구입해서 한번 써 봤는데 최단거리가 너무 길어(1.6m)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예전 줌렌즈라지만 적어도 1m 이내의 거리는 되어야 하는데 1.6m이면 너무 멉니다. 풍경을 찍을 때는 이 최단거리가 별 문제가 없지만 예식장 같은 곳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됩니다. 좀 더 가깝게 찍고 싶을 때 초점이 안 맞아서 뒤로 물러나다보면 멀어져서 렌즈를 바꿔 끼고 싶어지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찍게 됩니다.
사진기 업체에서 왜 그렇게 다양한 렌즈를 내어 놓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때도 있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그 때마다 필요한 렌즈가 생각납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 가지면 짐만 되겠지요...
6월은 덥고 장마가 올 때라 사진을 찍기에는 어려운 계절입니다. 그러나 틈새를 잘 찾으면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믿습니다.
할기찬 6윌을 맞이하시기들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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