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못 고치는 병

2003. 6. 9. 22:09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어제 축구를 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도 답답했지만 경기장에서 지켜보는 감독은 더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챤스까지 만들어 놓고는 서로 손발이 안맞아 그냥 내주거나 헛발질만 해대는 선수들을 보며 가장 가슴조였을 것은 코엘류감독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감독은 외모가 마치 아메리카인디언 같아서 더 정이 가는데 어제 우루과이 감독은 코엘류감독의 동생처럼 생겼더군요...


며칠 전에 어떤 분이 펜탁스클럽 게시판에 자신은 장비병이 시들해져 간다고 글을 올린 것을 읽었는데 참 부러웠습니다. 저는 제가 사진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끝날 때까지는 이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겐 늘 장비병을 조심하라고 말하면서 저는 고치지 못하니 이거야말로 고질병입니다.


조선시대에 학자들이 자연을 너무 사랑하여 생긴 병을 천석고황(泉石膏?)이니, 연하고질(煙霞痼疾)이니 하였는데 제가 사진기를 바꾸기를 좋아하는 병을 그런 거룩한 것에 감히 갖다대어서는 안되겠지만 저도 이 병을 끝내 못 고칠 병 같습니다.


예전에 추현우 님이 쓴 "카메라정보가이드"라는 책에서 캐논의 T90이 그렇게 좋다는 얘기를 보고 전혀 관심이 없던 캐논의 사진기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필자는 이 사진기를 수동초점형식의 최고의 일안반사 사진기라고 격찬을 했는데 저는 사용설명서도 없어 그냥 대충 찍었습니다. 아주 운이 좋게 캐논 FD 80-200mm f/4.0 L렌즈까지 구했는데 나중에 그 렌즈는 별로인 것 같아 팔아버리고 아주 싸게 구한 탐론 SP 70-210mm f/3.5-4.0렌즈를 가지고 찍었습니다. 사진기의 기능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응용방법을 몰라 제게는 그저 모터드라이브가 내장되어 있다는 것과 스포트측광이 된다는 것이 좋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봄에 실증을 느껴 다시 팔았습니다. 솔직히 실증을 느꼈다기보다는 라이카 SL2를 구입하느라 정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팔면서 우면히 캐논클럽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이 T90의 사용설명서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출력을 해 읽어보니 제가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았고 거기 내용을 보니 다시 탐이 나는 기기였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진기점에 알아보았더니 두어 군데 있는데 제가 쓰던 것보다 휠씬 못한 것들이 40만원이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깨끗한 기기를 30만원에 팔았는데 그보다 못한 것을 40만원에 산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마음을 접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유혹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은 제게 탐론 렌즈와 캐논 FD마운트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탐론 렌즈가 24-48, 35-70, 70-210, 350반사가 있고 캐논 마운트가 둘이나 있으니 언제든 바디만 구하면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잇점이 있어 늘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남아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제가 탐론의 펜탁스마운트를 구하느라 그렇게 애를 썼지만 펜탁스마운트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고 시중에 니콘이나 캐논 것은 거의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FD마운트의 사진기만 있으면 언제든 렌즈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열흘 전에 가보에 갔더니 못 보던 T90이 있어 자세히 보았더니 믿어지지 않을만큼 상태가 좋았습니다. 그래 가격을 물었더니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하길래 쭉 기다리다가 지난 토요일에 가서 다시 물었더니 회장님 말씀이 40만원만 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솔직히 50만원은 부를 줄로 생각을 했는데 40만원이라는 말씀을 듣고는 내가 월요일에 돈을 가져와 가져가겠다고 예약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가서 가져왔습니다....

말타면 견마잡히고 싶다고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라 그 사진기를 사고서 생각하니 캐논 FD 20-35mm f/3.5L렌즈가 불현듯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종일 여러 싸이트를 이잡듯 뒤졌지만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책자를 보니 그 렌즈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 가격으로 나와 있어 가볍게 포기했습니다.


며칠 전에 아주 가까운 사진동지가 제게 전화로 묻기를 펜탁스645를 정리하고 디지털로 가면 어떻겠냐 고 문의를 해왔습니다. 그 때에 제 대답은 더 생각하라 였지만 솔직하게는 말리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다 똑 같은 것이어서 지금 500만 화소의 디지털을 산다고 해도 앞으로 2년 후면 6,700만 화소가 일반화될 것인데 그 때 가면 또 바꿔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의 말은 1300만 화소의 일안반사 디지털이 나왔다니 그것을 사면 앞으로 더는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니냐고 다시 묻던데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300만 화소의 캐논디지털 사진기를 보니 9000만원(아마 900만원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대로 나와 있던데 그것을 산다고 해서 앞으로 절대 바꾸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2000만 화소가 나오면 또 바꿀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진이 안 나와서가 아니라 남들 다 바꾸면 또 바꾸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게 지금도 감당못할 사진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펜탁스LX를 다시 넘겨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웃기는 거래일지도 모릅니다. T90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어떻게 LX에 비교하겠습니까? 그러나 가지고 싶을 때는 이성으로 판단이 안된다는 것을 제가 잘 알기에 또 한번 남들을 웃기는 거래를 한 것입니다.


이 고질병, 아마 제가 사진을 그만두는 날까지는 고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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