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6. 18. 17:00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제가 몸 담고 있는 펜탁스클럽이란 곳이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 상에 존재하는 모임으로 가입회원이 2천 명을 넘었다고 하는데 실제 모임을 가질 때 보면 10여 명 정도가 나오나 봅니다. 하기야 전국적으로 회원이 산재해 있고 인터넷 모임이라는 것이 온라인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많이 모이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 가진 것이 펜탁스의 ME-SUPER여서 계속 펜탁스만 가지고 찍었고, 지금은 다른 기종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진기 클럽에는 가입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얘기를 들으니 니콘클럽이나 캐논클럽은 가입된 회원도 펜탁스클럽보다 휠씬 많고 활동도 아주 활발하다고 하는데 펜탁스클럽은 제가 보기엔 초보자 수준이 많고, 대부분 학생들이지만 사진에 대해서는 더 순수하고 열정이 많은 것 같이 생각됩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겠지만 예전에 일본의 저명한 사진인(미키 준?)이 니콘클럽이라는 것을 만들어 세계 각 국에서 니콘사진기를 쓰는 사람 중에 이름있는 사람들을 골라 회원으로 위촉하고 니콘에서 후원비를 지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제가 사진을 잘 모를 때이기도 했지만 거기에 가입된 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우리나라 사진인들을 보면 정말 밸도 없는 사람들이고 욕을 했습니다. 일제 사진기 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일본이 만든 사진클럽에 들어가 있는 것이 뭐가 자랑스러우냐고... 하지만 거기에 끼인 사람들은 자신이 실력을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제가 펜탁스를 쓰면서도 굳이 니콘을 외면하는 것은 니콘이 일본 사진기의 간판으로 자처하기 때문입니다. 니콘의 전신인 일본광학 자체가 국립 국가산업으로 일본제국주의의 간판격이었고 여기서 전전(戰前) 일본의 광학산업을 주도하였습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오랜 기간을 독일사진기를 복제하다가 동경올림픽 이후에 대량생산으로 세계 사진기 시장을 독점하는 주역을 맡았던 것이 니콘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일제 사진기를 쓰고 있지만 니콘만은 쓰지 않기로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펜탁스클럽에 제 대학 후배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아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렌즈를 팔고 사다가 알게 된 펜탁스맨입니다. 저도 많은 사진기를 사고 파느라 펜탁스클럽 장터를 기웃거렸지만 이 후배는 저보다도 휠씬 더한 펜탁스매니아입니다. 요즘은 조금 뜸하다가 어제, 그제 또 많은 것을 내어 놓았던데 하도 자주 사고, 자주 판다고 글을 올려서 한 때는 제가 다 걱정스러웠습니다. 저렇게 샀다가 팔면 항상 조금씩 손해를 보기 마련인데 대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걱정이 되서 글을 올렸더니 펜탁스에서 나온 것은 제다 써보고 싶다고.... 그래서 사서 조금 사용해 보고는 다시 조금 싸게 내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펜탁스에 나온 것은 거의 다 손에 넣어봤거나 써 보았다고 자신합니다. 제가 사진을 시작하기 이전에 나왔던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제가 사진을 시작한 80년 대 중반이후의 것은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써 봤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솔직히 건방진 소리이고 제가 살 수 있는 가격의 한도 안에서는 거의 만져 봤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늘 드나드는 가보카메라에 있는 것들은 사지 않고도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제가 망설이다가 놓친 것이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SMC-A 135mm f/1.8스타 렌즈이고, 다른 하나는 LX티타늄바디입니다.
렌즈는 가보에 있었는데 별로 살 마음이 없어 망설이다가 놓쳤고, 티타늄바디는 예지동 광일사에서 봤는데 그 사진기를 보기 바로 전에 SMC-FA 80-200mm f/2.8ED렌즈를 사는 바람에 주머니가 고갈되어 사지 못했습니다. 그 때 거기서 부른 가격이 185만원이어서 조금 비싸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다음 날 가보니 이미 팔리고 없었습니다.
이 둘만 빼고는 제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다 써봤다고 생가하는데 우리 후배는 저보다 휠씬 더 많이 사서 써보고 다시 팔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걱정이 되길래 집에서 계수씨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안다는 것입니다. 또 한번 놀랐습니다. 저는 집에서 제가 사고파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나 알고 있지 세세한 것은 모릅니다. 다만 제가 하는 일에 무엇이든 반대를 하지 않는 편이라 마음 놓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 까지 닮았는지....
어제 후배가 다시 펜탁스클럽 장터에 매물을 내어 놓은 것을 보고는 역시 나와 후배는 난형난제(難兄難弟)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저보다 한 수위인 것 같습니다.
펜탁스클럽에서 제가 보았던 많은 이름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이름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마 보이지 않는 이름들은 사진을 그만두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진기를 다른 기종으로 바꾸면서 떠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제 충무로 길에서 우연히 마주 친 한 분이 예전에 펜탁스클럽에서 자주 이름을 보던 분인데 요즘 통 안 보이기에 근황을 물었더니 기종을 바꾸는 바람에 펜탁스사진기가 없어 그냥 들어오기가 그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진기를 바꾸는 것, 자기 취향이니 스스로 좋은 쪽으로 가겠지요. 그러나 저는 현재 캐논도 가지고 있고 라이카 SL2도 가지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펜탁스를 주력기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제가 무슨 사진기를 쓰냐고 물으면 당연히 펜탁스를 쓴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저도 사진을 시작했던 초창기에 남들이 다 니콘을 쓰기에 가보카메라 사장님께 니콘이 정말 그렇게 좋으냐고 여쭈어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사장님 말씀이 '일본사진기는 다 일본 수준이니 니콘이라고 해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였습니다. 제가 라이카를 가지고는 있지만 많이 써보지는 않았습니다. 펜탁스를 쓰기에 바빠서입니다.
저는 펜탁스사진기를 좋아합니다. 엊그제 펜탁스 LX를 팔고 캐논 T90을 샀다고 많은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제가 그렇게 한 것은 팬탁스 K2MD가 제 손에 있기에 그랬던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기는 바로 그 K2DMD입니다.
우리 후배가 언제 다른 기종으로 바꿀 지는 모르지만 지금 펜탁스클럽에서는 저와 우리 후배가 난형난제입니다. 저는 사진을 찍으면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비록 만나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늘 함께하고 있다는생각을 하며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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