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반성하면서

2003. 6. 21. 15:36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가면 나이 먹은 값을 해야하는데 요 며칠 전에 정말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습니다. 솔직히 취중에 그랬던 것이라 술이 깬 뒤에는 더 부끄러웠습니다. 아마 기분 좋게 마시고 기분이 한층 올라가서 우쭐한 마음이 들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됬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술이 좀 올라서 집에 들어 왔는데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열고 몇 사이트를 검색한 뒤에 펜탁스클럽을 들어갔더니 거기 낯익은 이름을 가진 분이 장터에 펜탁스렌즈를 매물로 올려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술김에 봐도 그 가격들이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높게 책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살 것도 아닌데 신경을 안 썼어야하지만 하나, 하나 짚어가며 보니까 제 계산보다 30만원이 높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다시 계산해 보았는데 역시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어놓은 분은 170만원인데 제 계산은 140만원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조금 열을 받은 것은 펜탁스클럽에서 많은 분들과 알고 지내고 또 펜탁스기기들을 좋아하는 분이 이렇게 높게 가격을 책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을 것인데 술기운이 올랐는지 그냥 넘어가기는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매물 아래에 리플을 달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30만원 이상 높게 책정되었는데 이것은 펜탁스클럽회원을 우롱하는 짓이다. 하고... 사실 다른 분이 내어놓았다면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펜탁스기기에 대해 정통한 분이 이럴 수가 있나 싶어 제 나름대로는 언짢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가 모르는 분 같으면 사실 얼마에 내어놓던 제가 안 사면 그만이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텐데 한 번 정도 만난 적이 있는 있고, 제 나름대로는 조금 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니 내가 실수했구나, 왜 이렇게 경솔한 짓을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컴을 열고 제가 올린 리플을 지웠습니다. 그러나 이미 밤 새 올려 있었던 글이고 그 글 아래 이러저러한 리플이 여러 개 달인 뒤였습니다. 전화로라도 사과를 했어야 하는 것인데 그냥 그 분이 게시판에 글을 올려놓았기에 정중하게 사과한다고 다시 리플을 달았습니다.


그렇게 사과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다시 그 아래에 사족(蛇足)을 달았습니다. 자기가 살 때 어렵게 샀다고 해서 남도 어렵게 사라고 하는 것은 바르지 못하며, 내가 비싸게 샀다고 비싸게 팔면 남도 그럴 것이니 이것은 악순환이 된다. 나는 예전에 12만원을 주고 산 것을 10만원에 팔았는데 그와 같은 렌즈가 여기에서 25만원에 거래되고 있어 놀랐다는...


사실 이 말은 꼭 그 분한테 한 것이 아닌데 또 쓸데없는 말을 덧붙여 심기를 상하게 한 것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 저도 기분이 상한 일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경솔한 짓을 해서 그런 것이기에 다른 변명을 하고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단 리플아래 그 분이 다시 리플을 달았는데 저도 기분 좋게 받아드리기는 좀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이 여기 끼어 들어 왈가왈부한 것도 제게는 좀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동안 몸담고 즐거워했던 펜탁스클럽을 탈퇴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아직도 렌즈나 사진기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물론 사진은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특정의 렌즈를 가지고 해상력이 좋으니, 색 재현력이 좋으니, 큰트라스트가 좋으니 하는 말들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또 그런 것들은 사진에서 그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그림이란 것이 색을 잘 칠해서 좋다고 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대개 같은 초점거리를 가진 렌즈라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니콘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 캐논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 미놀타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만 그 좋다는 것이 사진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좋기로 말한다면 일제보다는 독일제인 라이카가 훨씬 좋을지도 모릅니다. 가격에서 동급의 일본 렌즈보다 3배 이상은 비싼데 그래도 그것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뭔가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저도 라이카사진기와 렌즈를 웬만큼 가지고 있지만 라이카사진기로 찍은 사진이 펜탁스사진기로 찍은 사진보다 더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사진기를 다룰 때, 라이카는 라이카대로 맛이 있고 펜탁스는 펜탁스대로 맛이 있어 써보는 것이지 어느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펜탁스에서 나온 바이어닛마운트 렌즈는 수동초점에서만 세 번의 교체가 있었습니다. 펜탁스 K시리즈(K2, KX, KM, K1000 등)에 쓰인 SMC렌즈, M시리즈(ME, ME-SUPER, MX 등)에 쓰인 SMC-M렌즈, A시리즈(프로그램A, SUPER-A, A3000 등)에 쓰인 SMC-A렌즈가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렌즈들이 서로 차이가 있다고 하여 가장 뒤에 나온 SMC-A보다 가장 먼저 나온 SMC렌즈들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보통은 이 렌즈들을 K렌즈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급적 SMC-A렌즈를 더 선호합니다. 가장 나중에 나온 것이 가장 진보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렌즈들 사이의 가격 격차가 없고 오히려 SMC-A 렌즈가 신형이라고 해서 조금 더 받는 곳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수집가들 사이에 K렌즈가 가장 성능이 좋다고 해서 더 비싸게 거래되기도 하는가 봅니다. 엊그제 펜탁스클럽 장터에 렌즈를 내어놓았던 분이 바로 이런 K렌즈였습니다.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더 비싸게 산 것인데 저는 그냥 다른 렌즈하고 같게 생각해서 그런 착오가 났던 것입니다.


저는 거듭 말하지만 어느 업체의 렌즈가 더 좋고 어쩌고 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화각의 렌즈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렌즈가 사진의 질을 좌우한다는 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렌즈의 성능을 따진다면 심한 말로 라이카로 가던지, 미놀타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언짢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사진기클럽입니다. 라이카나 니콘 등은 그들이 후원하는 클럽들이 있습니다. 새로 사진기나 렌즈가 나오면 그들에게 먼저 시용하게 하고, 그들의 행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자기네 제품을 선전광고합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들입니다. 이런 것은 어떻게 보면 공생이라고 생각되고 서로간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 제 삼자가 뭐라 할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금 활동중인 사진기클럽들은 전혀 아닙니다.


후원금하나 받는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일제 사진기를 쓰면서 그들의 대리전을 스스로 해주는 하수인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업체들이 보면 배곱을 잡고 웃을 일일 것입니다. 엘지(LG)에서 일제 캐논을 들여다 팔면서 하는 선전을 보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데 소위 사진을 좀 찍는다는 사진인들까지 작당을 하여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일본 상표에 목을 매는 것은 기가 막혀 웃음도 안 나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한국사람들이 자기 돈을 들여 사진기와 렌즈를 사면서 왜 일본제품을 선전하지 못하여 안달을 하는지. 그렇게 자랑해 봤자 그것들 일본제품 아닙니까?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탓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나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펜탁스클럽에 몸을 담았던 것은 거기 구성원들이 주로 학생들이고 다른 클럽보다는 훨씬 도그마가 약한 것이 마음에 들어서였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펜탁스사진기만은 아닙니다. 니콘은 절대 쓰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늘 있지만 캐논이나 미놀타, 오림프스 등은 그것이 비싼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라이카, 놀라이 남들 만큼 세트로 갖추진 못했지만 하나 쯤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임에 가입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것이 아니잖습니까?


저도 일제 사진기를 쓰면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마는 제가 가진 일제사진기 스스로 부끄럽게 여길 뿐 남에게 자랑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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