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R8

2003. 6. 30. 20:56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사<제6호> 라이카 R8 2001년 03월 27일

사진기의 가격은 철저하게 시장의 원리에 의해 좌우된다. 제조업체에서 소비자 권장가격을
어떻게 정하든 그것은 시장의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요즘 가격이 많이 하락한 것이 핫셀블라드인데 핫셀의 구형은 일제 중형 사진기와 비교해
도 좋을 만큼 가격이 떨어져 있다. 500C나 500CM 같은 것은 표준 렌즈 장착해서 130만원
정도면 깨끗한 중고를 살 수 있다하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천하의 핫셀이 일제 마미야
RB 중고 가격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나 더 놀라운 것은 라이카 R8이다. 처음에 나올 때, 서울에서 250만원을 넘게 줘야 살
수 있었던 것이 현재 150만원 안팎이면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게다가 니
콘 F5나, 캐논 EOS1V 같은 것들이 200만원을 넘어간다는데 독일 라이카의 오리지널 R8이
그것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 말이 된단 말인가?


이런 현상은 우리 나라에서만 있는 기현상이라고 한다. 라이카 애호가들이 R8이 라이카의
고유 모델의 모습을 벗어났다고 쳐주질 않는다는 것이다.


1997년에 출시된 라이카 R8은 라이카-R 철학의 절정이라고 격찬 받으며 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싶어하는 진정한 사진가의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하기 위해 고전적인 가치를 시의적절
하게 연출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이 사진기는 탁월한 조작성과 완벽하고 뚜렷한 선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표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잡기 쉬운 그립과 단순하고 편리한 기능을 최적
으로 배치했다.


멀티모드 자동기능과 모터드라이브를 연결할 수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컨트롤SLR 사진
기. 선택할 수 있는 TTL미터링으로 전영역 종합 측광(full-field integral metering)과 다영
역 측광(multiple field metering)이 가능하며 촬영모드와 마음대로 조합하여 사용할 수 있고
노출보정 ±3EV으로 1/2단계씩 증감, 촬영모드로는 조리개 우선식(A), 셔터 우선식(T), 가
변자동 프로그램식(P), 자동 플래시 측광식(F)과 수동식(M : 셔터속도와 조리개 수동 세팅)
이 있다.

 

셔터 스피드는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조절하는 금속날 포컬 플레인 셔터로 자동 모
드에서 32-1/8,000초 무단(수동 모드16-1/8,000초, 하프 스톱 가능) 플래시 동조속도 1/250초
이다. 필름 스피드는 자동 DX 필름 ISO25-5,000, 수동으로는 ISO6-12,800, 셀프타이머(2초
와 10초), 다중노출, 미러 록업 장치, 3프레임(1/2EV 또는 1EV)의 자동 브래키팅이 되며, 급
송 레버에 의한 수동 및 모터드라이브(2또는 4fps)와 모터와인더(2fps)로 자동 필름이송이
된다. 여기에 30종 이상의 15mm에서 800mm까지의 고성능 렌즈와 다양한 액세서리를 조합
시켰으니 이렇게 막강한 사진기가 어디 흔한 일인가? 요즘 신형 사진기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이라고는 자동초점이 안되다는 것뿐이다.


이 사진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디자인상 중 하나인 독일의 산업 포럼디자인 하노
버(Industrie Forum Design Hannover)에 의해 1998년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또한 독일의
유명한 소비지 슈티프퉁 바렌테스트(Stiftung Warentest) 1997년 5월 호에서 세계적으로 유
명한 10종의 SLR을 시험한 결론으로 'Very Good(Sehr Gut)'마크를 획득했다.


그럼 독일에서 평가한 것이 왜곡된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언젠가는 이
사진기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나오리라고 본다. 한 때 별로 인기가 없던 사진기가 어느 날
갑자기 여러 사람에게 주목받게 되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일들이 종종 있기 때문에 이
라이카 R8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왕년에 나온 라이카의 M5도 그 형태가 기존의 라이카 M형보다 너무 크다고 하여 실패한
모델이라고 냉대 받다가 세월이 지난 뒤에 갑자기 시대를 앞섰던 사진기로 불리면서 인기가
높아져 갑자기 품귀 현상이 났던 일이 있었다. 지금 M5의 가격은 M6의 가격보다 더 높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구하기도 쉽지 않다.


나는 라이카를 가질 형편이 전혀 못되지만 가질 수 있다면 당장 R8을 하나 사고 싶다. 비
록 우리 나라에서 인기가 없어 일제보다 싼 가격에 거래된다해도 니콘이나 캐논보다는 몇
단계 위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인기가 없다해도 라이카는 역시 라이
카가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이미 라이카가 니콘보다 더 떨어진다는 얘기를 용감하게(?) 하고 다니던데
어떻게 일제를 독일제에 비교할 수 있는지 그 용기가 부럽다. 적어도 정밀과학, 그 중에서도
광학은 아직 일본이 독일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전자계통은 일본이 앞설지 모르지
만 광학 자체는 독일에 많이 못 미친다고 알고 있다. 다만 가격 경쟁에서 일제가 우위에 있
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일본 사진기업체들은 대량생산라인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에 소량으로 나오는 독일제보다 훨씬 유리하다.

그것으로 일본사진기가 독일사진기를 잡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이제 일본도 독일의 전철을 밟은 날이 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어차피 일본
도 이제 대량생산으로 버틸 수는 없을뿐더러 인건비 상승으로 일본에서 생산할 수 있는 날
도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자랑한 전자 기술은 디지털 시대에 와서 우리에게 밀
리고 있다. 광학기술이야 아직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추세라면 일본
이 독일을 추월했던 것처럼 우리가 일본을 추월할 날도 오리라 믿고 싶다.


사람도 사진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
장한 사람도 어느 날 맥없이 불꺼진 항구처럼 퇴진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별 볼일 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날 화려한 조명 속에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가끔
보기도 한다.


무엇이든 당시에 제대로 평가받기는 쉽지 않다. 오랜 세월 속에 검증되어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서 평가받지 못하던 사람이 사후에 호평을 받는 것처럼 안타까운 것
이 없지만 그래도 제대로 평가가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