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누구냐? 고 묻는다면

2003. 5. 25. 16:55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5월은 행사가 많은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근로자의 날, 그리고 가끔 벗어나기는 하지만 석가탄신일도 있어 놀기도 많이 놀고, 생각할 것도 많은 달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조금 나이가 들다보니 애들이 다 어린이날을 벗어나 있어 그 날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버이날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장모님은 바로 윗 동에 살고 계시어 크게 소란을 떨 일도 없습니다. 근로자의 날에 학교는 쉬지 않으니까 그런 날이 있는가보다하고 넘어가고, 석가탄신일도 절에 찾아다니는 불자는 아니어서 그냥 하루 쉬는 날입니다.


제가 신경을 많이 쓰는 날은 솔직히 스승의 날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제가 교직에 있어서 누가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으로 들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제게는 스승님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날은 무척 바쁘게 움직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지금 다 연락이 끊어졌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 고등학교의 은사님 다섯 분과 담임 선생님, 대학의 지도교수님 등 제가 인사드리고 찾아뵈어야할 선생님이 많습니다. 일일이 찾아뵈어야하지만 축전으로, 꽃바구니로 인사를 대신 올리고 서울에 계신 분만 찾아 뵙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날 우리 서울포토클럽 회원들은 해마다 우리에게 사진을 지도해주시는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저녁을 대접합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서양과 달리 스승의 역할을 무척 큰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도 우리 동양에서나 있는 얘기입니다. 주나라 무왕의 스승이 되었던 태공망, 초나라 항우의 스승이었던 범증은 다 '아부'라고 하여 아버지와 버금가는 위치를 부여받기도 하였습니다. 훌륭한 스승 아래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었고, 좋은 스승을 찾아 먼 길도 마다않고 길을 떠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스승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나를 가르킨 것은 칠할이 바람이니, 나는 스승없이 혼자서 깨달음을 얻었느니 하는 독불장군들도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지금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훌륭하신 많은 스승님 덕에 이나마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아이들에게 훌륭한 스승으로 기억되지 못하더라도 제게는 너무 좋았던 선생님이 많이 계십니다. 학업에서 뿐이 아니라 삶에서도 그렇고 교직에 나와서도 그렇고 사진에서도 그렇습니다.


엊그제 충무로에 사진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충무로에 가는 것은 가보카메라에 들르러 가는 것이지만 사진도 찾아야되서 겸사겸사 나간 것입니다. 가보에 들렀더니 뜻밖에도 서울포토클럽 지도교수이신 성낙인 선생님이 거기 와 계셨습니다.


성낙인 선생님은 우리 사진계의 원로이자 엘리트인 것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 아실 것입니다. 지금은 연세가 많으시어 전혀 활동을 하지 않으시지만 건국대와 서라벌예대, 그리고 홍익대학교에서 정년 퇴임을 할 때 까지 사진을 가르치신 정통 사진가이시고, 사협 부이사장, 이사장권한 대행을 역임하신 살아있는 사진의 전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더 앞의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정통성으로 본다면 본격적인 사진의 시작은 우리 성낙인 선생님시절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포토클럽의 총무를 오래 맡고 있었는데 제가 그 클럽에 가입해서 지금까지 오는동안 쭈욱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제가 즐겨 찍는 꽃사진은 접사가 아니라 아름다운 분위기인데 이 작법은 바로 선생님 사진에서 배운 것입니다. 선생님은 웅장한 사진보다 작고 화려한 사진, 아름다운 사진을 주로 하셨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따라하다보니 저도 그런 사진을 많이 찍는 것 같습니다.


그날 따라 다른 분은 없고 선생님만 계시어 그냥 인사만 하고 오려했는데 선생님이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씀을 하시어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접을 하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자주 가시는 추어탕집이 있다고 앞장을 서시길래 그냥 따라갔습니다. 충무로 포토랜드에서 조금 더 들어온 지점에 있는 원주복추어탕집은 이날 처음 가봤습니다.


선생님은 꼭 통으로된 추어탕을 드시는데 저도 같이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안주를 하게 무엇을 하나 더 시키라고 하시어 튀김을 작은 것으로 하나 더 시켰습니다. 술은 소주를 마시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몸에 좋은 백세주를 마시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며 굳이 백세주를 시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백세주를 시켰는데 사실 저는 백세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술을 전혀 안 드십니다. 순전히 저 때문에 백세주를 시키고 미꾸라지튀김을 시킨 것입니다.


저 혼자서 백세주를 한변 다 비우는 동안 여러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사진기에 관한 것, 사진에 관한 것, 삶에 관한 얘기를 조용 조용 말씀하실 때 듣고 있노라면 나이 차를 전혀 잊고 아주 즐거운 대화가 됩니다. 선생님은 설명하시기보다 대화로 얘기를 이끌어가시는 편이어서 아주 부담이 없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비가 26,000원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제가 내어야하는데 선생님이 굳이 내시겠다고 하시어 제가 대접(?)을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제가 저녁을 얻어 먹고 기분이 좋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사진을 이만큼이나마 하게된 것은 순전히 가보카메라 최운철 사장님과 우리 지도교수이신 성낙인 선생님을 만난 덕이라고 말씀드리고자 장황한 얘기 올린 것입니다. 누가 제게 사진에서의 너의 스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저는 성낙인 선생님과 최운철회장님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다른 사진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있었던 것은 이런 훌륭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은 꼭 말로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눈으로, 가슴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스승없이도 배울 수 있고, 또 스스로 해서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서 삶을 배운다면 그것 또한 행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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