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갈비

2003. 5. 11. 10:11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닭 갈비하면 떠 올리는 것이 춘천 닭갈비인 사람이 많겠지만 원래 닭갈비라고 하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말입니다. 조조가 전쟁에 나가서 암호를 정할 때 썼던 말로, 원래는 '계륵'이란 말로 되어 있습니다. 닭의 갈비는 먹으려고 하면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조금은 아까운, 그래서 가지고 있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아까운 것을 얘기할 때, 이 '계륵'이란 말을 씁니다.


여담이지만 요즘 말하는 닭갈비는 닭갈비가 아닙니다. 그냥 닭을 큼직큼직하게 토막내어 야채와 함께 철판에 볶는 것을 닭갈비라 하고 이것의 원조는 춘천에서 시작됬다고 해서 보통 춘천 닭갈비라고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춘천에 가면 닭갈비집이 엄청 많습니다.


이 계륵이란 말이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간에 사진하는 사람들에게는 계륵과 같은 기기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사진기 하나만 덜렁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취미나 전문적으로 사진을 한다는 분들은 사진기나 렌즈, 그밖의 악세서리 중에 필요해서 샀지만 사 놓고 보니 별로 쓸데가 없어 누구 주자니 아깝고, 가지고 있자니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을 한, 두 개씩은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이것들 때문에 골치가 아플 때가 많습니다.
오래 전에 35-70mm 줌 렌즈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28-70mm, 28-80mm, 28-105mm 등의 표준 줌이 일반화되어 있어 35-70mm 표준 줌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15년 전 정도만 되어도 줌 렌즈하면 35-70과 70-210이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진기를 산다하면 보통 35-70mm f/3.5-4.5가 달려서 왔습니다.


저도 처음 산 펜탁스 ME-SUPER에 35-70mm f/3.5-4.5수퍼렌즈가 달려 왔었습니다. 저는 그 때 사진기가 펜탁스니까 당연히 렌즈도 펜탁스 것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름도 생소한 소위 잡표 렌즈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은 것이 펜탁스의 SMC-A 35-70mm f/3.5-4.5인 줄 알았고 그것으로 교체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다시 펜탁스 SMC-A 35-70mm f/4.0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랬는데 이제는 28-70이나 28-80, 28-105 등이 나오니까 35-70은 쓰지 않게 되어 헐값에 넘기고 말았습니다. 그런 뒤에도 35-70을 다시 구입했다가 팔고, 다시 구입했다가 팔고 한 것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니콘에서는 35-70mm f/2.8이 나왔지만 펜탁스에서는 그렇게 밝은 렌즈는 만들어지지 않다가 28-70mm f/2.8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권위있는 분에게 들은 바로는 렌즈 구조와 구성상 줌 렌즈로 가장 이상적인 것이 35-70mm 렌즈라고 합니다. 다만 요즘 처럼 다양하게 줌 렌즈가 나오니까 효용면에서는 밀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광각 쪽으로도 조금 미흡하고, 망원으로도 조금 부족한 것이 35-70mm라 어쩔 수 없이 계륵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가졌던 렌즈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탐론 35-70mm f/3.5였습니다. 이 렌즈는 수동형식으로 아답톨 교환방식인데 25cm까지 근접 촬영이 되어 1;2.8의 마크로 촬영이 가능하고 35-70에서는 흔하지 않은 투 터치 줌 방식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35-70 줌 렌즈 중에서는 가장 우수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렌즈를 가보에서 사고 팔았다가 다시 사고 또 팔았습니다.


대개 렌즈를 살 때는 조금 여유가 있을 때이고, 팔아야할 때는 돈이 궁할 때인데 이럴 때에 계륵 같은 것들이 늘 왔다갔다하는 기기입니다.


얼마 전에 예지동에 갔다가 그 초입에 있는 대광사에서 탐론 35-70mm f/3.5를 봤습니다. 제게 이 렌즈는 별로 쓸데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도 만져보게 되었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펜탁스마운트라면 구입하고 싶다고 했더니 펜탁스마운트로 교체해서 15만원에 가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가보에서 산다면 13원 정도라 생각이 되서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요즘 구하기 힘든 것이니 더 싸게는 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탐론의 펜탁스마운트를 구하려고 종로와 예지동을 몇 바퀴 돌았던 터라 그 마운트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운트만 팔 수는 없냐고 물었더니 그렇게는 안된다고 해서 하는 수없이 15만원에 샀습니다.


이 렌즈는 구경이 58mm인데 작고 아담하여 f/1.2의 표준렌즈 처럼 보입니다. 밝기도 f/3.5이니까 그 정도면 어디 가서나 쓸만하다고 생각하여 구입을 한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결혼식장에 24-48mm, 35-70mm, 70-210mm 등 3개의 렌즈를 가지고 갔는데 교회라는 특수한 장소라 24-48은 꺼내어 보지도 못했고 주로 35-70으로 찍었습니다. 그런데 당길 때는 조금 짧은 느낌이라 70-210을 장착했더니 플래시와 합쳐지니까 너무 무거워 초점을 잡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 때 내린 결론이 35-135mm 정도가 되면 렌즈 하나로 예식장사진은 다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이 35-70mm f/3.5는 다시 계륵이 된 것입니다. 마운트를 바꿔 캐논이나 니콘으로 팔려고 펜탁스클럽 장터에 14만원에 내어 놓았더니 팔리지 않았습니다. 렌즈 상태로 보면 충분히 그 정도 가격은 나갈 것 같은데 다들 35-70mm 줌 렌즈는 이제 관심밖인 것 같습니다.


요즘 펜탁스클럽 장터에 보니 펜탁스오리지널 SMC 35-70mm f/3.5-4.5가 10만원에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이 렌즈를 샀던 곳으로 가져가면 10만원은 받을 겁니다. 조금 아는 집이니까요... 그렇지만 15만원에 산 것을 2주도 채 안되어 10만원에 팔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런 것이 계륵(닭갈비)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