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지 못할 나무
2002. 4. 7. 08:02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시간이 날 때면 남대문 시장과 그 지하상가 등의 사진기점을 훑고 다니는 버릇이 있습니다. 거기는 고급스럽고 최신형 제품들이 많이 나와 있어 눈요기라도 하는 심정으로 돌아봅니다. 그러면서도 견물생심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여 아예 보지 않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위로하며 얘써 외면할 때도 많습니다.
얼마 전에 펜탁스게시판에 남대문 어느 사진기점에 펜탁스 LX사진기가 있다는 얘기가 나와 있길래 한번 나가봤습니다. f/1.2 표준 렌즈를 장착해서 120만원에 나왔다길래 한번 구경이라도 하려고 나갔더니 벌써 팔리고 없었습니다.
제가 12년 전 쯤에 남대문 대광사에 부탁을 해서 펜탁스LX사진기 중고를 50만원에 구입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무척 비싸게 주고 샀는데 그 때 까지는 LX사진기를 본 사람도 얼마 안 될 정도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진기가 크게 좋은 것은 아니지마 펜탁스에서 나온 최고급기인데 상대적으로 니콘 F3나 캐논 new F-1보다 밀려 서울서는 구하기가 힘든 것이라 미리 선수금을 주고 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순간의 판단착오로 이 사진기를 1년 전에 마운트를 라이카로 개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사진기가 가지고 있던 고유 기능 몇 가지가 쓸모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봐도 영 살 수가 없습니다.
그 날 나간 김에 명동 지하상가의 남영카메라에 들러서 LX사진기가 나오면 제게 연락을 달라는 부탁을 하고, 명동카메라 곁을 지나다보니 라이카 280mm f/4.0 APO 렌즈가 보였습니다. 사진에서만 보던 것이라 얼른 들어가서 가격을 물었더니 340만원이라고 합니다. 박스에 든 신품이 310만원으로 알고 있었던 차라, 이것이 신품이냐 물었더니 신품은 아니고 거의 신품에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리 비싸냐고 되물었더니, 이 렌즈 이젠 단종되어 나오지 않은 것이라 그렇다고...
얼마 전에 몇몇 사진기점 홈페이지에서 보니 환율 변동으로 라이카 제품 가격이 많이 인하되었다고 나오던데 여기는 가격이 더 올랐으니 무슨 말을 길게 하겠습니까?
그 렌즈 가격이 250만원 정도만 해도 어떻게든 사보겠는데 300만원이 넘는 것은 제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습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볼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리려니까 문득 내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렌즈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거기에 매달려 몇 년을 거지로 지낼 필요가 있겠나 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돌아섰습니다.
사진기가 어른들의 장난감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거창하게 무슨 작품을 만들어내는 도구니 어쩌구 하기보다는 그것을 갖고 싶어 안달할 때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장난감이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늘 남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자 하며 새로운 것이 나왔다고 하면 바꾸고 싶어 잠을 못자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저도 그 범주에 들어가느 사람이구요...
좋은 사진기를 갖고자하는 꿈은 늘 가지고 있지만 너무 비싼 사진기를 갖는 것은 그것도 낭비라고 생각되니 대체 어떤 마음이 진실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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