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4. 21. 11:12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글 올리는 것이 게을러지고 있어 죄송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종로에 나갔다가 가보카메라에서 오래 전에 나온 렌즈 하나를 보았습니다. 탐론 SP CF tele macro 70-210mm f/3.5-4.0라는 긴 이름을 가진 렌즈인데 나온 지가 20년은 넘었을 구형입니다.
탐론에서 나오는 렌즈 중에 SP라고 이름이 붙은 것은 비비타 렌즈에서 시리즈 원, 토키나 렌즈에서 AT-X와 같은, 고급형 렌즈입니다. 이미 오래 사용된, 외형에서 낡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 렌즈는 마운트가 펜탁스 K마운트 아답톨이 장착되어 있다기에 가격을 물었더니 10만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구형이고 낡았다해도 이름이 있는데 탐론 SP 70-210mm f/3.5-4.0 렌즈가 10만원이라는데 놀라, 제가 사겠다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제겐 펜탁스 K마운트 렌즈로 펜탁스 70-210mm f/4.0-5.6 AF 렌즈가 하나 있고 비비타 시리즈 원 70-210mm f/3.5 렌즈가 있지만 캐논 FD 마운트 렌즈가 없어 이 렌즈를 마운트를 바꿔 쓰려고 한 것입니다(탐론 수동 렌즈들은 아답톨이라는 마운트가 장착되어 마운트만 교환하면 어느 사진기에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가보카메라에서 탐론 70-150mm f/3.5 렌즈와 어안 효과를 내는 필터형 렌즈를 6만원에 가져 온 적이 있는데 그 70-150mm 렌즈에 장착된 FD마운트 아답톨을 바꿔 끼우면 그대로 캐논 사진기에 쓸 수 있어 거기에 쓰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렌즈를 집에 가져와서 아답톨을 바꾸려보니 막 가져온 70-210 렌즈에 끼워진 아답톨은 펜탁스 마운트가 아니라 니콘마운트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빼어 놓고 거기에 FD 마운트 아답톨을 장착하여 사진기에 끼워보니 아주 흡족하였습니다. 이 렌즈는 210mm 영역에서는 1:2 정도의 마크로 기능 까지 있어 접사링 하나만 끼우면 1;1 마크로 촬영이 가능하답니다.
제게는 니콘 사진기가 없어서 니콘 마운트 아답톨은 필요가 없고 캐논이나 펜탁스 마운트가 필요해, 그것을 구하고자 여러 군데 전화했더니 아답톨 하나 가격이 65000원이나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렌즈 가격이 10만원하는데 마운트 아답톨이 5만원을 넘어간다면 이거 어디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이지...
그래서 어제 종로에 나가봤습니다. 가보카메라에는 이미 전화로 확인했는데 캐논이나 펜탁스 것이 없다고 들었길래 세운상가 쪽으로 가서 찾다보니 어느 사진기점에 탐론 SP 80-210mm f/2.8 렌즈가 눈에 띄이는 것이어서 가격을 물었더니 45만원 달랍니다.
그 렌즈도 제가 알기엔 나온 지가 20년 가까이 된 것입니다. 앞에서 제가 산 렌즈 바로 다음으로 나온 것인데 그 가격이 45만원이라니...
내가 놀라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구하기 힘든 렌즈라고... 그 말이 틀리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예전에 나올 때 가격도 꽤 높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산이 중단되어 90년대 이후 카탈로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형 렌즈입니다.
렌즈 밝기가 사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사실을 별로 인정하지 않지만 우선 밝은 렌즈가 더 폼이 나고 초점 맞추기도 유리하고, 구경이 크니까 연마하기도 더 어럽다는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가격 차이 만큼 사진에 차이가 난다는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주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는 돈 때문에 가격이 싼 것만 찾다가 사진에 조금 눈이 뜨이면 더 좋은 렌즈를 찾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좋은 렌즈라고해서 좋은 사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쯤에는 이미 많은 돈을 낭비한 뒤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밝은 렌즈가 사진이 더 좋다고 얘기하며 비싸게 파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누구나 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사진을 배운다는 말이 있지만 이런 얘기에 현혹되어 밝은 렌즈만 찾다보면 거지되기 십상입니다.
저도 물론 고급 렌즈에 초연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손에 들고 찍기 좋은 렌즈가 좋은 렌즈라고 생각한지도 꽤 되었습니다. 밝은 렌즈는 무겁습니다. 무거우면 흔들리기 좋기 때문에 삼각대 없이 찍으면 오히려 더 안 좋을 때가 많습니다.
소형차로는 골목을 누빌 수 있지만 대형차로는 골목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요즘 사진기점에 나가면 구형 낡은 렌즈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잘만 고른다면 싼 가격에 좋은 렌즈 구할 수 있습니다. 고급 렌즈 찾지 마시고 좋은 렌즈 구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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