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

2002. 5. 12. 11:02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쉽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무개가 사진을 잘 찍으니 아무개에게 부탁해라', '아무개는 사진도 못 찍으면서 늘 사진기는 메고 다니더라' 등의 말을 들을 때면, 그 사진을 잘 찍는다, 못 찍는다는 말이 무엇을 근거로 나온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저는 어디에 가든 늘 사진기를 메고 다닙니다. 학교에 나갈 때나, 밖에 나갈 때나 사진기 가방을 메지 않으면 무엇인가 허전해서 심지어 문상갈 때도 사진기 가방을 메고 다닙니다. 이런 저를 아는 사람들은 의례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직장에서는 제가 사진을 찍는 것에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사진기를 꼭 가지고 다니는 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하는 말이 '무슨 돈으로 사진을 찍느냐?' 는 것인데, 내 대답은 그냥 웃기만할 뿐입니다.
10여 년 전에는 동료 선생님들 자녀 결혼식에 가면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늦게 들어 온 후배 교사들 결혼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게 되어 거기 가서도 찍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가 좀 들다보니까 그런 것들이 좀 어색하고 하고 싶지가 않아서 아예 찍지를 않습니다.
명퇴하신 교장 선생님이 교감으로 있을 때, 아들이 결혼식한다고 일요일에 사진을 찍어달라기에 일요일엔 사진 찍으러 나가야되기 때문에 결혼식장에 갈 수가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결혼식 사진은 잘 찍어야 본전이고, 조금만 실수하면 구설수에 오르게 되는데 굳이 가서 찍고 싶은 생각이 들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교사였다면 모르지만 교감 선생님 자녀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지만 마음으론 휠씬 편했습니다.
다 그렇지야 않겠지만 윗 사람 사진 찍어주고 돈 받기란 참 난처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어서 그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엊그제 교장 선생님이 불러서 갔더니 당신 따님이 결혼식을 올리는데 사진을 찍어달라고, 나만 믿어서 다른 곳에 부탁하지 않았다고... 참 난처한 얘기였습니다. 그 자리에 다른 선생님들이 많이 오실 텐데 내가 교장 선생님 딸 결혼식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또 무슨 말들이 나올런지... 거기다가 이젠 저도 나이가 들어 그런 자리에서 사진 찍는 것은 꺼려지고 있는데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사진을 찍을 줄 아는 제자를 불러서 해결하려는 것인데 이 얘기를 들은 선배님 말씀이 '이선생이 사진 잘 찍는다고 부탁을 했을텐데 다른 사람 시키면 서운하다고 하지 않겠나?' 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사진 잘 찍는다는 것이 결혼식장에 가서 사진이나 찍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참 난감합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다고 저도 사진 15년에 겨우 눈을 뜨고 있지 않나 생각하는 바여서 사진을 잘 찍는다는 말을 감당하기도 어렵지만 설령 잘 찍는다는 말이 남의 결혼식 사진을 찍는 것이라면 얼른 사양하겠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말이 여러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기에 쉽게 말할 것은 아니지만, 요즘 노출 정확하고 자동초점으로 조절되는 사진기라면 조보자라도 잘 찍을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게만 주의하고,머리나 다리가 잘리지 않게 구도 잡아 찍으면 다 잘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사진을 보면서 사진을 잘 찍었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잘 찍은 사진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진기는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말을 이해하는데 15년 세월이 걸렸습니다. 제가 감히 건방지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제야 조금 사진을 볼 줄 아는 것 같은데 사진을 잘 찍는다니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 그렇게 쉽게 말할 말이 아닌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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