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2002. 6. 2. 10:28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15년 전 쯤에 남대문 어느 사진기점에서 펜탁스 LX사진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상태가 아주 깨끗한 편이었는데 표준 렌즈 장착하여 55만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그것을 사고 싶었지만 처음 산 ME-SUPER사진기 할부 갚느라 정말 힘들어서 사지 못하였습니다. 한달에 30만원 남짓하는 월급에 사진기 할부 가격이 4만원이 넘게 나갔기 때문입니다. 얼마 뒤에 그 사진기는 팔리고 없었습니다.
여러 책에서 LX사진기가 좋다는 기사를 보고는 꼭 가지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제가 조금씩 받는 돈이 늘었기에 살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월급이 오른 것이 아니라 보충수업 수당이 꽤 되서 매월 25만원 정도를 더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수당의 반은 집사람 주고 반은 제가 쓸 수 있었기에 다시 욕심이 난 것입니다.
서울시내 중심 부분의 사진기점을 다 뒤지고 다녀도 LX사진기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더욱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남대문의 대광이란 사진기점에 선금 20만원을 주고 구해달라고 부탁하여 허름한 LX사진기를 50만원에 샀습니다. 렌즈 없이 바디만 50만원이었는데 끈을 맬 고리도 없고 케이스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30만원도 아까운 낡은 중고사진기였는데 하여튼 어렵게 구한 것이라 무척 애착을 느끼며 사용하였습니다.
그 뒤로도 어디서 LX사진기만 보면 다시 확인하고 그것이 언제 팔리나 보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LX사진기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LX사진기가 너무 낡은 것이라 깨끗한 신품이 있으면 언제든 새로 사고 싶었지만 그런 사진기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 4년 전에 예지동에서 LX티탄사진기를 보았는데 그 가격이 185만원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LX사진기를 갖고 싶다해도 그렇게 비싼 것은 싫었습니다. 그래도 가끔 가서 보았는데 어느 날 팔리고 없었습니다.
세운상가 앞 조그만 사진기점에서 펜탁스 ME-SUPER사진기를 라이카 R마운트로 개조한 것을 보았습니다. 25만원을 달라고 하던데 적어도 5만원은 비쌌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도 내가 가진 LX사진기를 라이카 마운트로 개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카메라에 맡겨 10만원 주고 개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 한번의 실수였습니다. 마운트만 단순 개조한 것이 아니라 조래개가 열릴 수 있도록 하다보니 고유 기능의 여러 가지가 쓰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다시 다른 LX사진기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에 펜탁스클럽이 생기고 부터는 LX사진기는 여러 회원들의 선망의 기종이었지만 가진 사람도 드물고, 팔고자하는 사람도 없어 오히려 그 가격만 더 올려 놓은 꼴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안면이 있는 회원이 클럽 장터에 LX사진기를 70만원에 내어 놓고, 사진기를 다 정리한다기에 무슨 급한 일이 있는 줄 알고 연락을 해봤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카드빚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제가 상태를 보고 결정한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연락이 잘 안되다가 어떻게 간신히 연결이 됬는데 다급하게 팔아야되는 모양 같아서 제가 구입하기로 하고 만났습니다.
솔직히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다급한 것 같아 달라는 금액을 다 주고 가져 왔는데 그 뒷맛이 몹씨 씁슬합니다.
무엇에 돈이 급해 이렇게 갑자기 애지중지하던 사진기를 다 파느냐고 물었더니, 정말 뜻 밖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라이카M6를 사려고 그런다고...
제가 괜히 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LX사진기를 갖고 싶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사려고 한 것은 100만원 내외가 되더라도 아주 깨끗한 신품 수준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깨끗지 않은 것을 흥정도 않고 70만원을 선뜻 준 것은 어려움을 도와준다는 의미도 컸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씁쓸했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라이카 M6가 정말 좋은 사진기임에는 틀림없지만 SLR사진기를 쓰던 사람이 사용하기엔 정말 아닙니다. 저도 그 사진기에 대한 욕심이야 왜 없겠습니까마는 제가 쓰기엔 아니라고 생각해서 구입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사진기, 더 고급스런 사진기에 대해서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그 선망하던 사진기를 사서 써보면 별것 아니었다고 생각할 날이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올 것입니다.
남들이 하는 얘기도 내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예전에 알았더라면 저도 실수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