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1. 20:00ㆍ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오서산은 큰 산이지만 큰 나무가 없다. 어느 책에선가 보니까 자유당정권 시절에 이승만대통령 생일축하 사절로 오던 자유중국 비행기가 오서산에서 추락하여 불이 나 산의 나무가 다 탔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확인하였더니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고 이미 왜정 때에 나무를 다 베어냈다고 한다.
큰 나무들은 숯을 구워내느라 다 없어지고 작은 나무들은 땔감으로 쓰느라 다 베었다는 얘기이다. 하긴 장곡면 사람들뿐만 아니라 광천읍, 멀리 홍동면 사람들과 보령, 화성 사람들이 다 오서산의 나무를 땔감으로 썼으니 나무가 남아있을 리가 만무했다.
큰 나무는 오히려 동네 안에 많았다. 오래된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그리고 감나무들이 동네 안이나 집안에 있었다. 아름드리나무라고 하면 꽤 클 것 같지만 막상 재어보면 별거 아니다. 꽃밭골 왕 솔밭에 있는 제일 큰 소나무는 어른 팔 길이로 두 아름이 넘었는데도 멀리서 보면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았다. 또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은 나무도 재어보면 한 아름이 넘는 것이 많아서 아름드리나무가 생각보다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군에 가 있으면서 놀란 것은 큰 나무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깊이 들어가면 두 아름이 넘는 나무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이다. 주로 골짜기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큰 나무들은 한두 그루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지어 있었다. 그것도 후방에서는 생각도 못할 단풍나무와 물푸레나무가 고목이 되어 아름드리로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오서산이나 다른 산에서도 단풍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란 것은 본 적이 없고 물푸레나무도 잘 해야 도끼자루나 도리깨 살 정도의 크기가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무들 중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이 박달나무였다. 박달나무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은 그저 막연하게 단단한 나무라는 것과 박달나무로 만든 윷이나 몽둥이가 있다고 들은 것이 전부였다.
박달나무하면 또 이야기되는 것이 단군(檀君, 혹은 壇君)할아버지이다. 환웅천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나라를 열었다고 이야기할 때에 그 신단수가 박달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군의 ‘단’이 박달나무 단(檀)이 아니라 제단 단(壇)이라고 쓰인 곳도 많아서 이 부분은 확실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박달나무가 왜 인상이 깊었는가 하면, 이 나무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단단한 나무라는 것과 아름드리로 자란 박달나무가 전방에 많이 있다는 사실에서였다. 말로만 들었던 박달나무의 실체를 눈으로 보고 알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 우리 마을 어느 집에 강원도에서 보내 온 것이라고 박달나무로 만들었다는 다듬잇돌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돌이 아니라 다듬이나무였다. 그러나 그때는 다듬잇돌을 나무로 만들기도 하는가보다 생각만 했을 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었다. 우리가 어릴 때에 이미 다듬잇돌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을 때라 다듬잇돌을 보면서도 그 용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나무로 돌을 대신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게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박달나무를 직접 보게 된 것은 풍산리 훈련소에 근무하면서였다. 내가 군에 가기 전부터 전방에 가면 피나무로 만든 바둑판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들었고 직접 보기도 했지만 그게 다 전방에서 불법으로 반출된 것이라는 것은 군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훈련소를 마치고 주파리에 있을 적에 바둑판을 만든다고 단풍나무를 베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단풍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란 것을 눈으로 보았고 단풍나무가 엄청 단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이서 양쪽에서 잡고 사용하는 아주 큰 톱으로 단풍나무를 베는데 나무가 얼마나 단단한지 톱날이 뜨겁게 달아오르도록 톱질을 해도 나무가 베어지질 않았다.
내가 군에 가기 전에 본 것은 작은 단풍나무뿐이어서 단풍나무가 그렇게까지 단단한 줄은 정말 몰랐었다. 고참 여럿이 달라붙어서 나무를 베어내고 토막으로 잘라서 소금물에 하루를 삶아서 건저 내어 가져갔다. 고참들이 수군거리는 얘기를 어깨 너머로 들어보니 이제 피나무를 구할 수가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단풍나무로 바둑판을 만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얘기가 단풍나무는 단단해서 좋지만 너무 무거워서 바둑판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했다. 중대장이 누군가에게 바둑판을 만들 재목을 부탁받고서 피나무를 구하다가 못 구하니까 꿩 대신 닭이라고 단풍나무라도 보낼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 뒤로 산에 다니면서 보니까 정말 단풍나무가 두 아름이 넘는 것들이 여나믄 그루씩 무리를 지어 있었다. 그리고 물푸레나무도 역시 무리를 지어 있어서 그 둘레를 재어보면 두 아름이 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나무들은 큰 줄기를 보면 무슨 나무인지 알 수가 없고 작은 가지나 잎으로 확인해야 알 수가 있었다. 나무가 오래되면 겉껍질이 다 비슷비슷해지는 모양이다.
우리도 피나무를 찾으러 여러 번 나갔다. 훈련소에 근무할 때에 중대장에게 청이 들어오면 며칠이고 나무를 찾아 산속을 헤매고 다녔다.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바둑판을 만들기 위해서 베었다가 버린 피나무 썩은 것이 무척 많이 보였다. 피나무 바둑판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나무가 연하여 베어내기가 좋고, 가벼워서 운반하기 좋고, 재질이 부드러우면서도 질기기 때문이다.
처음에 바둑판을 만들어 바둑알을 올려놓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 놓으면 그 자리가 홈이 생겨 바둑알이 움직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너도 나도 피나무 바둑판을 원해서 전방 피나무가 씨가 마를 정도로 베어냈다. 우리가 갔을 때만 해도 막차를 탄 것 같아서 바둑판을 만들 아름드리 피나무를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렇게 피나무를 찾다보면 그래도 흔한 것이 단풍나무와 물푸레나무였고 간혹 박달나무들도 볼 수 있었다. 나무가 산에서 아름드리로 자라도록 베어내지 않았다면 첫째 이유는 그 나무가 쓸모가 없어서이고 또 다른 이유는 나무가 단단해서 베어내기가 쉽지 않아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나무가 아무리 탐이 나도 베어낼 수가 없으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박달나무는 그 두 가지 이유가 다 해당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달나무를 다음(http://enc.daum.net)에서 검색을 해 보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자작나무과(一科 Betul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
키가 30m까지 자라고, 수피(樹皮)는 회흑색이며 작은 조각으로 되어 줄기에서 떨어진다. 줄기에 있는 피목(皮目)은 옆으로 나란히 나 있다. 잎은 어긋나고 난형이며 가운데 맥을 경계로 9~10쌍의 잎맥이 양쪽에 나란히 나 있다. 잎 가장자리에는 위로 향한 고르지 않은 톱니들이 있으며 잎자루에도 털이 있다. 〈중략〉 목질이 단단하여 특히 빨래방망이로 널리 쓰였으며, 기구·기계·조각, 기타 세공재로 많이 쓰인다. 좀이 잘 슬지 않으나 때로는 좀이 슬기도 하는데, 똑똑한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평상시 건강하던 사람이 아플 때 이를 두고 "박달나무도 좀이 슨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국 각지의 산 중턱이나 골짜기의 흙이 많은 깊은 숲 속에서 자라며 해발 700m 되는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흔히 입에 오르내리는 '박달재'란 충청북도 제천군 소재의 박달재 외에 박달나무가 많은 곳에 난 고갯길을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1997. 12. 30). 申鉉哲 글
박달나무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말을 믿을 지도 모르나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니다. 박달나무로 무슨 기구를 만들면 너무 무거워서 다루기가 힘이 들 것이고, 빨래 방망이를 만들면 빨래가 금 새 헤질 것이요, 더구나 조각재로 쓰인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본다.
박달나무가 생나무일 적엔 칼이나 톱을 댈 수가 있지만 마르고 나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 박달나무로 칼도마를 만들면 하루도 못 가서 칼이 톱이 되어 버리고, 나무를 쪼갤 적에 박달나무로 바탕을 쓰면 몇 번 안 찍어도 도끼날이 다 나간다. 내가 보고 아는 박달나무는 분명히 그렇다. 나무가 너무 무겁고 단단하여 어디 쓸 곳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면 위에 나와 있는 내용과 다 비슷하다. 그럼 내가 알고 있는 박달나무는 대체 무슨 나무란 말인가? 내가 무협지에서 본 자단목(紫檀木)이니 흑단목(黑檀木)이나 하는 것들도 그 단단하기가 쇠와 같다고 해서 나는 내가 강원도에서 본 것이 진짜 박달나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군에서 듣기엔 우리나라 남한에서는 강원도에만 박달나무가 자란다고 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 즉 국화는 무궁화이다. 그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는 무엇인가? 대부분 사람들이 소나무를 얘기하지만 나는 박달나무가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단군할아버지와도 관계가 있으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요, 게다가 무겁고 단단하니 우리의 민족성을 드러내는 나무로는 박달나무가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요즘 소나무는 솔잎혹파리와 소나무재선충으로 인해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가기도 버거워하고 있으니 아예 이참에 ‘나라 나무’를 박달나무로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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