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가슴에 불을 당긴다

2012. 3. 21. 20:02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군에 가기 전에는 늘 막걸리만 마셨다. 그러나 군에서는 소주였다. 막걸리를 마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니 그렇게 하기엔 소주가 적당했다.

 

그때 마신 술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 경월소주였다. 우리는 보통 1.8리터 대병으로 사다가 마셨다. 행정관에게 부탁을 하면 출근할 때 가져다 주고 나중에 월급이 나오는 날 소주 값을 제하는 방식이었다. 훈련소라 특별히 금주령이 내릴 이유가 없었으므로 술 마시는 것만은 상당히 자유로웠던 편이다.

 

우리 넷은 가끔 국산양주도 마셨다. 훈련소 매점에는 해태양조에서 나온 마패 브랜디 640ml를 한 병에 5000원씩 판매했다. 이것이 일반 상점에서는 9,800원이었으니 무척 싸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끌어 분위기에 맞지 않게 양주까지 마셨다.

 

우리는 이 술을 보통 한 자리에서 두 병을 마셨다. 한 병으로는 조금 부족하고 두 병은 조금 무리였지만 무리해가며 마셨다. 안주는 고추장통조림을 사다가 풋고추를 찍어 먹었다. 그렇게 마시면 아침에도 술이 깨지를 않아서 훈련에 나가면 비틀거렸고 훈련병 사이를 왔다, 갔다하며 헤매고 다녔다.

 

그 무렵에 새로운 술이 나왔다. 동해주조에서 나온 백주라는 30도 소주였다. 그 술 광고가 사나이 가슴에 불을 당긴다, 동해백주였다. 그러니까 소주가 30도로 높아졌다는 얘기이다. 당시에 일반 소주는 25도였고 중국집에서 파는 고량주가 40도였다.

 

누가 착안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시절에 맞는 독한 소주가 나온 것이다. 그 시절이 1980년도였으니 세상 돌아가는 것이 독한 술에 취하지 않고는 못 견딜 시기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30도 백주가 나온 뒤로는 다들 이 술을 마시게 되었다. 25도 소주보다 더 독하니까 더 빨리 취할 수 있어 좋았다. 술을 맛으로 마시는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나 우리는 취하기 위해 마셨다. 그러니 우리 군인들에게는 아주 적절한 술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 술 때문에 속 버린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군대서 안주도 없이 이런 술을 마셔댔으니 그 속이 어떻게 견뎌냈겠는가? 다행히 이 백주는 얼마 안 가서 사라졌다. 동해주조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고참들이 차례로 나가고 우리가 고참대열이 되었을 때는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술을 사오는 후배들이 없었다. 우리는 졸 시절에 고참들이 제발 그만 마시자고 할 때까지 술을 사 날랐건만 세상이 변한 것인지 부대 후배들은 술 좋아하는 고참들을 무시한 채 그냥 모르는 체했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술을 마신지가 오래 된 것 같다고 하면 대답이 엊저녁에도 드시던데요였다.

 

그것이 괘씸해서 가끔 집합을 시켰다. 아침에 괜한 일로 트집을 잡아서 집합을 지시하면 밤에 점호가 끝난 뒤에 조용히 막사 밖으로 전원이 집합하고 보고 하러 온다. 우리 동기들은 고참이라 이미 옷을 다 갈아입고 페치카 곁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에 우리 바로 아래 후배가 정식보고를 한다. “하사 ○○○ 10명 집합 끝그 보고가 있으면 바로 나가서 훈계가 시작된다.

 

내가 먼저 나가서 요즘 군기 빠진 일을 나무라고 있으면, 감자하사와 정 하사가 차례로 나와서 두들겨 팼다. 고참들 눈치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결과는 늘 그렇게 돌아갔다. 그런 다음 날은 어김없이 저녁에 술이 나왔다. 눈치가 있는 후배들이라면 집합을 하기 전에 알아서 준비했을 일을 꼭 맞고서야 하는 것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넘어 갔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에는 기간 병끼리 중대 대항 축구를 많이 했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대우를 받게 되어 있지만 나는 운동을 못했어도 목소리로 한 몫 단단히 할 수 있어서 그런대로 괜찮았다.

 

중대끼리 축구를 하면 꼭 돈을 걸고 했다. 이기면 그 돈으로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지면 각자가 분담해서 돈을 내야했다. 우리 중대는 축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른 중대하고 시합을 하면 이길 때가 더 많았다.

 

8112월 어느 날에 ○○중대하고 축구시합을 해서 이겼다. 그래서 소주를 사다가 마시고 상당히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마침 훈련병들이 나가고 뒤의 병력이 들어오지 않아 우리 중대는 기간 병들만 막사를 지킬 때다. 훈련병이 없으면 점호를 취할 일도 없고 축구시합에 이겼으니 마음 편한 저녁이었다.

 

그날 화학대로 교육을 갔다가 들어온 정 하사가 런던드라이진을 다섯 병을 사가지고 와서 또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있었지만 사 가지고 온 것을 다음으로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다른 술은 다 좋아해도 드라이진은 몸에 영 안 맞는 것 같아서 잘 마시지 않지만 이날은 취한 김에 여러 잔을 마셨던 것 같다. 애들 내보내고 울적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미 많이 취해 있었던 몸에 40도짜리 독주를 주는 대로 받았으니 나는 이날 완전히 취해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밤인지 새벽인지 너무 추워서 자꾸 모포를 끌어당기는데도 이상하게 몸은 더 추웠다. 아무리 일어나려고 해도 몸은 움직여지지 않고 춥다는 생각만 들었다. 왜 그렇게 추운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 화장실에 간다고 나가다가 그대로 길에 쓰러졌던 모양이다. 이때 눈이 많이 와서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만 치워져 있었고 다른 곳은 40cm가 넘는 눈으로 쌓여 있었다. 나는 통로에 쓰러져서 자꾸 눈을 끌어당기며 추위에 신음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 우리 중대 곁으로 해서 탄약고에 근무를 나가던 다른 중대 사병들이 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고 우리 중대에 신고를 해서 나를 떠 매어 들여왔다고 했다.

 

감자하사가 페치카에서 뜨거운 물을 떠다가 수건으로 마사지해주고 모포를 덮어줘서 몸은 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속은 뒤집어져서 며칠을 밥을 먹지 못하고 고생했다. 정말 거기서 얼어 죽을 뻔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요즘은 소주가 20도를 밑돌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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