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면

2012. 3. 25. 16:36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내가 결성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이다. 예전에는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에 큰 외삼촌이 살고 계신 결성에 어머니를 따라 간 적이 몇 번은 있지만 그것은 아주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있는 것이라 결성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거기가 어딘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결성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로 봐야 정확하다.

 

고등학교에서 1학년 때 만나 3년을 같은 반에서 지낸 결성 친구가 천범이다. 1학년 때는 대개 서로 어디 사는지 어느 중학교를 나왔는지 정도만 알고 지낸다. 같은 통학권이라든가 친인척이 살고 있는 동네 출신이라 학교에 오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면 몰라도 학교에 입학하여 쉽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는 쉽지 않다.

 

천범이와 내가 가까이 지내게 된 것은 천범이 둘째 누나와 우리 둘째 누나가 광천상고 동기 동창이라는 것도 한 몫을 했을 거다. 광천상고는 학급 수가 많지 않아 서로들 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어디 사는 누구라고 하면 얘기가 통할 수 있었다.

 

우리가 2학년이 되던 해 봄에 천범이가 자기네 산에 나무를 심을 것이 있다고 같이 가서 심자고 하여 1학년 때부터 가깝게 지낸 친구 몇과 결성에 갔다. 약도를 그려주고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건만 우리는 거기 가서 많이 헤맸다.

 

길을 모르면 도시보다 시골이 집을 찾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다. 길에 사람이 없으니 묻기도 어렵고 무슨 큰 건물이라도 있어야 정확한 위치를 얘기할 것인데 그것도 없지, 번지를 표시한 문패도 없으니 난감했다.

 

한참을 헤맨 뒤에 간신히 방향을 바로 잡아 가다보니 세 갈래 길에서 어른 두 분이 마주서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공손하게 말을 여쭈려고 했으나 같이 간 친구 하나가 두 어른 사이로 쏙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얼굴을 찌푸리는 어른들께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 길을 여쭈어 친구네 집에 겨우 도착했다.

 

집에는 어머님과 두 누나가 계셨는데 아주 반가이 맞아주셨다. 한나절 나무를 심고 와서 점심을 먹고 나중에 아버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결성에서 들어 올 때 우리가 길을 물었던 그 어른이 바로 아버님이 아니신가? 얼마나 무안하고 송구스러웠는지 모른다. 첫 인상을 그렇게 버릇없는 아이들로 인식을 하셨을 것이니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아버님께서는 우리에게 30분 가까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 요지가 좋은 친구를 새로 사귀려 말고 지금 있는 친구를 잘 지켜라이셨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나는 매년 결성에 다녔다. 방학 때는 물론이고 조금 집에 머물 때가 있으면 결성에 가서 지내다 왔다. 나야 결성에 가도 천범이가 일을 하는 것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지만 언제나 반겨주시는 어머님과 친구가 있으니 늘 마음 편하게 갔다가 올 수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결성 향교의 전교라고 하는 직책을 가지고 계셨는데 농사일하고는 거리가 먼 어른으로 집안일은 어머님과 누나들이 다 알아서 하고 농사일은 머슴을 두고 하셨다. 아버님께서는 방앗간도 운영하셨는데 나중에는 거기서 일하던 분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주셨다고 들었다.

 

예전에 한학(漢學)을 하신 분들이 다 그렇겠지만 아버님은 결성에서 알아주시는 꼬장꼬장한 어른이셨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결성에서는 어른으로 통하셨고 조금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없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결성에 가면 아버님을 뵙고 인사드리는 일이 늘 어려웠다.

 

아버님을 뵙는 일은 마음으로도 어려웠지만 육체적으로도 힘이 들었다. 인사를 드리고 나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를 무릎 꿇고 앉아서 하시는 말씀을 경청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발이 저려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머님께서 들어오시어 이제 그만 하시라고 해야 말씀이 끝나셨다. 아버님 말씀은 하나의 통과의례로 알고 있을 정도였지만 말씀만 끝나면 우리는 사랑방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해도 다 좋았다. 어른들 계신 방과 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큰 소리로 떠들어도 누가 간섭을 할 사람이 없었다.

 

어머님은 무척 점잖으신 분이셨다. 내가 결성에 그렇게 여러 번 갔지만 언제 한번 큰 목소리 내시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버님께도 조용조용 말씀하셨고, 우리에게도 늘 인자하시고 너그러우셨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지만 집안 대소사는 다 어머님께서 알아서 관장하시는 것 같았다. 누나들이 결혼한 뒤에는 어머님 일이 더 느실 수밖에 없었다. 언제 가도 어머님께서 반가이 맞아 주시고 따뜻하게 해주시니까 내가 결성에 더 자주 갔는지도 모른다.

 

나와 용인이, 정재, 재진이, 후성이, 대웅이는 방학 때만 되면 친구들 집을 순례하다시피 했다. 천범이는 집에서 키우는 소를 거두느라 많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결성에 반드시 들렀다. 어머님께서는 천범이가 집안일로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다니지 못하는 것을 걱정스럽게 생각하시어 우리가 자주 가는 것을 아주 반기셨고 고마워하셨다.

 

군에 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못 갔지만 휴가 때는 꼭 결성에 들렀다. 그리고 대학에 다닐 때도 방학은 물론이고 명절이 되면 꼭 친구들 집을 순례하다가 종착이 되는 곳이 결성이었다. 결성에 가면 다른 친구네서보다 더 오래 묵고서 왔다.

 

천범이는 대학을 나와 그대로 결성에 눌러 앉았다. 일을 돕던 누나들은 다 결혼하여 떠나가고 형은 ROTC 장교로 전역한 뒤에 서울에서 직장을 잡았기 때문에 집에 남을 사람이 없었다. 고향에 남은 천범이는 곧은 나무도 선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천범이가 있어서 결성에 안 갈 수가 없었다. 천범이는 어려서 여물을 썰다가 손을 크게 다쳐 군에 가지 않았지만 나는 늦게 군에 갔다가 복학을 하여 천범이가 집에서 일을 할 때에 대학을 다녔다. 그래서 여름이고 겨울이고 방학 때가 되면 일도 못 도우면서 며칠씩 쉬다가 오곤 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에 천범이가 사랑에 빠졌다. 결성 농협에 근무하는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한겨울에 그 아가씨를 만나러 경운기를 끌고 나다녔다. 나는 천범이를 따라 나가서 다방에 앉아 있다가 천범이가 데이트를 끝내고 오면 다시 경운기를 타고 이를 덜덜 떨면서 돌아오곤 했다.

 

천범이는 내가 대학 3학년이던 때의 가을에 그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결혼식에 가서 보니 천범이의 처남이 내 중학교 동창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결성에 가서 잔치를 할 때 용인이, 정재, 재진이, 대웅이와 함께 가서 얼마나 신나게 마시고 놀았는지 모른다. 친구들 결혼식 중에서 이때가 가장 흥겹고 흐뭇했다.

 

1986년에 갑자기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고는 다음 해에 어머님도 세상을 뜨셨다. 어른들이 안 계신 결성은 텅 빈 것 같았지만 천범이가 그대로 남아 지키기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천범이가 살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워낙 큰살림이라 그런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천범이는 30대 중반에 가업을 짊어졌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어른들이 계실 때보다 더 크고 공고하게 다져 놓았다. 부모님 계실 때보다 농사짓는 땅도 많이 늘렸고, 소도 훨씬 많이 키우고 있다.

 

어른들이 세상을 뜨신 뒤에도 나는 매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결성에 다닌다. 명절 때는 물론이고 방학 때도 어김없이 들러 천범이와 계수씨를 번거롭게 하고 있다.

 

나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굽은 나무만 남아 있으니 선산이 전부 굽은 나무 천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을 지키는 나무는 곧은 나무여야 한다. 곧은 나무가 선산에 우뚝 서 있으면 그 아래에 자라는 나무도 다 곧은 나무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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