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좋아했던

2012. 3. 25. 16:58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많은 사람들이 학교 다닐 때에 선생님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여학생은 남자 선생님을, 남학생은 여자 선생님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좋아한다는 얘기는 사랑과 존경이 뒤섞인 복합적인 연정(戀情)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였든, 고등학교였든 학교 다니면서 이런 연정을 가져 볼 선생님이 한 분도 없었다면 그 사람은 학교생활이 별로였을 거라고 믿어도 틀리지 않을 거다.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엔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을 좋아하면서 이성에 눈을 떴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어려서는 여자 선생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1학기만 여자 선생님이 담임을 하셨고,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다 남자 선생님이셨다. 교과 담당 선생님은 중학교 때 여자 선생님이 몇 분 계시긴 했었다. 그러나 성함이 생각날 정도로 좋아했던 선생님은 없다.

 

그것은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럴 거라 생각한다. 고등학교에 와서 영어, 독일어 선생님이 여자셨고, 나중에 음악과 미술 선생님도 여자셨다. 나는 고등학교에 와서 비로소 여자 선생님을 만난 셈이다. 여자 선생님 중에서 영어를 담당하신 조경원 선생님을 뵐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다.

조경원 선생님은 이화여대를 나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온 초임이셨는데도 1학년 담임을 맡으셨다. 나는 수학과 영어가 취약과목이라 늘 전전긍긍했는데 수학은 담임선생님이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영어는 조경원 선생님 덕으로 열심히 했다.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도 빼어난 미인은 아니시다. 둥그런 얼굴에 화장을 하지 않은 꾸밈없는 얼굴이 시원했다. 충남 서천이 고향이라 우리들과는 동향이라 더 좋아한 것인지도 모른다. 수업 시간에 군말 없이 수업만 열심히 하셨는데도 아이들이 다 잘 따르고 좋아했다. 다른 선생님이 들으면 서운할지도 모르지만 여자 선생님다운 여자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잘하지 못하는 영어에 많은 시간을 쏟으며 더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

 

선생님은 아이들과도 가깝게 지내셨지만 젊은 선생님들하고는 잘 어울렸다. 학교가 신설학교다보니 젊은 선생님들이 많았다. 조경원 선생님이 어떤 선생님과 사귀고 있다는 얘기가 곧잘 풍문으로 떠돌았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속으로야 안타까웠지만 겉으로 드러내고 서운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젊은 선생님끼리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야 누가 뭐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면 그런 얘기는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그럼 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한번은 젊은 선생님이 아닌 연세가 많은 분과 조경원 선생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풍문이 떠돌았다. 있을 수도 없는 얘기고 있어서도 안 되는 얘기지만 소문이라는 것은 그렇게 시작된다. 내가 아무리 애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얘기를 해도 그 소문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렇다더라하는 소문이던 것이 나중에는 데이트 장면을 목격했다는 둥, 같이 여관에 가는 것을 봤다는 둥, 얘기가 구체성을 띄면서 점점 널리 퍼져갔다. 이런 일에 그냥 참고 있으면 일이 엉뚱하게 될 것 같아 내가 몸이 달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어서 걱정만 하고 있었다.

 

하루는 친구 몇과 잔디밭에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조경원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하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여 내가 선생님 아이스크림 좀 사다주십시오하고 소리쳤다. 선생님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가셨지만 기대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한 시간 뒤쯤에 선생님이 혼자 들어오시면서 우리 숫자만큼의 아이스크림을 사 오신 것이 아닌가? 고맙고 반가워서 인사를 여러 번 하다가,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더니 그럼 얘기하자고 해서 아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지금도 말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는 지금보다도 더 해서 단도직입으로 말을 꺼냈다. “선생님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또 내가 누구와 좋아한다는 얘기냐?”, “예 그런 얘기입니다.” “그런 얘기는 한두 번이 아닌데 뭘 신경 쓰니?”,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신경이 쓰입니다. 하필 아무개 선생님과 선생님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영주는 그런 말을 믿니?”, “절대 아닙니다.” “그럼 된 거 아니니?” 하시고는 웃으며 일어나셨다.

 

나도 하늘을 날을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나서 아이들에게로 갔다. 내가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전하고서 이 일은 역시 슬그머니 사라졌다.

 

선생님은 우리가 2학년 때에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홍주중학교로 옮겨 가셨다. 찾아가서 뵐 수는 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오가며 선생님을 뵐 때 인사를 하면 언제나 웃으면서 반갑게 받아주셨다. 선생님이 중학교로 가시면서 선생님의 막내 동생인 1학년 영구가 서천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선생님이 특별하게 부탁을 한 적은 없지만 나는 영구를 친동생처럼 잘 해주었다. 아이가 귀여웠고 붙임성이 있어 좋았다.

 

우리가 3학년이 될 때에 선생님은 서울로 가셨다. 영구도 선생님을 따라 서울로 전학을 갔다. 선생님은 대학에서 윤리교육과를 나와 영어교육을 부전공으로 했다고 들었다. 우리 학교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 부족하셨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영어 공부를 더 하시겠다고 학교를 그만두셨다고 한다.

 

내가 선생님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화번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영구하고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는 조금 쑥스럽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영구를 통해 선생님의 근황을 알고자 했었다.

 

대학에 떨어져서 서울에 올라와 재수를 하던 때에 선생님을 뵈었다. 그때 서울에 와서 재수를 하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여럿 있었는데 누군가가 선생님과 소식이 닿아서 대여섯이 넘는 친구들이 선생님을 뵈러 같이 갔었다.

 

제기동 어느 골목 안에 사셨는데 할머니가 함께 계셨다. 할머니께 큰 절로 인사를 하게 하신 것이 기억에 난다. 그때 영구는 만나지 못하고 왔다. 선생님이 담임을 했던 반 아이들은 그 후로도 계속 소식을 끊지 않고 지낸 모양이다. 거기에 내가 끼자고 하는 것은 눈치 보이는 일이라 나는 그 뒤로 선생님을 뵙지 못했다.

 

선생님은 결혼을 하시고 첫 아기로 따님을 낳았다는 것까지는 나도 들었다. 재수가 끝나면서 대학에 진학하고 한 달쯤 뒤에 군에 가느라 그 시절에 지내던 사람들과 대부분 연락이 끊어졌고 그러면서 선생님과 소식이 닿는 아이들과도 단절이 되고 말았다. 풍문으로 선생님이 바깥 분을 따라 미국에 유학을 가셨다는 얘기는 들었다. 내가 군에 가면서 영구와도 소식이 끊기어 그 뒤로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학교에서 열심히 하는 여자 선생님들을 보면 의례히 조경원 선생님이 생각난다. 내가 생각하기에 조경원 선생님만큼 열심히 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보지만 요즘 젊은 선생님들도 우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잘 하고 있다. 나는 그분들이 빨리 교단에 자리를 잡아서 자기 열정을 쏟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남자 학교에서는 여자 선생님을 정식으로 임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들 1년 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다시 자리를 찾아서 떠나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분들을 본다.

 

한 학교에 오래 계시면 아이들이 찾아오기도 쉽고 더 정을 쏟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안타깝다. 아마 내가 찾아뵙고자 노력만 하면 조경원 선생님을 찾을 수는 있을 거 같다. 다만 애써 찾아뵙고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할까봐 그것이 신경이 쓰여서 못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