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5. 17:00ㆍ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2001년에 학교에서 2학년 부장을 맡아 다음 해에 3학년 부장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학교에 갔던 80년대 중반만 해도 학년부장은 상당히 힘을 쓰는 자리였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많이 약해져서 내가 맡을 그 무렵은 예전에 비하면 이름만 남아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때다. 그래도 같이 담임을 맡은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어 별 탈 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문제는 학교에 있지 않고 교육부에 있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교사 정년을 단축하고 명퇴를 강요하면서 하루아침에 수많은 교사가 자리를 뜨고 그 자리를 계약직 교사로 채웠다. 거기다가 갑자기 학급 학생 수를 50여 명에서 35명으로 줄이는 바람에 학생 수는 그대로이면서 학급은 불어났다. 역시 그 자리도 계약직 교사로 채웠다.
내가 부장을 할 때에 우리 학교에 계약직 교사가 30명 안팎이나 되었다. 계약직이다 보니 학기 초에 왔다가 더 좋은 조건의 자리가 있으면 옮겨가는 교사들 때문에 한 학기에 담당 교사가 두세 번씩 바뀌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애들 성적이 좋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마치 20년도 훨씬 전인 내 고등학교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지방의 신설 사립 중・고등학교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전혀 모르는 얘기겠지만 시골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였다. 학기 중에도 선생님이 수시로 전근가고 오고, 애들도 툭하면 전학을 가고 또 오는 아이도 많았다. 내가 다닌 학교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대부분의 시골 사립학교들은 대동소이하다고 들었다. 더 황당했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은 담임선생님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교과담당 선생님이야 학기 중에도 바뀔 수 있다지만 학급담임이 바뀌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다면 적어도 그 학년 동안은 학교를 떠나지 않은 것이 기본예의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담임교사가 세 번이나 바뀌는 희귀한 일이 있었다.
처음 담임을 맡으신 분은 수학 선생님이셨다. 1학기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 시험을 못 보거나 처음 들어올 때보다 성적이 떨어진 아이들을 매섭게 혼을 내주던 무서우면서도 정감이 있던 선생님이 우리를 두고 떠나갈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선생님은 담임의 책무를 무척이나 성실하게 하던 분이라 더 큰 배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교사들 사이의 무슨 파벌싸움으로 다섯 분이나 되는 선생님이 학기 중에 다른 학교로 옮겨 갔다고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여러 선생님이 임시로 들어오시다가 2학기가 되면서 정식으로 우리 담임을 맡은 분이 독일어를 담당하시던 제정희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셨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간에 담임을 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어 과목의 조경원 선생님은 아이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가깝게 지내서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제정희 선생님은 그렇게 활달하신 성격이 아니어서 우리하고도 거리감이 있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선생님의 성격이 우선이고, 담당과목도 차이가 있다. 아이들을 이해하려 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거리감을 두지 않으면 잘 따르지만, 소심한 성격이거나 권위적이면 거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제정희 선생님이 권위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건강이 안 좋으시고 수업에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좀 짜증스런 목소리를 자주 내었다.
나도 처음에는 선생님에 대해 그리 호감을 갖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신 뒤에 많은 것을 나에게 시키셨고, 이후 조금씩 가깝게 되어 선생님에 대해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건강이 안 좋으셔서 교직에 안 나오려 했다가 시골에 가서 지내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 하여 우리 학교에 오셨다고 했다. 특별한 병이 있으신 것은 아닌데 체질이 허약하고 신경과민적인 면이 있었다.
내가 그때 놀란 것은 선생님이 몸에 좋다고 하여 사슴의 뿔과 피를 드셨다는 얘기였다. 여동생과 함께 사슴목장에 가서 150만원인가 주고 사슴의 뿔을 잘랐다고 했다. 그때 돈으로 150만원이면 시골에서는 큰 텃밭이 딸린 집을 살 돈이었다. 그런 거금을 주고 사슴의 뿔을 드셨다니 선생님은 우리하고는 다른 세상에서 사시는 분 같았다.
장남삼아 뱀도 드셔보았냐고 물었더니 뱀은 먹은 적이 없고, 뱀장어는 드신다고 했다. 그때 내 생각으론 뱀과 뱀장어는 전혀 다른 것이었는데도 쉽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놀라웠다. 그 둘은 전혀 다른 거였기 때문이다. 하긴 나중에 뱀장어 잡아 놓은 것을 보니 뱀 껍질 벗긴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선생님은 건강이 안 좋으셔서 결근을 자주 하셨던 것 같다. 우리는 생각이 적을 때라 그 상황을 잘 몰랐었다. 선생님이 안 나오시면 반장이 학급을 통솔해야하지만 나이를 더 먹었다는 이유로 거의 내가 다 했다.
나는 자습시간이나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을 불러다가 두들겨 패주었고, 청소를 도망간 아이들도 그냥 두지 않았다. 내가 힘이 센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계신 때도 아이들이 선생님을 무시하는 것 같으면 조회나 종례가 끝난 뒤에 혼내 주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더욱 나에게 많은 것을 시켰는지도 모른다.
2학기가 저물어 갈 무렵 선생님이 걱정스런 얼굴로 부르셔서 갔더니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가 되었는데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서 잘 모르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2학기부터 담임을 맡으신 데다 건강이 안 좋으셔 신경을 못 썼으니 난감하게 된 일이다. 이미 다 지난 일이고 제출해야할 시간은 다가왔으니 별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생각한 것이 나하고 반장 둘이서 우리 반 아이들의 생활기록부 기본 자료를 만드는 일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반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는 나하고 반장이 작성했다. 앞에서 반은 반장이 하고, 뒤의 반은 내가 했다. 내가 내 것을 쓰면서 ‘생활 태도’에 전부 ‘가’를 주기가 그래서 ‘나’로 하나 올렸더니 선생님께서 이를 그대로 하셔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유일하게 ‘나’가 하나 있다.
제정희 선생님은 건강이 더 악화되어 우리가 1학년 마치는 것도 보지 못하고 휴직하셨다. 그래서 다시 새로 오신 역사 선생님이 우리 담임을 맡으셨다. 늘 죄송스런 것은 그 뒤로 선생님을 찾아뵙지도 못 했고 소식도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생님의 성격이, 아이들이 가까이 하기엔 좀 거리가 있긴 했지만 나까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 세월 속에 선생님을 잊고 말았다.
선생님이 계속 교단에 계신지 궁금하다. 건강이 좋아지셔서 다시 교단에 서셨다면 시골이 아닌 서울 어딘가에 계실 것 같다. 그 시절 우리 학교하고는 어울리지 않으셨지만 선생님과 맞는 학교에 가셨다면 여러 아이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지내실 것이라 믿는다.
선생님은 홍성 같은 시골이나 우리 학교 같은 시시한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이셨다. 그때는 그런 것을 나도 몰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 맞는 관계가 있는 것처럼 학교와 교사 간에도 서로 궁합이 맞는 곳이래야 더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될 수 있다. .제정희 선생님처럼 섬세하고 수준이 높은 분은 서울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근무하셨어야 했다는 생각이 이제서 든다.
선생님이 나를 기억하진 못 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깐 스쳐간 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를 지금까지 기억하시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선생님을 찾아뵈어야 하는데 이렇게 마음으로나 그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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