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께

2012. 3. 26. 18:11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우리 선생님께

 

 

나는 떠난다. 청동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박남수. 종소리에서,

 

선생님, 평안하신지요?

 

 선생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 벌써 15년입니다. 시간은 언제나 똑같다고 하지만 요즘 들어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벌써 예순다섯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서울 북창동에서 대희, 수명이, 흥술이, 정숙이, 순희와 즐거운 시간 갖고 선생님 얘기 많이 했습니다. 대희는 몇 년 전에 명퇴를 했고, 수명이는 작년 831일에 정년 퇴임, 저는 올 228일에 정년 퇴임을 했습니다. 흥술이는 2025년에 정년 퇴임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저희가 다 별 탈 없이 교직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선생님의 좋은 가르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문과 이영주를 떠나 영일고 이영주35년을 지내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좋은 부모님께 태어나서 많은 친구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남들은 고등학교도 가지 못하던 시절에 고등학교를 재수해서 진학하고 또 대학에 갈 때 재수를 한 것은 제가 많이 부족했음에도 부모님의 은덕으로 계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항상 부모님께 감사하고 저보다 안 좋은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했고 그래서 더 잘하려고 애를 썼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렇고 그런 교사였을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저는 정말 교사여서 행복했습니다. 제가 정년퇴임을 하면서 학교 교지에 올렸던 퇴임의 말을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선생님,

 거기서도 여전히 약주 잘 드시고 건강하시리라 믿습니다. 2년 전에 소천하신 사모님과 같이 계신지요? 생전에 선생님께서 사모님께 많이 빚지신 것을 잊지 마시고 갚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그럼 거기서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02177일에

                                                                                       불초제자 영주 올림

 

 

 

행복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일고 교사 이영주

 

행복했습니다.”

 제 손으로는 한 번도 명함을 만든 적이 없지만 제 인생의 3막 중 2막을 영일고등학교 교사로 보냈습니다. 저는 이제 그 교사의 직을 떠납니다.

 제가 영일고 교사로 근무한 지난 35년은 제게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의 교사였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지만 특히19863월부터 2020227일까지 35년간 몸담았던 영일고등학교의 교사였다는 것이 더 크게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교사가 된 것을 천직(天職)이라고 생각했고 소명(召命)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교사가 된 것을 운명이나 팔자라고 얘기하면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교사로 시작해서 평생 직업이 되었고 처음 시작한 영일고등학교가 평생의 직장이 되었으니 이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학교에 나왔고 학교생활이 항상 즐거웠습니다. 교사가 되어 우리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교사의 직이 제게 운명이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지나친 저의 욕심이고 자화자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교사가 되고 영일고등학교에서 35년을 근무한 것은 분명 운명이었다고 믿습니다. 운명으로 보낸 그 세월은 제게 행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인생삼락(人生三樂)<‘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뜻이 맞는 벗이 멀리로부터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던가?(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입니다.

 

 교사는 늘 배우고 익혀야 하는 사람이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저는 그것에 아무 신경을 쓸 일이 없는 사람이니 둘은 공자의 말씀과 같은 것이고, 친구가 찾아오지 않으면 제가 찾아갈 수 있으니 저는 그 세 즐거움이 다 제게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늘 행복했습니다.

 이제 이 행복한 시절을 뒤로 한 채 저는 물러갑니다.

 그간 저와 함께 했던 영일고의 모든 선생님과 우리 영일고등학교 사람들, 저와 함께했던 10,000명이 넘는 영일고 졸업생에게, 저의 모든 행복이 다 영일가족들의 배려였음을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습니다.”

 제가 교사로 보낸 35년의 세월은 날마다 부끄러운 하루, 하루였습니다.

 제가 어느 직업을 택했든 나는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라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는 없었겠지만, 특히 교사로 35년을 살아왔기에 남들보다 부끄러운 일투성이였습니다. 제가 입에 발린 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하루, 하루 부끄럽게 살아온 날의 연속이었던 것이 제 교사 생활이었습니다.

 

 제가 영일고등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우리 영일고등학교가 서울 시내뿐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는 명문고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저도 그 덕에 어깨에 힘을 많이 주고 다녔는데 세월이 가면서 점점 그 이름이 빛을 바래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가 영일고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늘 반성하고 있습니다. 학교 명예를 위해 애쓰신 선배 선생님들과 우리 졸업생들 학생, 학부모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학교에서 저를 믿고 학년부장, 생활지도부장, 연구부장의 직을 맡겼는데 제 역량이 부족해서 학교에서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영일고등학교에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저는 충청도 방언을 씁니다. 제가 쓰는 말이 표준말이 아니라고 힘을 주어 말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수업 중에 저도 모르게 방언을 쓸 때가 많았습니다. 방언을 쓰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니 교사는 수업 시간에 반드시 표준말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교정할 수 있는데도 제가 쓰는 말을 교정하려 하지 않고 제가 발음하기 편한 방식으로 썼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영호남 출신의 두 대통령께서 자기 지역 방언을 심하게 썼을 때 어느 평론가가 그들의 교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자신이 표준말을 쓰려고 노력하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일인데 지역 패거리들과 친밀감을 드러내기 위해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저같이 힘없는 지역 사람이 그런 패거리 연대감을 위해 노력할 일은 없었으니 제가 방언을 쓰는 것은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고치지 못한 거였습니다.

 거기다가 제 발음이 정확하지가 않은 것도 교사로서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혀가 짧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제 잇몸이 바르게 교합이 되질 않아서 그랬습니다. 저의 입은 윗잇몸이 조금 앞으로 나와 입술을 닫으면 윗잇몸과 아랫잇몸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고 윗니가 아랫니를 덮는 형태입니다. 이것도 태생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노력했다면 훨씬 나아졌을 것입니다.

 

 제가 교사로서 고운 말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제 핑계가 늘 군대에서 훈련소 조교를 하다 보니 말이 거칠어졌다.’였지만 제가 고치려고 노력했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교직에 나온 초창기에 욕설이 뒤섞인 제 말을 들은 선배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 몇 번이나 주의를 주셨지만, 제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질 않았습니다. 이제 제가 나이가 들어서 젊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험한 말을 하는 걸 들으면 저 역시 놀라는데, 이제 와서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가 험한 말을 마구 해댄 우리 학생들에게 두고두고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저는 글씨를 잘 쓰지 못합니다. 지금이야 글씨를 쓸 일이 많지 않지만, 예전 제가 처음 교직에 나왔을 때는 칠판에 판서하는 것이 교사의 일 중에서 반이 넘는 거였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글씨를 잘 쓰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천성적이라고 하는 말이 변명이겠지만 어려서 왼손으로 글씨를 시작했다가 오른손으로 바꾸느라 무척 애를 먹었고, 그게 문제가 돼서인지 연필을 잡는 법부터가 잘못되어 글씨를 아주 못 씁니다. 글씨를 못 쓰는 것도 노력의 부족에서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릴 적부터 알아온 친구들은 제 글씨를 기억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글씨를 못 써도 교사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큰애도 교사의 길을 가고 있고 초등학교 친구들 자녀 중에 교사가 여러 명이 있어 앞서 교직에 나온 선배로서 늘 조심스러운데 제가 교사로서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날이 많았습니다. 교사로서 더없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 해에 보통 같은 학년을 다섯 반 이상 함께 들어가니까 한 반 들어갈 거만 준비하면 일주일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험 문제도 정교하질 못해서 가끔 오류가 나오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시험을 본 뒤에는 아이들 성적이 좋지 않다고 늘 질타했으니 이처럼 부끄러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한다고 정말 많은 우리 학생들이 저에게 체벌을 받았습니다. 지나서 생각하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인데 제가 너무 가혹한 체벌을 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런 체벌 속에서도 저를 믿고 따라 준 우리 학생들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교사로서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게 멋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양복을 입으면 어딘가 불편해서 편한 복장으로 다니려 한 게 습관이 돼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낯이 뜨거운 일입니다. 어떻게 교사가 정장을 입지 않고 편한 복장에 말과 행동을 함부로 했는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저는 내가 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며, 내가 하지 않는 일은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하지 말라고 하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교사로서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그래도 건전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담배는 원래 피우지 않았고, 화투나 카드를 만지는 일, 여자가 있는 술집에 드나드는 일, 오락실 출입 등 교사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제 스스로 정해 놓고 잘 지켰지만, 술을 마시는 일은 아이들에게 관대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술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 이것도 부끄럽습니다. 제가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저는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교사에게 사람이기 이전에 교사가 되기를 바라고, 교사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임을 생각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저도 마음으로는 늘 나는 사람이기 이전에 교사다.’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부끄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낯 뜨거운 일이지만 저는 8년 전부터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할 때에, ‘우리 식구들과 친지들, 우리 학생들과 졸업생들, 동료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사람을 대해 덜 부끄러운 하루가 되게 해 주십시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정말 염치없고 낯 뜨겁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교직 35년을 돌이켜 보면 날마다 늘 부끄러운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끄럽지 않게 살게 해 달라고 말로만 기도하는 제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저와 함께했던 우리 영일고의 모든 학생과 동료 교사, 학부모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 부끄러운 날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길…….

 

 

감사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35년이 훌쩍 지나가고 저는 이제 집으로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긴 시간을 한 학교에서 어떻게 근무했냐고 놀라지만 저는 지난 시간이 길다고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늘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 면접을 보러 왔을 때에 바로 합격 판정을 내려주셨던 영일고 제3대 윤기영 교장 선생님, 저를 영일고등학교 교사로 임용해주셨던 고() 함봉혁 설립자님, 그리고 언제나 따뜻하게 이끌어주신 많은 선배 선생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30년 가까이 저와 함께 해주신 영일고등학교 모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큰 과오 없이 이렇게 교직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리 선생님들의 배려와 염려 덕분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국어과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우리 국어과의 많은 선생님들이 항상 제게 분에 넘치는 대우를 해주셔서 많이 부족한 제가 지금까지 잘 지냈습니다. 저와 함께 하셨던, 그리고 지금 같이 근무한 우리 국어과의 선후배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많이 부족한 제가 학년부장, 생활지도부장, 연구부장의 직을 맡았을 때에 저를 아낌없이 도와주신 학년 담임 선생님, 생활지도부 선생님, 연구부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이 부족한 제가 우리 선생님들 도움으로 큰 착오 없이 무난하게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영일고등학교에 잠깐 왔다가 떠나신 선생님이 수 백 분이 넘습니다. 그 많은 분들이 항상 저를 도와주시고 배려해주셔서 제 학교생활이 더욱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학교에 가 계시고 혹은 교직을 떠나시고 혹은 결혼하셔서 가정을 지키시겠지만 잠시라도 영일고등학교에 와서 저와 함께 생활해주신 모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제가 행복했습니다.

 제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영일고등학교 생활지도부장을 하면서 만났던 강서, 양천지역의 고등학교 생활지도부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가장 즐겁고 흐뭇했던 시간을 우리 생활지도부 선생님들과 함께 했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우리 선생님들은 우리 강서양천지역의 고등학생들의 생활지도에 일익을 담당하셨고 우리 학생들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에 모두 함께 했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 많이 부족한 저를 항상 선생님으로 따르고 대우해준 1986학년도 우리 영일고 3학년이었던 10회 졸업생부터, 지금 2020년 현재 우리 1학년 학생들까지 우리 영일 졸업생과 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 긴 세월동안 혹 저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저로 인해 실망했을 여러 학생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영일고등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세련되지도 못했고 치밀한 성격도 아니어서 학생들 지도에 부족함이 많았지만 그런 저를 믿어주신 우리 학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가진 것은 열정 하나뿐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순전히 저를 믿고 학생들을 맡겨주신 학부모님 덕이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떠나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제가 지금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은 영일고에서 퇴임하신 선배 선생님과 저와 함께 생활했던 우리 졸업생입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부끄럽지만 교사의 길을 걷는 저를 늘 격려해주고 함께 걱정해준 우리 가족에게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저를 훌륭한 교사인 줄로 착각하고 믿어주는 가족들의 배려 덕분에 그래도 욕을 덜 먹는 교사로 생활했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영일고등학교 교사로서 행복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227

 

                                                                                         영일고 정년퇴임 교사 이영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