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2012. 3. 27. 18:33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내가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2학년 여름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전날 술에 잔뜩 취해 밖에서 자고 한 낮이 조금 지난 시간에 회기역에서 내렸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꾀죄죄한 몰골로 내가 역을 막 벗어날 때, 아주 낭랑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냥, ‘안녕하세요?’ 였지만 목소리가 아주 밝았다. 내가 누구인가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모르는 아주 예쁜 여자가 내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거였다. 나는 전혀 모르는 얼굴이라 멍하니 쳐다보다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 예쁜 여자는 국문과 1학년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했다.

 

이것이 내가 83학번 미경이를 처음 만난 때의 일이다. 저렇게 예쁜 학생이 우리 국문과에 있었나 싶어서 내가 다시 뒤를 돌아보니까, 선배 만나면 꼬박꼬박 인사 잘 하라고 하더니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안하고 미안했다.

 

미경이도 내가 자기를 돌아보는 것을 알았다. 중얼거리다가 나를 보고는 얼굴이 붉어졌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미경이와 가깝게 되었다. 예쁜 것에 대한 기준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 중에 가장 예쁜 얼굴이라면 단연 미경이었다.

 

나중에 미경이는 고전문학강독을 같이 해서 가깝게 지냈다. 미경이네는 오빠가 없는 집이라 그런지 미경이가 나를 잘 따랐다. 내가 미경이와 가깝게 지내면서 나와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다 미경이와 친하게 지냈다. 우리 선생님도 미경이를 무척 예쁘게 봐주셨다.

 

우리 국문과에 내가 가깝게 지낸 미경이가 여러 명 있었다. 82학번 미경이, 83학번 미경이, 84학번 미경이……. 그 시절에는 미경이라는 이름이 무척 흔해서인지 83학번, 84학번에는 미경이가 둘씩이나 있었다.

 

미경이는 얼굴도 예뻤지만 글씨도 깨끗하게 잘 썼다. 내가 미경이 글씨를 보고 리포트 제출할 때는 전부 미경이에게 대필을 시켜서 냈다. 우리 학과에 계신 선생님들은 내가 글씨를 못 쓰는 줄 다 아셨지만 교양과목 교수님들은 내 이름과 글씨를 보고는 내가 여자인 줄로 아신 분도 있을 거였다.

 

내가 광운대학교 병설 광운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할 때에 미경이더러 괘도와 지도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국어과 대표로 내가 공개수업을 해야 해서 대충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라 맡긴 거였다. 그때 미경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동생을 데리고 와서 종일 작업을 해서 괘도와 지도안을 만들었다. 다들 그 글씨를 보고 놀라서 내가 무척 흐뭇했었다.

 

미경이는 나를 따라 다닌 일이 많았다. 2학년 때는 고전경시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12일로 대구에도 갔었고, 3학년 때는 홍도ˑ 흑산도답사를 같이 갔었다. 흑산도에서 탁본을 하기 위해 두 시간을 걸어서 최익현의 비()가 있는 곳을 찾아갈 때도 미경이는 나를 따라서 땡볕에 걸어 다녔다.

 

그때 우리는 후배 하나와 셋이서 포장이 안 된 시골길을 오래 걸었는데 미경이는 생각보다 걷기도 잘 하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같은 과에 다니는 선후배가 서로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아는 것인지는 계량할 수 없지만 나는 미경이에 대해서 제법 안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내가 삼의원에 있을 때는 도서관에 일찍 갈 수가 있어서 나는 늘 문을 여는 다섯 시에 들어갔다. 보통 네 시 반에 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집이 먼 사람들은 그 시간에 도서관에 올 수가 없었다. 특히 시험기간이 되면 도서관의 자리 잡기는 무척 힘든 거였다.

 

미경이가 도서관에 온다고 하면 내가 자리를 잡아주거나 내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미경이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기보다는 우등생이 되어 장학금을 받으라고 권했다.

 

미경이는 무엇이든 잘 먹어서 좋았다. 여자들은 자기가 먹어보지 않은 것은 꺼리는 경향이 많지만 미경이는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든 다 좋아하고 맛있게 먹어서 좋았다. 나는 먹어보지 않은 것들을 찾아다니며 먹을 정도로 식탐을 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을 보면 좋았다.

 

내가 4학년 겨울방학 때에 학생들이 없는 삼의원에서 혼자 지낸 적이 있었다. 불을 안 때고 취사를 안 하기 때문에 겨울방학에는 다들 나가서 지냈지만 나는 마땅히 갈 곳에 없었다. 낮에는 도서관에서 지내고 잠잘 때만 들어갔지만 대개 아침은 라면으로 해결했다. 이때에 미경이가 집에서 김치를 가져다주곤 했었다. 대학생이 버스를 타고 오면서 김치 냄비를 들고 다니기는 웬만한 성의가 없이는 어려운 일일 거였다.

 

미경이는 교직을 이수했지만 학교에 가지 않고 보증보험에 취업이 돼서 나갔다. 그때 첫 급료를 받았다고 미경이가 선물한 가죽장갑을 17년 간 끼고 다녔다. 17년을 쓴 뒤에 장갑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고 다 낡아서 못 쓸 정도가 되었을 때까지 썼다.

 

나중에 창덕여고에서 교사를 초빙한다고 연락이 와서 내가 바로 미경이를 보냈었다. 미경이가 혼자 가는 것보다 교수님이 함께 가 주시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선생님이 미경이를 데리고 가셨었다. 그러나 거기서 남자를 뽑는 바람에 미경이가 교직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나는 미경이네 집에도 여러 번 갔었다. 미경이 부모님도 늘 반겨주시고 동생 셋이 다 잘 따라서 한집안 식구 같았다. 나는 미경이가 나와 가깝게 지내는 후배하고 결혼했으면 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었다. 둘이 잘 될 줄 알았지만 내 생각대로 안 되었다.

 

경희대 한의과대학에 다니는 가까운 후배를 소개시켰는데 그게 서로 안 맞았다. 나중에 보니 미경이는 그 후배가 아닌 다른 한의과 나온 사람과 결혼했고, 그 후배는 미경이가 아닌 다른 국문과 후배하고 결혼해서 쓴 웃음이 나왔다. 인연이란 그렇게 따로 있는 거였다.

 

내가 사진기를 처음 구입하고는 미경이가 내 사진의 많은 모델이 되었다. 나는 늘 사진기를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언제고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고 그럴 때에 미경이가 모델이 되었던 거다.

 

미경이 결혼식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고 싶었지만 차가 막혀 결혼식이 끝난 뒤에 식장에 도착하여 결혼식 사진은 한 장도 못 찍었다. 조치원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경부고속도로가 막히어 시간에 못 대어 간 거였다. 식당으로 가서 딱 한 장을 찍은 거 전부다.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민든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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