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7. 18:50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 먼 훗날 슬픔을 주는 것을, 이 나이에
순희는 내가 복학해서 만난 첫 여학생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만 남녀공학인 셈이었으나 여자하고 가깝게 지낸 기억은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도 여자에게 말을 붙여 본 적이 없고, 고등학교 다닐 적에 여자 선생님 좋아해 본 것이 다였다.
재수할 때도 나는 여자는 알지 못했다. 종합반에 다녔지만 여자하고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군에 가서는 여자는 고사하고 민간인 구경도 못하는 전방에서 보내다 1월 중순에 전역했고 3월 초에 복학했으니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숙맥이었다.
내가 복학을 하고서 일주일쯤이 지났을 때에 국문과 1학년생들이 대학 앞에 있는 지하다방에서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날 내 옆에 앉았던 여학생이 순희였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으니까 순희가 자기소개를 먼저 하고 나에게 이것, 저것을 물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복학생이라는 것과 군복무를 마쳤다는 것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얘기해 주었다.
그날 이후로 순희는 나를 보면 인사도 잘 하고 여러 가지를 챙겨주려고 신경을 썼다. 그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조금 지나고 보니 순희는 나뿐이 아니라 우리 나이 든 학생들과 가깝게 지냈다.
국문과에서 신입생환영체육대회를 하던 날, 내가 선배들의 작전에 휘말리어 술을 엄청 마시고 쓰러진 사건이 있었다. 이때 나 때문에 선일이, 대희가 무척 고생을 했다. 내가 술에 완전히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으니 가까운 그들이 나를 붙잡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날 내가 만취한 상태에서 순희를 보고 ‘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거였다. 나중에 술이 깬 뒤에 무척 미안했지만 나는 기억이 나질 않아서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순희는 영파여고를 나온 재수생으로 다른 1학년 아이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늘 우리와 어울려 다녀서 거의 한 학기동안 내가 아는 여자는 순희밖에 없었다. 강의실에서도 늘 나이 든 우리와 가까이 앉았고 우리가 하는 얘기에 끼어들기도 하였다. 순희는 학과의 무슨 소식이나 리포트 같은 것이 있으면 늘 우리를 챙겨 주었다.
나는 순희가 다 좋았으나 말투가 좀 건방지다고 생각했었다. 순희가 말 때문에 내 오해를 사서 결정적으로 버릇없는 학생이 된 사건이 있었다. 우리와 같이 강의를 듣는 영어교육과에 아주 세련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보기엔 아니었지만 대희와 선일이, 정식이 형이 보기엔 그랬던 모양이다. 어느 날인가 대희가 그 여학생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니까, 정식이 형이 그 여학생에게 임자가 있는 것 같더라고 했다. 밖에서 보면 늘 같은 남자하고 돌아다닌다는 거였다.
이때 우리 뒤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순희가 거리낌 없이 말한 것이 ‘키퍼가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나요?’ 였다. 사실 이 말은 관용어나 다름없고 젊은 애들끼리는 어디서나 얘기될 수 있는 거라 문제 삼을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그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여학생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자체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순희는 이유를 몰랐겠지만 그날 이후 우리는 순희가 품행이 방정하지 않다고 오해를 했었다.
그러든 말든 순희는 계속 우리에게 잘해줬다. 내가 겨울 방학 때 집에 내려가 있을 적에는 순희가 달력을 여러 개씩 모아서 소포로 부쳐주기도 했다, 순희는 시골에 달력이 귀할 거라고 생각해서 여기저기서 들어온 달력을 묶음으로 보낸 거였다. 순희가 한 3년을 그렇게 했다. 말이 그렇지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2학년이 되어서 흥술이가 복학을 했다. 나는 남녀관계의 일에는 아주 둔해서 남들이 다 알 때까지는 잘 모르는 편이고 본인들이 직접 얘기하지 않으면 잘 믿지도 않았다. 3월이 지나면서 흥술이와 순희가 가깝게 지낸다는 얘기가 국문과에 파다하게 퍼졌다. 나는 그때 영희에게 빠져 있어서 다른 사람 일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흥술이와 순희라면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공식적인 커플이 되었다. 그랬어도 순희는 나에게 늘 잘 해줬다.
한 번은 내가 전날 술을 많이 마셔 무척 힘이 들어 했었다.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기는 했지만 내 얼굴이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들 왜 그러냐고 묻기만 했지만 순희는 그런 나를 보더니 교문 앞까지 내려가서 약을 사 가지고 왔다.
순희가 나이 든 학생들에게 다 잘 했지만 내게는 특히 더 잘 해줘서 가끔 흥술이가 질투를 하기도 했었다. 오해의 소지가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순희가 양다리를 걸칠 만큼 약은 사람도 아니었고 또 내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그 오해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흥술이도 알았을 거였다. 그러나 이것은 삼자의 입장이지 당사자의 마음은 아닌 얘기다.
몇 번 그런 오해가 밖으로 불거지기도 했지만 술자리에서 나는 절대 아니라고 얘기했고 흥술이도 내 말을 믿는다고 했지만 다 믿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순희가 흥술이 문제로 가슴 아파하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순희는 힘든 일이 있으면 무엇인가 달라 보여서 나는 어림짐작으로 흥술이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 번은 순희가 머리를 싹둑 자르고 학교에 나왔다. 여자가 머리를 자를 때는 마음에 큰 변화가 있을 때라는 말을 어느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어 순희에게 물었더니 많이 슬프다고 했다. 나는 그 ‘슬픔’이 전부 흥술이 때문에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바로 흥술이를 불러내어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댔다. 이때 처음으로 흥술이가 ‘순희는 영주 형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고 해서 내가 놀랐다. 순희가 나를 과도하게 챙겨주는 것이 흥술이 마음을 상하게 했던 모양이다,
나는 흥술이에게 절대 그런 일 없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다독거렸다. 실제로 내가 순희를 좋아해서 결혼할 생각이었다면 남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순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거였다면 흥술이와 순희가 멀어질까봐 신경을 쓰지 않았을 거다.
나는 순희를 무척 좋아했지만 그것은 남녀 간의 감정이 아니었다. 나는 순희가 그냥 좋은 동생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사랑(愛)’이라는 말을 의미와 좋아한다(好)‘는 말의 의미를 엄밀히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내가 그들의 손을 잡아 본 정도이고 그 이상은 두려워서 겁을 내었다. 내가 그런 겁쟁이여서 후배들도 나를 믿고 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 오히려 기쁨보다는
-조병화, 「황홀한 모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