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던 말복 날

2012. 3. 28. 20:01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세근이가 고등학교 3학년 때다.

여름방학 중이었는데 서울에 왔다가 천안으로 내려가던 수명이가 전화를 해서 내가 강남터미널로 갔다. 수명이가 서울에 있을 때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천안으로 직장을 옮긴 뒤에는 더더욱 만나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길래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눈에 보이는 생맥주집에 들어갔다. 그날이 말복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튀겨 놓은 닭이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내가 닭을 시켜서 먹어봤더니 그 집의 겉보기보다는 닭이 아주 맛이 있었다. 나는 맥주를 몇 잔 마시다가 갑자기 세근이를 부르고 싶었다.

 

말복이라니 세근이에게 닭이라도 먹이고 싶어서였다. 세근이네로 전화를 했더니 마침 세근이가 받길래 바로 강남터미널로 오라고 불렀다. 세근이더러 여기 닭이 아주 맛있으니 와서 닭이나 먹고 가란 거였다. 나와 수명이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맥주를 계속 마시다가 수명이가 먼저 교수님 얘기를 꺼냈다.

 

선생님을 뵌 지가 오래인데 잘 계시냐고 내게 물은 거였다. 나는 얼마 전에 뵈었다고 얘기하고 선생님을 뵈면 늘 너희들 잘 지내는지 궁금해 하신다고 얘기했더니 수명이가 그럼 오늘 선생님을 뵈러 가자고 했다.

 

내가 선생님 댁에 전화를 드렸더니 마침 선생님이 댁에 계셔서 우리가 집 앞으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는 사이에 세근이가 와서 세근이에게 닭을 몇 조각 먹인 뒤에 셋이 택시를 타고 광장동으로 갔다. 선생님이 사시는 광장동 아파트 앞 상가에 있는 생맥주집에 가서 내가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러고는 세근이가 심심할까봐 중곡동에 살고 있는 성례에게 전화를 했더니 마침 집에 있어서 올 수 있다고 했다.

 

성례는 국문과는 아니었고 내가 대학에 다닐 적에 들었던 동아리 한림회 후배였다.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장흥으로 놀러 갈 때 성례가 자기 1년 선배하고 같이 와서 합류한 적이 있어 세근이하고는 조금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선생님하고 수명이, 나는 맥주를 계속 마셨고, 세근이와 성례는 사이다를 마시면서 얘기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집도 닭을 맛있게 튀기는 집이라 나는 또 닭을 시켰다.

 

성례는 대학생이라 술 좀 마실 것 같았지만 평소에도 별로 마시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빼는 것은 아니었고, 세근이는 고등학생이라 술을 마시면 안 되지만 그런 자리는 술을 마셔도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원래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했다.

 

처음엔 얘기가 따로 놀았다, 수명이는 선생님을 오랜만에 뵈었으니까 그간 밀린 얘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나는 성례, 세근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느라 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선생님은 세근이를 귀엽게 보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묻곤 하셨는데 놀랍게도 세근이가 영화에 대해서 아주 많이 알고 있었다.

 

내가 전혀 듣지도 못한 미국영화에 대해서 세근이는 선생님하고 얘기가 잘 통하고 나는 알지도 못하는 배우 이름이 쉴 사이 없이 나와서 무척 놀랐다. 나야 원래 시골출신이라 영화를 볼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서 관심 밖이었다가, 선생님과 세근이의 대화를 들으면서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2년이나 담임을 하고 있으면서도 세근이가 영화에 대해서 해박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나는 세근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세근이가 내 앞에서는 늘 새침데기처럼 굴어서 그 속을 알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날 나는 세근이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 거였다.

 

그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가 성례가 많이 늦었다고 해서 시계를 보니 열한 시 가까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선생님은 열 시쯤 들어가시고 우리는 강동터미널 앞에 와서 넷이 한 잔을 더 했다.

 

나는 시간이 그렇게 간 줄을 전혀 몰랐었다. 세근이가 대학생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담임이 불러내서 밤늦게까지 붙잡고 있었으니 집에서 얼마나 걱정하고 또 담임을 탓했으랴!

수명이는 이미 고속버스를 다 놓쳐서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타야겠다고 하고, 성례야 집이 가까우니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세근이는 집이 목동이라 큰일이었다. 그 당시는 버스가 열한 시 정도면 끊길 때라 걱정이 되었던 거다.

 

우리는 집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택시가 안 잡히는 것이 문제였다. 당장 수명이도 서울역까지 가야 했지만 택시가 아예 오질 않았다. 우리는 이쪽, 저쪽으로 택시를 잡기 위해 정말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간신히 택시를 한 대 잡아서 셋이 같이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수명이는 천안으로 가는 막차를 놓칠까봐 뛰어서 역으로 들어가고 나는 다시 택시를 목동으로 가라고 돌렸다. 세근이에게 차비를 주면서 빨리 가라고 보냈다.

 

세근이를 보내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열두 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마 세근이도 한 나와 비슷한 시간에 들어갔을 거였다. 나는 세근이 부모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 몰랐지만 세근이 집에 전화를 해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가 받으셨는데 담임 체면을 봐서인지 큰 걱정은 안하셨다.

 

이것이 세근이가 선생님을 처음 뵙던 날 있었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