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냉가슴 앓았던

2012. 3. 28. 19:54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어느 해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선생님이 잠적하셨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일에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선생님이 사모님께 내 이름을 대는 바람에 나도 어쩔 수 없이 휘말리게 되었던 거였다. 그 바람에 나는 사모님으로부터 엄청 꾸지람을 들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영일고등학교에 나간 지 몇 년 되었을 때였다.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8월 중순 어느 날 저녁 내가 집에 있을 때에 전화가 왔다. 밤 아홉 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화형이 선배가 전화를 해서 내게 선생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는 것이었다.

 

난 무슨 일인지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을 뵙는 날이 아니라 나는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형의 얘기는 선생님이 아침에 나가셔서는 저녁 때 회기동에서 영주하고 같이 있다고 전화가 오고는 소식이 끊기셨다는 거였다.

 

나는 분명히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납득이 안 가는 얘기였지만 선생님께서 무슨 사정이 있어서 내 이름을 대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좀 전에 헤어진 것처럼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선생님의 종적을 찾기 위해 먼저 선일이에게 전화를 했다. 회기동이라고 하셨다니까 혹 선일이가 선생님을 모셨을지도 몰라서 선일이에게 확인해 본 거였다. 선일이도 놀라면서 선생님을 뵙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선생님과 자주 가는 도림으로 전화를 했더니 거기도 그날은 선생님이 오신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 행방이 갈수록 오리무중이라 걱정이 점점 커졌다.

 

내가 선생님 댁에 전화를 드리니까 사모님이 받으시는데 분위기가 무척 냉랭하셨다. 나는 사모님께 선생님이 조금 일찍 헤어져서 가셨으니 곧 들어가실 거라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은 선생님이 술을 너무 자주 드신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이 선생이 선생님을 자주 뵙는 것도 좋지만 선생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 이 선생 때문에 술을 너무 자주 마시게 된다.’고 하였다. 나는 거듭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열한 시가 다 되어서 내가 다시 선생님 댁에 전화를 드렸더니 아무 소식도 없고 오시지도 않았다고 하셨다. 사모님도 대단히 걱정하고 계셨다. 내 목소리가 워낙 크다보니 우리 집도 온 식구가 다 알게 되었다.

 

나는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좋게 생각하고 싶어도 이것은 사고가 분명했다. 선생님이 술에 많이 취하시어 길에서 교통사고가 났고, 운전자가 뺑소니를 쳐서 선생님은 그냥 길가에 쓰러져 계실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운전자가 차인 치인 선생님을 태우고 가서 인적이 드문 곳에 유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끊임없는 걱정을 하고 있을 때에 화형이 선배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알 만한 사람에게는 다 전화를 했지만 오늘 아무도 선생님을 만났거나 얘기를 들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슨 사고가 난 것이 아닌지 걱정이라고 하길래 내가 경찰에 신고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경찰에는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화형이 선배는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 보고서 신고를 할 생각이었다.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나는 선생님이 난처하실까봐 선생님과 같이 있었다고 얼버무린 것이지만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덤터기는 다 내가 쓰게 될 것이 뻔했다. 내가 처음부터 오늘 선생님을 뵙지 않았다고 말씀을 드렸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나 이제 와서 그런 변명을 하자니 내 꼴만 우습게 되는 거였다.

 

나는 밤이 깊어가도 잠이 오지 않았고 밤에 다시 선생님 댁으로 전화를 드리고 싶어도 열두 시가 넘었으니 만약 아직 안 오셨다면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나만 잠을 못 이룬 것이 아니라 어머니도 걱정하시느라 못 주무셨고 집사람도 내가 뒤척이는 바람에 잠을 거의 못 이뤘다. 나는 다섯 시부터 일어나 앉았지만 그 시간에 전화를 드릴 수도 없었다.

 

아침 일곱 시쯤 되어서 내가 화형이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께서 아직 안 들어오셨다는 소식을 들을까봐 선생님 댁에는 도저히 전화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화형이 선배는 선생님 댁에 확인을 해보고서 내게 연락을 준다고 하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아직 안 오셨다고 했다.

 

내가 불안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기 앞에 앉아 있을 때 다시 화형이 선배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 춘천 상가(喪家)에 조문을 가셨다가 곧 댁으로 오신다고 연락이 왔으니 더 걱정하지 말고 일들 보라는 거였다. 내 입에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무 일 없이 돌아오신 선생님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난 이 일이 있은 뒤에 1년은 선생님 댁에 가지 못했다. 사모님 뵙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만나시고도 집에 가시면 늘 영주와 만났다고 말씀을 하시어 사모님께서 나를 많이 오해하고 계신 것 같아서였다.

 

나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 일에 대해서 선생님께 묻지도 못했다. 선생님이 아무 말씀이 없으신데 내가 먼저 말씀을 드리기가 어려워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