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스승의 날

2012. 3. 28. 19:42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우리 학교는 515일이 개교기념일이어서 올 해는 하루 쉬기로 했다. 해마다 515일이 되면 하루 쉴 것인가, 행사를 할 것인가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쉬지 않는 쪽을 더 좋아한다.

 

이날은 스승의 날이기 때문에 어쩌다 학교로 전화라도 하는 졸업생도 있고,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로 선생님을 뵈러 찾아오기도 한다. 오랜만에 스승의 날이라고 학교에 전화를 했다가 개교기념일이라 쉰다고 하면 얼마나 맥이 빠지겠는가?

 

그래서 가급적 행사를 하고 그 다음날에 쉬는 것으로 하고 싶었지만 2008515일은 하루 쉰다기에 나는 군소리하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 515일에는 나도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나는 바쁜 하루를 보냈었다. 하루 전날에 모교인 광흥중학교와 홍주고등학교의 은사님께 축전을 보내드리는 일로 스승의 날은 시작된다. 중학교에는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인 김일형 선생님 한 분만 계셨지만 고등학교에는 송병덕, 박청원, 편무원, 고석주, 이상민, 전달수 선생님이 계셔서 여러 분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들을 찾아뵙지는 못해도 해마다 축전을 보내드렸다.

 

지금은 선생님들이 한분 한분씩 퇴임을 하시어 내 축전을 받으시는 분이 두세 분밖에 안되지만, 예전에는 열 분 가까이 되셨다. 내가 우체국에 가서 축전을 신청할 때는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집에서 전화로 신청을 해도 돼서 많이 편리해졌다.

 

스승의 날인 15일 아침에 분당에서 꽃집을 하는 고등학교 동창 일규에게 전화를 해서 대전에 계시는 고등학교 2·3학년 때 담임이신 오규한 선생님과 금봉 선생님께는 화분을 배달했다. 그러고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감사의 마음을 올렸다. 두 분께 꽃 배달을 시작한 지는 10년 쯤 되었다.

 

대전에 계신 선생님을 찾아뵙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서 매년 행사로는 하지 못하고 격년에 한 번 정도 했었다, 근래의 일이지만 대전에는 초등학교 때 은사님이 세 분이 계셔서 나는 스승의 날 즈음하여 초등학교 친구들하고 찾아뵈러 다닌다. 그러니 나는 대전에 갈 일이 두 번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다고 말들 하지만 나는 꼭 있어야 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스승의 날마저 없다면 선생님께 꽃을 배달하기도 쑥스럽지 않겠는가? 그리고 스승의 날은 말 그대로 스승의 날이지 애들 담임교사의 날이 아니다.

 

스승의 날에 자기들 가르쳐주신 은사님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애들 담임교사에서 선물을 한다고 야단을 떠는 것을 보고 들으며 내가 씁쓸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직에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스승의 날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솔직히 스승의 날은 나도 부담스러웠다. 신경을 쓰는 것도 그렇지만 돈도 꽤 필요해서 미리 준비를 해야 했다. 스승의 날, 며칠 전부터 선생님을 어디로 모실 것인가를 생각해야하고 또 누구누구를 부를 것인가도 생각해서 미리 전화를 해야 했다.

 

15, 당일에는 경희대 국문과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자리를 할 것 같아서 대개 앞이나 뒤로 날을 잡아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괜찮다고 하시면 자리를 예약하고 부를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알리었다. 예전에는 국문과에서 대학원생들이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었지만 근 10년래에는 그런 행사도 없었다.

 

나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스승의 날이 되면 꼭 선생님을 모시고 자리를 했다. 늘 같이 다니는 수명이, 대희, 선일이, 흥술이와 은경이, 미경이, 순희 등과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여 감사를 드렸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다들 만나기가 쉽지 않았고, 또 자기들 일이 있으므로 선생님을 모시는 자리에 다 나올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분은 못 뵈어도 노강 선생님과 금봉 선생님은 꼭 찾아뵈었다. 같이 할 사람이 없으면 우리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노강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선생님 댁과 멀어지게 되었지만 나는 부천 송내로 꽃과 영양제를 사들고 제자 두셋을 앞세우고 꼭 가서 인사를 드렸다. 노강 선생님은 연로하시어 술자리로 모시기가 어려웠다.

 

스승의 날, 우리 선생님을 모실 때면 가급적 참치집에서 자리를 했다. 선생님이 참치를 좋아하셨고 다른 집들보다 깔끔한 것이 좋아서 목동의 동신참치와 종로 3가의 서울참치, 사조참치 중에서 한 곳을 택하여 모셨다. 선생님 혼자만 오시면 불편하실까봐 선생님과 가깝게 지내시는 전기호 선생님도 같이 모셨다. 선생님을 오랜 시간 모시는 동안에 자리를 많이 같이 한 사람은 인길이 형님, 기윤이, 운선이, 중기였다.

 

나는 선생님께서 여자를 좋아하셔서가 아니라 여자가 있으면 자리가 더 부드럽다고 생각해서 시간이 되는 여자후배 한둘을 꼭 불렀다. 교육대학원에 다니던 영선이와 지은이. 어떤 때는 은경이, 영희, 순희, 미경이와 정숙이 등이 한둘 씩 나오기도 했고, 여의치 않을 때는 사진클럽에 있는 여자후배나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여 선생님들도 같이 만났다.

 

선생님은 누구를 만나도 좋아하시기 때문에 어떤 해는 가보카메라의 최운철 회장님과 구원이 형님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만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다 반가워하셨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을 만나든 늘 못난 제자 자랑을 많이 하셔서 부끄러웠지만 어떤 자리에서나 다른 사람들에게 꼭 내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은 참치집에서 자리가 끝나면 맥주 한 잔을 더 드시고 싶다고 하시어 꼭 2차로 맥주집에 갔다. 종로에서 모실 적에는 1차가 끝나면 드림호프로 2차를 갔지만 어떤 때는 노래방에 까지 간 적도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와 같이 자리를 하시면 언제나 취할 때까지 기분 좋게 드셨다. 자리가 끝나고 나면 택시로 모시다가 근래에는 대학에 있는 규범이가 꼭 모시고 나오고 끝나면 모시고 갔다. 그렇게 신경을 쓰던 스승의 날이, 선생님이 안 계시다고 생각하니 너무 허전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규에게 전화를 하여 대전 선생님 댁과 용인 선생님 댁에 꽃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이왕이면 아침 일찍 보내달라고 했다. 사모님이 생각하실 적에 이젠 선생님이 안 계시니까 스승의 날도 허전하구나 생각하실 것 같아서였다. 식구들이 다 나가는 날이니까 나도 아침을 일찍 먹고 집을 나섰다.

 

을지로 까지는 조금 복잡했지만 거기서 1500번 버스를 타니 텅 비어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까 성남 공원묘지에 도착했다. 편의점에 가서 소주 한 병과 오징어포를 사고 묘소에 가져가는 조화(弔花, 造花)를 사가지고 터덜터덜 걸어서 선생님 묘소로 갔다.

 

지난 11일에 와서 뵙고는 다섯 달 만에 온 거였다. 선생님께 소주 석 잔을 따라 올리고 나도 석 잔을 마셨다. 키가 큰 잡초를 뽑아내고 울적한 마음으로 돌아서서 다시 터덜터덜 내려오는데 앞에서 차가 올라오다가 나를 스치며 멈춰 섰다.

 

얼른 보니 사모님이셨다. 사모님은 아침에 내가 보낸 꽃을 들고 선생님을 찾아오신 거였다. 인사를 했더니 깜짝 놀라시며, 학교는 안 갔냐고 물으시길래 오늘 개교기념일이라 학교를 쉰다고 말씀 드리고 다시 내려왔다.

 

다시 1500번 버스를 타고 오다가 양재동에서 내렸다. 순희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시간이 된다면 점심이나 같이 하고 싶었다. 전화를 했더니 미리 약속된 일이 있어서 못 나온다고 했다. 기대를 했던 일이 아니었기에 바로 버스를 타고 종로로 왔다. 종로에서 내려 경숙이와 만나 늘 다니던 돈화문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왔다.

 

저녁 때 허전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나도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몇 년 전부터 스승의 날이 되면 자리를 마련해서 거기 나가 대접을 받고 있다. 부끄럽지만 흐뭇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자리라 염치불구하고 만난다.

 

자리를 마련하는 제자들이 두세 팀이 되는데 선ˑ후배가 같이 자리하는 것을 불편해 해서 시차를 두고 따로 만날 때가 많다. 내가 스승의 날에 만나는 팀은 주로 영일 15기 제자 중에서 2학년 때 담임했던 학생들이다.

 

제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늘 듣는 얘기가 선생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이다. 나도 늘 선생님께 그렇게 말씀드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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