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30. 20:40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2007년 6월 7일은 목요일이었다. 나는 네 시 20분에 수업이 끝나자 바로 나와서 강서보건소 앞에서 642번 버스를 탔다. 오늘 여섯 시 반에 용인 민속촌 앞 ‘산골’에서 선생님을 뵙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5월 말경에 호태하고 통화를 하여 6월 7일로 날을 잡아 선생님을 뵙기로 이야기가 돼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었다. 선생님을 늘 서울로 모시다보니 너무 멀리 오셨다가 가시는 것이 송구스러워 이번에는 내가 용인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지난 5월 20일에 내 졸저 『우연 혹은 인연』의 출판기념회를 정동 ‘이파네마’에서 했는데 그날은 정신이 없어 선생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 호태가 선생님을 모시고 왔었고 갈 때도 모시고 갔다.
다른 때는 연락이 안 되었던 호태와 종수, 석영이가 그날 다 와 주어서 같이 만나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겸 용인에 가서 선생님을 뫼시고 술자리를 하고자 한 거였다.
다른 날보다 차가 많이 막히었다. 나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버스가 돌아가는 길목에서 내렸다.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던 시간이 20분이 넘어서 나는 다시 버스를 탔다. 이번엔 좌석버스가 아니라 시내버스를 탔더니 다행히 마을로 돌지 않고 큰 길로 바로 갔다. 다만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야 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나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뛰어서 갔다.
선생님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방향을 향해 앉으셔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호태가 와서 같이 있었지만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 넘게 늦었는데도 아직 시작을 않고 계셨다. 선생님이 손을 들어 반가이 맞이해주셨지만 나는 너무 늦어서 정말 죄송했다.
차가 많이 막히었다고 말씀드리고서 바로 시작했다. 보통은 목살로 시작했으나 그날은 등심으로 시켰다. 종수는 아직 끝나는 시간이 안 돼서 조금 늦을 거라 했고 기윤이와 석영이는 다른 일이 있어 오지 못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이파네마의 일들을 꺼내셨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성황을 이룬 것을 흐뭇해 하셨고 책 속의 여러 얘기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내가 학점을 짜게 받았다고 투덜거린 서 교수님에 대한 말씀도 하셨고, 노강 선생님과 황순원 선생님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도 말씀을 주셨다.
금아 선생님과 치옹 선생님 말씀도 하시면서 내가 그분들보다 훨씬 훌륭한 수필가가 될 것이라는 격려도 해주셨다. 나는 솔직히 그런 칭찬이 낯 뜨겁지만 선생님이 세심하게 읽어주신 것에 대해 무어라 말로 형용하기 어렵게 고마우셨다.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재미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선생님처럼 세세하게 읽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우리 집사람이나 애들도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지만 선생님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런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써 놓고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선생님은 전부 꿰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비록 팔리지 않은 책이라 해도 진정한 독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이 내게 늘 힘이 되고 또 글을 쓰게 하는 의욕을 일으켜 준다.
선생님은 거기에 왔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여럿을 거명하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그날 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한 용범이가 아주 의젓하게 컸다고 칭찬하셨다. 하기는 나도 그날 용범이 때문에 놀랐었다. 용범이가 갑자기 부쩍 자란 것 같은 느낌을 주어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제자를 대표해서 인사말을 한 세근이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다. 아주 예전에 선생님 생신 때에 세근이가 나를 따라 갔다가 안 좋은 기억만 남기고 자리를 뜬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그 일을 기억하시는지에 대해 내가 여쭐 수는 없는 일이지만 선생님께서는 세근이가 빨리 시험에 합격을 해야 내가 마음을 놓을 거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선생님은 수명이와 대희, 미혜, 은경이, 미경이 등에 대해 말씀하셨다. 다른 제자들은 가끔 만났어도 미혜는 20여 년 만에 얼굴을 대했는데도 기억을 하시고 계셨다. 그 얘기가 이어지면서 국문과 82학번과 83학번 이야기가 나왔다.
미혜, 은경이는 82학번이고 미경이는 83학번인데다가 호태가 83학번이어서 얘기가 자연스레 그렇게 이어진 거였다. 국문과 사람들은 날더러 기억력이 좋다고 하지만 호태가 더 나은 것 같았다. 호태는 83학번 여학생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할 만큼 훤했고 게다가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누구를 따라다녔는지도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호태는 내가 누구와 가까웠는지 어떤 애에게 관심을 두었는지도 다 알고 있어서 한참을 놀랐다. 그러면서 명희와 통화를 하고 싶으시면 연결해 주겠다고 해서 내가 그러라고 했다. 그 바람에 명희와 연결이 되어서 나도 통화를 하고 선생님도 통화를 했다.
명희는 대학시절에 참 예뻤는데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그런 얘기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에 종수가 왔다. 종수는 은행에 근무해서 남들보다 업무가 늦게 끝난다고 했다.
선생님은 사모님과 사모님 친구내외분과 함께 통영에 다녀오신 말씀을 하시었다. 얼마 전에 네 분이서 대통고속도로로 해서 통영과 거제도를 다녀오셨는데 무척 좋으셨다고 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서 선생님을 모시고 통영에 갈 생각을 했다.
통영에는 우리 영일 15기 제자인 환석이와 세근이가 내려가 있었다. 환석이가 거기서 학원을 상당히 잘 하고 있다고 들어서 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가서 우리 제자 자랑도 하고 싶었고 멋지게 대접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은 흔쾌히 가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호태와 종수나 기윤이, 석영이 중에서 한 사람만 더 가면 운전을 교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호태더러 바로 날을 잡으라고 했다. 쉬는 토요일을 끼고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면 될 것 같았다. 호태는 6월 넷째 주를 얘기해서 그러기로 대충 약속을 잡았다.
종수가 와서 조금 더 마신 뒤에 일어났다. 호태는 소주 넉 잔이면 취한다고 얼마 마시지도 않았지만 취한 모습이었고, 나와 선생님은 두어 병씩 마신 셈이지만 거뜬하게 일어났다. 넷이서 천천히 걸어서 선생님 댁 근처의 상가로 갔다. 그 동네에 가면 늘 들르는 횟집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아주 흥겨워 하셨다. 우리는 돔 한 접시를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자리가 길어질 것 같아서 나는 먼저 일어났다. 교문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새벽에 나가야하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던 거였다.
나는 호태와 종수에게는 눈짓을 보낸 뒤에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와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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