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2. 21:18ㆍThe 35mm Camera(마루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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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삼성 사진기를 명가의 명기로 올려놓는다면 많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모든 비난을 감수하면서라도 삼성의 사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삼성은 현재 필름을 쓰는 사진기 시장에 가장 늦게 도전장을 내민 신생업체이다. 비록 그 출발은 늦었지만 자동초점 콤팩트 사진기 시장에서는 이미 많은 일본 메이커들을 추월하여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였다.
삼성이 사진기시장에서 아직껏 최고의 명품을 내어놓지는 못했다 해도 머지않아 신흥 명문이 아니라, 세계적 명문가로 자리를 잡을 거라는 확신이 앞서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삼성이 미놀타와 제휴하여 35mm LS 사진기 및 35mm 일안 반사 형식의 사진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79년이다. 삼성의 고(故) 이병철 회장이 미놀타와 전격 제휴했을 때, 일본의 언론들은 ‘미놀타’를 매국노로 규정하고 일제히 비난했었다. 세계 사진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에, 미놀타와 삼성의 제휴는 필연적으로 역(逆) 부메랑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즉 언젠가 세계 사진기 시장에서 삼성이 일본 제품에 위협이 될 거라는 예측이었다.
삼성은 1978년 일본의 미놀타와 사진기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여 1979년부터 1984년까지 기술을 도입하고, 부품을 조립하여 X-300, X-700 등의 일안 반사 형식 사진기를 판매하면서, 1984년부터 자체적으로 사진기를 개발했다.
삼성에서 처음 나온 독자 모델의 사진기가 렌즈 셔터(LS) 형식의 SF-A이다. SF-A는 자동 초점 형식은 아니지만, 미놀타 렌즈가 장착된 것으로서 상당히 좋은 평을 들었다. 일본 기술이 아닌 삼성 독자 기술로 개발된 모델이 1986년에 나온 수동식 ‘윙키(Winky)’이고, 곧바로 자동식 AF 500이 개발되었으며, 1989년 5월 최초로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2배 줌 사진기 ‘AF Zoom 700’을 출시하였다.
삼성은, 1991년에 독자 모델 ‘퍼지 줌 1050’을, 1994년에는 세계 최초 4배 줌인 ‘FX-4’를 잇달아 개발하여 출시하였다. 삼성이 개발한 콤팩트 사진기, FX-4는 일본보다 두세 달 빠른 4배 줌 사진기였다. 이후 매년 10여 종이 넘는 줌 사진기를 개발하여, 삼성은 질과 양, 두 가지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사진기 제조회사로 발돋움하였다.
삼성은 1996년에 자체 상표인 케녹스(Kenox)로 세계 사진기 시장에 뛰어들어, 1998년 독일,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등, 유럽 4개국 고배율 줌 사진기 부문 판매 1위(자료 : 독일 시장 조사기관 Gfk 마케팅 리서치), 1999년 2월 미국 2배 줌 사진기 부문 판매 1위(자료 : 미국 시장 조사기관 INTELECT ASW)를 차지했다.
삼성에서 1994년에 내놓은 ‘FX-4’가 사진기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유럽 최고 권위의 TIFA상과 EISA상을 수상한데 이어, 1999년에는 ‘KENOX 1401P’가 이 두 상을 휩쓸어, 당시 세계 시장에서 일제 사진기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사진기는 삼성 케녹스 밖에 없다는 찬사를 들었다.
삼성 케녹스 FX-4는 1994년에 발매된 세계 최초의 35mm 4배 줌 콤팩트 사진기이다. 미주지역에서는 ECX-1으로 판매된 이 사진기는 아기코끼리를 연상시키는 멋진 모습으로 몸체는 포르세(F.A. Porche)의 디자인이다. 정확한 초점과 적정 선예도를 보장하는 세 가지의 포커싱 시스템(퍼지 줌, 포토레이트 줌, 스텝 줌), 싱글 빔과 멀티 빔 포커스와 세 가지의 슈팅모드로는 연속 촬영, 인터벌(interval)과 다중 노출, 파노라마 기능, 포커스 록의 액티브 적외선 자동초점(Active infrared AF), 등 당시의 모든 선진 기능들과 38∼140mm의 4×줌렌즈를 조합시켜 각광을 받았다.
삼성이 독일의 롤라이 광학을 인수하고, 첫 작품으로 내놓은 ‘롤라이35QZ’도 포르쉐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35QZ는 과거 독일에서 나왔던 ‘롤라이 35’의 명성을 연상시키는 전문가용의 최고급 사진기로 광각 줌 QZ 35W와 망원 줌 QZ 35T의 두 기종으로 개발되었다.
고품질의 바리오 아포곤(Rollei Verio Apogon) 줌 렌즈 장착, 4분할 SPD 센서를 채용한 인공 지능 노출 프로그램, 1/8,000초의 고속 셔터, 촬영 정보 기록 기능, 자동 노출 단계(Auto Bracketing) 촬영, 티타늄으로 외장을 한 견고한 몸체와 수려한 외관 등, 나무랄 데 없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QZ 35W는 28∼60mm 광각용, QZ 35T는 38∼90mm 망원용으로 개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광각과 망원의 빠른 바리오아포곤 VarioApogon)은 최적의 광학 성능을 제공한다.
조금 아쉬운 것은 렌즈가 교환이 안 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쓰는 명품이 되려면 렌즈가 교환되는 고급기종이래야 한다. 일안반사 형식이든 레인지파인더 형식이든 렌즈가 교환될 수 있는 기종이 되어야 전문가들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게다가 콤팩트 사진기로 분류하기엔 몸체가 너무 크다는 단점도 있다. 전문가들이 선택하는 서브사진기가 되려면 작고 가벼운 쪽으로 목표를 잡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삼성이 내놓은 케녹스 GX-1은 독일, 일본, 러시아 등에서만 생산되고 있는 일안 반사 형식 사진기 시장에, 한국 제품을 처음 선보였다는 큰 의미를 가진다. 하필이면 디지털 사진기가 등장할 시점에 나와서 큰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독자적인 일안반사 형식 사진기를 내어 놓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진기 제조업체로서의 자긍심을 가질만하다고 본다.
다만 사진기를 받쳐 줄만한 교환 렌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점은 많이 아쉽다. 우리나라에서 통하려면 라이카나 차이스와 버금갈 고급 교환 렌즈가 필수이기 때문에다. 보급형 렌즈는 여러 업체에서 내어 놓고 있으니 선두 업체와 진검 승부를 걸 수 있는 고급 렌즈의 발매는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가격이 높더라도 고급 렌즈 라인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진기만은 사진작가가 아닌 일반 사람을 겨냥하여 만들어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전문가가 쓰는 것이어야 일반인에게도 인지되기 때문이다.
나는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는 삼성의 광고를 높게 평가한다. 삼성이 미놀타와 처음 제휴할 때, 삼성이 미놀타에 지불한 기술료가 천문학적 숫자일 거라는 얘기도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삼성이 사진기 시장에 뛰어든 것은 반도체에 손을 댄 것만큼이나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광학기술이 독일이나 일본에 많이 뒤쳐져 있지만, 그나마 삼성의 도전과 노력 덕에 일본을 힘겹게나마 추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제 사진기를 더 선호하지만 해외시장에서는 삼성이 일제보다 더 많이 팔리는 사진기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그렇지만 중국시장에서도 일본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아마 디지털사진기가 10년만 늦게 나왔으면 삼성이 호언한대로 세계 3대 사진기 메이커로 발돋움을 했을지도 모른다. 삼성이 디지털사진기 시장에서 선전(善戰)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러한 필름사진기 시장에서의 기술축적이 큰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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